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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쏨땀쏨땀 애슐리 Nov 12. 2019

경기도 다낭시가 지겨워졌다면

인니, 말레이로 눈 돌려 보세요.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지역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언어장벽이 낮고, 카톡으로 스파나 음식점 예약을 편리하게 할 수 있고, 그래서 굳이 이것저것 준비하지 않아도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반면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행 코스로만 줄줄이 물가가 훌쩍 뛰었다든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떠난 여행인데 현지인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많아서 해외 나온 기분이 덜 난다 하는 건 단점일 수 있다.

활화산인 족자카르타의 므라삐 화산. 가장 최근에는 2010년에 터졌다고 한다. 브로모&이젠 화산도 굉장히 유명한 여행 스팟이다. 화산을 보기위해 인니에 오는 여행자도 많다고 한다.


한국인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다는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베트남 다낭인지 경기도 다낭시인지 헷갈린다', '여기가 필리핀 세부인지 대명리조트 세부지점인지 모르겠다' 이런 느낌이 싫으신 분들은 족자카르타가 만족스러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 가장 유명한 여행지인 발리. 우붓의 힌두사원 띠르따음뿔에는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물 속에서 축복을 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한국화 된 여행지인가 아닌가는 직항이 뜨는 지역인가, LCC 스케줄이 촘촘한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다낭이나 세부 등은 그만의 매력이 물론 있지만 물리적으로 가깝고,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항공권이 싸기 때문에 한국인 가족단위 여행객으로 넘쳐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단 해당 지역으로 가는 노선이 많아야 항공권이 싸지고, 그러면 자연히 패키지 상품도 많아지고, 방송에 소개되기 쉬우니 매스미디어가 관광객을 대거 이끄는 사이클이 형성된다. tvN '꽃보다 청춘-라오스편(2014)'을 본 내 동생이 그 다음 휴가를 방비엥으로 떠났는데, 소감을 물었더니 "좋긴 했는데 가평인 줄 알았어"라는 소감을 남긴 게 기억난다. 2009년에 내가 갔을 땐 한국 사람이 드물었는데, 방송이 무섭긴 무섭구나 했었다.

우붓 네카미술관의 그림. 우붓에는 회화, 조각 등 발리니즈 미술의 특성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반대로 말하자면 족자카르타는 아시아 치고는 생각보다 멀고(자카르타까지만 가는 것도 7시간이 걸린다), 직항 편이 없고, 그러니 한국 사람이 잘 안 가고, 모든 정보가 온라인에 다 있는 시대지만 한글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다. 실제로 족자카르타에 머문 일주일 동안 한국 여행객은 딱 두 팀 봤다. 그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있는 호텔에서 신혼부부 한 팀, 공항에서 혼자 배낭여행을 온 20대 청년 한 명뿐이었다. 신기하게 중국인도 없었다. 이 세상에 중국인 관광객이 없는 곳이 있다니...아, 중국어로 대화하는 팀을 보긴 했다. 자카르타에 사는 화교들이니 인니 현지인이다.

우붓 하면 '논뷰'부터 떠오른다. 내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뒤로 펼쳐진 논.
해발 600m 높이의 계단식 논, '뜨갈랄랑'. 우붓의 대표 관광명소다.

일본 관광객들은 여행지가 상업화되기 전 즐기고, 한국 관광객들은 적당히 상업화되면 찾기 시작하고, 중국 사람들이 들어오면 이제 그곳은 완전히 상업적인 관광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르자면 내가 겪은 족자카르타는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 그만큼 관광 인프라가 덜 형성됐다는 말이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아직 순수한 현지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음식점엘 가서든, 가장 유명한 관광지에서도 바가지로 느껴질 만한 그 어떤 경험도 하지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의 낮과 밤. 관광지로서는 애매한 포지션의 도시라는 평가를 받지만 말레이 다른 지역으로 가기 전 이틀 정도는 묵을 만 하다.

