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소회

갈수록 묵직해지는 퇴직이라는 변화

by 김공대희

어찌어찌하다 보니 수십 년간 한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작년 11월 갑자기, 조금은 이르게 만 57살 살짝 넘어서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 57살이라고 굳이 적은 건

우리나라 나이가 있고, 만 나이가 있고, 또 개월수까지 따지는 여러 나이 샘법이 있지만

일반적이고 정서적으로 예로부터(?) 통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나이로 샘 하다 보면

만 57살이 거의 환갑에 가까운 것으로 샘 할 수 있기도 하여, 만 나이를 적어 보았습니다.


퇴직하고 나니 솔직히 지금 나이가 환갑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립니다.


생각해 보면

재직 중에는 수시로 이놈의 직장 때려치우고 머라도 해야지..

남의 머슴 살지 말고 내 업을 해야지..

사나이가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내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하는 객기로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을 때때로 놀라게 하고, 자기 위안을 갖고,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공허한 허세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퇴직을 하고 보니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중년 퇴직자에게는..


지난 몇십 년간의 조직 생활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지만

어쨌든 주어진 목표와 조직 안에서 수동적인 생활이었고

지금은 내가 방향성을 잡고 책임지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 오니

검증되지도 않고, 확실하지도 않고, 젊음의 자신감도 없는 상황에서

퇴직 후의 희망찼던 제2인생 시즌이 어렵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건 어떻게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 관념

그리고 고상하고 애매한 표현으로 인문학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루시"라 불리는 오스랄로피테쿠스가 태어난 700만 년 인류 역사와 만 년간의 농경생활

그리고 500년 전 산업혁명 이후에 이렇게 은퇴한 중노년이 사용할 데가 없기는(useless)

처음일 것입니다.


인류가 처음 겪어보는 큰 위기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중노년만 이런 사실을 비밀리에 알고 있고 나머지 분들은 전혀 모르고 있어 인류의 큰 재난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비가임이면 생명의 끝을 의미하지만

인간은 비가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저는 자세한 이유를 이미 통찰하여 깨달았지만 꼰대의 잡소리가 많다고 할 수 있어 안 알려줍니다.)

또한 인류 문화가 여타 생물과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도

올드한 사피엔스의 머릿속에 든 잡다한 지식의 저장과 전달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의 저장은 노인의 머릿속이 아니고 반도체에 저장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최근에는 너무 많은 노인이 생산됨에 따라 희소성의 가치도 상실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몇백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처음 겪어보는 이 위기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중년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퇴직을 하고 나서 개개인이 겪게 되는 실패감, 비효능감, 다양한 쓸데없는 걱정들이

당사자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고 순전히 이 우주적인 문제에 의해 발생되고 있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