쉽게 등반할 수 있는 제주 오름 추천
여행하고 기록하는 에디터 선명이다. 제주도는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문득 생각나는 여행지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유년의 한 때부터 길을 잃고 실컷 헤맸던 이십 대의 추억까지. 살면서 여행으로 남긴 발자국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바다 건너 외딴섬이지만, 나는 이곳에 정을 붙여 해마다 찾고 있다.
오늘 제주도에서 소개하고 싶은 장소는 오름이다. 알다시피 제주도는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인데, 중심에 위치한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약 370개가량의 기생 화산, 오름이 생겨났다. 물론 모든 오름이 기생화산인 것은 아니다. ‘오름’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로 산봉우리를 뜻하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오름이라고 하면 좀 더 넓은 범위의 봉우리를 의미한다.
오름은 제주도의 넓은 면적만큼이나 다양하고 각자 다른 매력이 있다. 모양도, 높이도, 서식 환경도 다르다. 그러나 오름이라는 낱말이 ‘오르다’에서 기원했듯, 둥근 면에 사람이 오르기 좋은 언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초보자들도 오르기 쉬운 오름 다섯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삼나무 숲이 우거진 송당리에는 높고 낮은 오름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아부오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기 좋은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오르는 구간은 5~10분, 정상에서부터는 원형 띠 모양의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아부’는 제주 방언으로 ‘믿음직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구좌읍 일대를 넓게 굽어볼 수 있어 그 의미가 이해됐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좀 더 뚜렷한 분화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화구 내부에는 여러 희귀한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참고로 굼부리(화구 중심)의 원형 삼나무 군락은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이 그러하듯 아부오름도 계절에 따라 울창한 숲이 되기도 하고, 완만한 면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추천하는 계절은 벌레가 적고 꽃이 피는 봄이다. 돗자리를 가지고 올라가서 송당리 일대를 감상하면 어떨까.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용눈이오름은 가장 인기 있는 오름 중 하나다. 필자도 모든 오름을 가본 건 아니지만 주차장이 가장 크고 붐비는 곳은 용눈이오름이었다.
용눈이오름이 유명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정상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 제주도 동쪽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15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으며, 세 개의 분화구를 둘러보고 돌아와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주도는 초원과 언덕이 많아 말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특히 용눈이오름은 초원과 언덕의 조건을 고루 갖춘, 말이 살기 최적의 장소다. 실제로 용눈이오름을 오르다 보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말과 함께 올라가 보자.
용눈이오름의 능선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너무 가파르지도, 너무 평평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웨딩 스냅 촬영을 하러 온 커플이 많은 이유다.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일몰이 아름다운 오름으로 손꼽힌다. 성산이나 종달리로 갈 예정이라면 용눈이오름을 들렀다가 해 질 무렵에 이동하는 동선을 추천한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를 태양이 안내해 줄 것이다.
아쉽게도 용눈이오름은 현재 자연휴식년이다. 제주시에서는 오름의 자연식생 보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출입을 제한하는 휴식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1월이면 휴식제가 끝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추천하는 계절은 잔디가 무성한 여름이다.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물놀이를 즐길 게 아니라면 제주도는 가을 시즌을 노리는 걸 추천한다. 바로 억새 때문이다. 억새는 볏과의 식물로 갈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동아시아권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귀한 몸이다. 가을에 무리 지어 꽃을 피우는데, 육지에도 다양한 곳에 분포되어 있지만 오름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흔하게 수 있다. 따라비오름은 억새로 가장 유명한 오름이다.
따라비오름은 제주도에 사는 지인에게 추천받아 알게 되었다. 억새가 만개한 능선을 보고는 가을까지 기다렸다가 제주도를 여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따라비오름의 억새 군락은 가경이다. 게다가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부는 섬. 바람에 나풀대는 억새를 보고 있으면 모자 하나쯤은 날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 오르는 시간은 20~30분. 주차장까지 가는 도로가 꽤 협소하다.
오르는 길은 대부분 계단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따라비오름이 웬만한 오름보다는 높아서 꽤 힘들다는 점이다. 하지만 힘듦도 잠시, 산정에 오르고 억새로 가득 찬 풍경을 마주하면 모두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푸른 들판도 좋지만, 하얀 억새가 바다처럼 일렁이는 풍경은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다.
추천하는 계절은 역시 가을. 트래킹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꼭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한라산과 백두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다. 화산의 형태로 높게 솟아 있으며 분화구에는 펄펄 끓는 용암 대신 물웅덩이가 들어찬 모습. 이 웅덩이를 ‘산정화구호’라고 하는데, 활동이 멈춘 화산 화구에 물이 들어차서 생긴 호수를 의미한다.
오름 역시 화산의 일종으로 산정화구호를 품은 경우가 드물게 있다. 금오름도 그중 하나다. 금오름은 이효리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해져서 백록담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작은 한라산, 작은 백록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금오름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이 두 가지다. 차량이 통제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 경사는 완만하지만 오름을 반 바퀴 크게 돌아서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더 심하다. 필자는 조금 가파른 언덕이라도 숲길을 추천한다. 정상까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20분, 숲길로 가면 10분 정도 소요된다.
금오름은 패러글라이딩으로도 유명한 장소다. 정상에 오르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풍경이 장난이 아니다. 또한, 필자가 알기로는 통제된 도로는 패러글라이딩 차량만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금오름은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산정화구호에 물이 고여 있어 여름에는 모기가 득실하다.
앞서 말했듯이 한라산을 제외한 모든 산과 봉우리를 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제주도에서 봉우리라고 표기된 곳도 오름으로 부르는 다른 명칭이 있다. 유명한 봉우리인 지미봉이나 서우봉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서우봉은 함덕해수욕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낮고 둥근 언덕이다. 함덕해수욕장에서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우봉은 함덕리 주민들이 산책 코스로 자주 찾을 정도로 오르기 쉬운 오름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제주도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초여름이면 청보리가 가득한 사진 스폿이 있다. 현재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지만, 과거에는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리적 위치 탓에 일본군이 군기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서우봉이 보이듯, 서우봉에서도 함덕해수욕장을 볼 수 있다. 함덕해변 특유의 따뜻한 바다와 옅은 파도 위에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함덕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우봉은 바다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기 때문에 여름에도 덥지 않다. 대신 겨울에는 추울 수 있으니 유의하길 바란다.
오름은 화산섬인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자연 유산이다. 아름다운 오름을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고 있는 건 좋지만,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는 사례도 늘고 있어서 안타깝다. 휴식년제도를 시행하지 않아도 자연이 보존되도록 함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