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무려 중고차 가격의 샤넬백에 목을 맸던 나는 수익률이 무려 여섯 배가 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통장에 찍히는 단위가 달라졌고 샤넬백에 대한 욕구는 사그라졌다. 왜일까. 나는 물질주의에 빠졌고 예를 들면 백만 원이 육백만 원이 된 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숫자가 커졌을 뿐 바뀐 건 하나 없었다. 나는 두 발로 똑바로 걷고 또박또박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겼다는 정도지 전에 없던 큰돈이 생기고부터는 돈이 우스웠다.
며칠은 본능대로 움직였다. 손에 잡히지 않는 ‘자유’가 느껴졌다. 그 느낌은 공기 중에 떠다니며 나와 함께 춤을 췄다. 그리고 여행 블로그를 열심히 한덕에 매달 용돈처럼 따박따박 돈이 입금됐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환한 미소를 짓기 힘들었다. 샤넬백을 살만큼 수중에 여윳돈이 생겼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싸우는 중이었다. 고민이라면 고민이고 생각이라면 생각일 텐데 남들은 쓸데없다 하는 그런 두루뭉술한 문제였다. 그 문제와 씨름하면서 포르투에 있자니 여행이 아닌 고행이었다.
원하는 대로 포르투 한 달 살기를 시작해 즉흥적으로 일과를 보내도 어린아이 같은 맑은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여전한 행복과의 거리에 대해 골똘히 몰입했다. 단기적인 이익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언지 궁금했다. 불현듯 직장생활에 찌들었던 시간을 지나 그 이전으로 돌아갔다.
‘열정’
언제든 도전하고 무너질 용기가 그리웠다. 지금의 나는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나는 노력과 성취감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려운 일, 잘하는 일, 쉬운 일, 즐기는 일, 돈을 버는 일 중에 고르자니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이었고 어리석은 어른에 불과했다. 더 무서운 건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변화를 꾀하지 않는 또 다른 나였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토록 사랑하는 [런던에서 보낸 1년]에서 알 수 있듯 나는 나를 미치도록 사랑했다. 나약함과는 먼 가장 겸손한 인간이었다. ‘맨땅에 헤딩’이 취미였던 시절은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함이었으니 단순엔딩에 인생은 지루할 수밖에.
‘목표’
결혼 후 장단기적인 목표가 화목한 가정이다. 화목함에는 배려가 있고 또 질투, 시기, 오만, 이기, 다툼 등의 과정을 거친다. 결혼을 하고서 함께한다는 일이 얼마큼의 노력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싸우면서 깨닫게 됐다. 또 나혼자의 시간이 줄고 집중할 시간도 적다.
그렇다면, 결혼 아래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결론은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고 그게 불가하면 헤어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바운더리를 존중하면 웬만한 독단적인 시각에 찬성을 한다는 입장이다. 포르투 한 달 살기 또한 그 예이다. 나만 잘하면 결혼 생활은 더할 나위 없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것이다.
‘돈’
막대한 부는 숫자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 상인들은 대항해 시대 후 저물었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때 실물 금화나 은화가 아닌 장부상의 숫자로 부를 축척했다.
회계를 이용해 신용과 채권을 주고받았으며 베네치아 은행 계좌에 어음으로 거래를 했다. 즉, 물리적인 화폐보다 숫자의 흐름이 그들의 부를 결정한 것이다.
이후 그들은 신용이 붕괴되면 장부상의 부는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이는 무의미한 숫자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숫자놀음 속에서도 숫자를 지배한 자가 현실 세계를 통제하며 한 개인부터 국가의 존속이 좌우되기도 한다.
나는 현대에 살고 있다. 숫자란 인간이 만든 기호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허상에서 벗어나, 속 뜻을 이해하고 시대적 흐름을 읽자. 변주에도 흔들리지 말자. 고로 나약한 인간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p.s. 연재가 늦었습니다. 1월부터 남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있을지 모를 기다렸던 분들께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