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을여행
여행하고 기록하는 에디터 선명이다. 추석 연휴가 끝났다. 즐거운 시간은 반드시 지나가는 법이다. 대신 곳곳에 선명한 가을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뚜라미와 긴팔 소매, 여름 내내 양분을 가득 담은 열매들. 순환은 계절의 속성이지만 며칠 사이 조용히 둔갑하는 초가을의 매력은 늘 새로운 기분이 들게 한다.
녹음으로 가득 찼던 이곳 달성에도 가을이 왔다. 대구는 낙동강과 금호강 지류를 따라 도시 곳곳에 하천이 있는데, 하천을 주변으로 다양한 생물이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다. 특히 태풍이 지나간 직후인 지금 시기에는 하루가 다르게 여름이 꺾이고 있다.
오늘 소개할 장소는 달성군의 한옥 터 인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이다. 에디터가 직접 돌아보며 한옥의 아름다움을 담아왔다. 대구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눈여겨볼 것.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는 원래 불교 사찰이 자리하던 곳이다. 앞으로는 천내천 흐르고 뒤로는 천수봉으로 둘러싸인 명당이다. 전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집성촌이라 유명한데, 오히려 대구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명소 중 하나다.
집이 멀지 않아 등산로를 따라 이동했다. 천수봉 일대는 대구 수목원과 인흥서원, 마비동 벽화마을,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등 달성군의 관광 명소가 몰려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더위가 한풀 꺾여서 등산하기에는 좋지만 벌레에 물리지 않으려면 옷을 잘 챙겨 입고 가야 한다.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곧게 솟은 소나무가 병풍처럼 가옥을 둘러싸고 있다. 소나무의 장엄한 멋과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나무 외에도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나무가 많다. 오래전부터 있던 나무들은 멀리서도 그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나무들은 단순히 오래 산 나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인간에 의해 가꿔진 나무다.
관광객에게는 한옥과 꽃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으로 유명하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능소화가 돌담길에 가득하다. 여름이 거의 지나간 시기에도 남아있는 능소화를 조금 볼 수 있었다. 내부를 개방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지만 담이 낮고 지붕이 높은 한옥 구조를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는 6년 전에 방영한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의 촬영지다. 드라마를 볼 당시엔 세트장인 줄 알았는데, 대구에서도 외곽인 지역에서 촬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곳곳의 오래된 건물은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워낙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이다 보니, 유지하고 보수하는 작업도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는 목화솜으로 유명한 문익점의 자손들이 터를 이룬 곳이다. 문익점은 단순히 중국에서 목화솜을 가져온 데 그치지 않고 국내에서 재배할 수 있도록 시험, 상용화에 힘쓴 인물이다. 덕분에 온 백성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 지금까지도 위인으로 칭송받고 있다.
문익점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입구에는 꽤 넓은 부지의 목화밭이 있다. 마침 수확철이라 많은 사람들이 목화를 재배하고 있었다. 에디터는 이곳에서 진짜 목화를 처음 봤다. 목화는 종 모양의 뾰족한 열매가 터지면서 솜이 튀어나온 모습이다.
요즈음에도 목화의 모종을 구하는 일과 재배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아마 문익점이 목화솜을 가져왔던 고려 말기에는 작업이 더 고되지 않았을까.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의 부지는 3,500평으로 상당히 넓은 편이다. 한옥 외에도 연못, 목화밭, 공원 등을 돌아보며 산책하기 좋다. 모두 둘러보는데 30분에서 1시간이면 충분하니, 청명한 가을 나들이 장소로 추천한다.
- 주소 :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
- 문의 : 053-631-8686
본격적인 가을이 왔다. 앞으로의 여행은 집에서부터 먼 곳으로, 길게 다녀올 예정이다. 사실 꼭 어떤 장소를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 여행에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어떤 것을 봤다’라는 기록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했다’라는 이야기다.
또한, 여행에서 만드는 좋은 이야기를 위해선 '나' 외엔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 없다. 그러니 일단 떠나고 보는 게 가장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