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의 가벼운 퇴직상자 2

신입사원 편

by 김공대희

1992년 7월 7일, 시골의 조그마한 전화국


여름의 시작 즈음에 통신사에 입사했다.

대학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어렵게 마련했던 회색 정장에 아버지의 넥타이를 빌려 매고 첫 출근을 했다.

머리가 허였던 기관장에게 신고를 마치고 총무과 응접 소파에 엄숙하게 대기하며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나이 많은 선배님들이 "참 잘생겼다, 젊음이 좋아"라고 해주시고,

그 장단에 맞추어 정신없게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답례 인사를 했던, 그 청춘의 시절이었다.


입사 후 처음 담당한 업무는 전화요금 수납 지원이었다.

지금은 젠더 이슈가 될 수 있지만 그때는 여성 직원 중심으로 창구 업무를 보고 남성 직원은 2선에서 지원 업무를 주로 보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전화요금을 통장이나 신용카드로 납부하지 않고 전화국에 방문하여 납부하고 있었고,

매월 납기일이 되면 자동 번호표 기계도 없던 시절이라 전화국 민원창구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끔씩 사정이 있는 창구 직원의 업무를 대신할 때면, 길게 늘어선 고객들이 부담스러워 계산기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당황다.

결국 저녁 마감 결산 금액이 맞지 않아 매번 민족자본을 투입하곤 했던 서투른 신입사원이었다.

회사에서는 통장 자동납부로의 전환 실적을 기관별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도 했다.


전화요금 창구 수납 업무와 더불어 고객이 공중전화에 넣었던 동전을 매일 수거하여 수납 처리하는 업무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전을 수거해 오고 일일이 동전을 세어 결산하는 업무였다.

'사산기'라는 기계에 동전을 부으면 '두두두두'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을 세어주고 공중전화에서 자동 집계된 콜수와 수거해 온 동전들의 금액을 정확히 맞추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당연히 모든 직원들이 다 싫어했던 기피 업무였다.

다행히(?) 지금은 공중전화가 거의 없어져 추억 속의 업무이기도 하다.


케이블, 통신주, 맨홀 등 통신자제의 적정한 입고, 출고, 재고관리를 하는 물류 업무를 새로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는 국영기업으로써 원활한 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전국적이고 대대적인 인프라투자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즉 민영화된 지금의 회사와는 다르게 그때는 국민들로부터 이익을 남기는 영리 사업이 주 사업이 아니고 국가 발전을 위해 통신망 인프라 투자 건설이 핵심 사업이었다.


낮에는 물품 자산 회계처리와 관련 보고서 작성, 물품 분출에 헤매고, 밤에는 장부 재고와 실물재고를 맞추는 재고 정리를 하면서 매일 저녁 늦게까지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듯이 바쁘게 그리고 정신없이 2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친절한 기술직 입사 동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동기님들... 지금 어디서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만나서 소주 한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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