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를 거쳐 포르투에 도착한 날이었다. 낯선 여행객보다 현지인으로 가득찼던 지하철 그리고 에어비앤비 숙소. 이 두 가지로부터 포르투의 첫인상을 심었다. ’바쁜 사람들, 고지식한 건물.‘
옥탑방에 지내기로 했다. 삐그덕하고 목조계단이 노래하듯 꼭대기층으로 부른다. 작은 계단을 또 오르면 붉은색 지붕으로 가득찬 이국적인 풍경이 들어온다. 싱글침대, 낡은 책상, 세월의 수납장, 비좁은 욕실로 구성된 방이다.
성인이 되고서 의식주를 제대로 챙겼던 때가 있었나 싶었다. 대충 캐리어만 열어놓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지나니 마트다. 희소한 과일, 샐러드, 저렴한 빵을 손에 넣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맥주를 찾아서 카운터로 향했다.
동 루이스 다리다. 수도원과 가로등 불빛만 빛날 뿐이었다. 잦은 고장에 언젠가 수리를 하겠지 싶었다. 갈매기들이 날아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포트 와인을 시켰다. 괜한 의식을 하며 술을 홀짝홀짝 마시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쳤다. 갈매기가 자꾸 치즈를 물어가 신경이 곤두서있어 약간의 짜증이 섞인 기운으로 돌아보는 순간 환한 미소가 번졌다. 순수한 아기의 손길과 칭얼대며 올려보는 눈빛에 반해 자세를 고쳐 앉지 못했다.
어느날은 빨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온통 포르투갈어로 적힌 세탁기와 싸우고 멍하니 세탁기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어떤 곱슬머리를 한 젊은 여자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 한국이었다면 ‘교류’를 할 생각이 들었을까 싶었다. 그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려고 할 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과연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당황한 미소는 그녀에게로 다시 향했다. 그녀도 웃으며 그녀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삐리삐리 치킨. 정확히는 삐리삐리 소스를 끼얹은 치킨 바베큐겠다. 바르셀로나에서 4일은 그야말로 먹방을 했다. 꿀대구와 빠에야를 잇는 음식은 없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소울푸드가 백마탄 왕자님처럼 나타난 것이다. 매일 보고싶어 매일같이 치킨집에 들렀다. ‘삐리삐리(Piri Piri)’라는 작고 매운 아프리카산 고추로 만든 포르투갈식 핫소스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탁치고 들어오는 매운맛과 숯불향을 입힌 고소담백한 치킨의 조화는 그야말로 천상계에서 요리할법한 수준의 음식이다.
거친 사람들에게도 친절함은 존재한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인 포르투는 리스본보다 비교적 외국인 수가 적은 편이다. 리스본은 전 세계의 디지털 유목민들이 모여있는 반면, 포르투는 인구 약 23만 명에 도시 규모도 리스본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개방적인 분위기의 리스본과는 달리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로 전통과 규율을 중시 여기는데 포트 와인이 발전한 이유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중세부터 상업, 무역이 발달하면서 근검절약, 전통 유지를 중시했고 지금도 느림의 미학과 같은 깊이 있는 정체성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포르투 사람들은 내향적이고 조심스럽다고 느꼈다. 동양 여자는 더욱 낯설겠거니 하고 움츠러들면 다행히 현지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그들에게서 따뜻한 사람냄새를 맡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돌계단, 아줄레주 양식의 건물은 다채롭다. 눈이 즐겁고 기분을 좋게 한다. 현재보다는 과거.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준다. 덩달아 진지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대하고 행동거지 하나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다보면 시간을 잊게 되고 그것이 만든 주름을 통해 ‘변화’보다 ‘지속’을 위한 엔진이 탄생한다. 묵묵히 걷다 골목 어귀에 핀 잡초 사이로 외톨이가 보이고 그 외톨이가 남 같지 않아 따스한 눈빛 한방울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삶을 잘 꾸리고 겸손히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고 무심함 속에서 다정한 향기가 드리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