그래서 연차를 2, 3일밖에 못 내는 겨울 여행이라면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처럼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적합하지만 여름휴가를 일주일 정도 쓸 수 있다면 조금 더 멀리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 아이가 있거나 어르신과 함께 하는 가족 여행이면 가까운 곳을 우선적으로 택해야 하겠지만 혈혈단신 젊은이들이라면 비행시간이 몇 시간 더 늘어나는 게 큰 부담은 아니니 선택지가 많아질 것이다.

인도의 중소도시같지만 쿠알라룸푸르의 '리틀인디아'다. 말레이엔 인도계 이민자도 많아서 저렴한 가격에 맛난 인도음식들을 실컷 먹을 수 있다.

비행시간도 시간이고, 계절도 딱 맞다. 지역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통상 우리나라의 여름인 5~9월엔 말레이시아 일부(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는 건기/우기 시기가 다르다)와 인도네시아가 건기이고, 우리나라의 겨울인 11~4월이 인도차이나 반도나 필리핀이 건기다. 동남아 여행은 건기가 진리다. 물론 우기라고 해서 우리나라 장마처럼 주야장천 비가 쏟아지지는 않는다. 집중호우인 '스콜'이 불과 몇십 분만 집중적으로 쏟아붓고는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 자체보다는 습도가 진짜 문제다. 그렇게 쏟아부었는데 열대기후에 햇빛이 내리쬐면 그 물기는 다 대기 중으로 증발해서 여행자를 땀에 절게 만든다. 그리고 배수 시스템이 그렇게 좋지 않다. 짧은 시간에 도시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가 오면 빗물인지 똥물인지(?) 모를 구정물이 발목까지, 재수 없으면 무릎까지 찰랑찰랑 찰 수도 있다.

인니, 말레이의 이국적임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이슬람교다.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해상모스크.

방콕처럼 번화한 대도시라면 우기라도 시간을 때울 쇼핑몰이나 카페 등이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만약 에메랄드빛 바다를 기대하고 푸켓이나 보라카이를 갔다면 더 안타깝다. 이 시기엔 태풍도 잦아서 예약해 놓은 호핑투어를 취소하거나, 피피섬으로 향하는 배가 안 떠 부랴부랴 현지에서 일정을 수정해야 하는 위험성이 있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투명한 바다와도 거리가 멀어진다.


나는 여름휴가 중 2번을 인도네시아, 2번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냈는데 그 시기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보낸 것보다 날씨 측면에서 훨씬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 적도와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뜨거운 햇빛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습도는 낮아 나무 그늘만 찾아 들어가도 입에서 '시원하다' 소리가 나온다. 발리나 족자카르타는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마저 느껴져서 가벼운 가디건이 참 유용했다. 


말레이시아 쁘렌띠안. 스쿠버 다이빙을 하지 않고, 스노쿨링으로도 바다거북이와 니모를 만날 수 있다. 사진들은 호핑투어도 아닌, 그냥 리조트 앞에서 찍었는데 이 정도다.

8월에 방문한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 쁘렌띠안은 '이게 진짜 에메랄드빛 바다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 년 중 4달가량을 환경보호를 위해 닫아놓는 노력이 있어서인지, 환상적인 수중환경을 자랑한다. 호핑 투어를 하러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리조트 앞바다에서 바다거북이와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니모와 나폴레옹 피시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말레이시아 말라카 뒷골목 풍경. 중국 같기도 하고, 어떤 곳은 쿠바 느낌이 나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당일치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1박 이상 하길 추천한다.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내가 태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등을 별로인 여행지로 평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태국병 말기 환자일 정도로 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다만 족자카르타를 영업하기 위해 쓴 여행기라 살짝 편파적인 것뿐. 첫 꼭지에 밝혔듯 이 여행기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족자카르타는 생소한 지역이기 때문에 몰라서 못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서 거기인 아시아가 지겨울 때, 미주나 유럽처럼 시차가 크고 물가가 비싼 곳은 부담스러운 여행자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다는 걸 알리고픈 마음이다.

말라카에는 강변을 따라 늘어선 벽들에 저렇게 독특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다 상점이겠거니 했는데, 가정집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9년 족자카르타 여행은 아무 생각도 안 하려 떠난, 순전히 쉼을 위한 여행이었다. 그래서 기록을 남길 의도도 없었고, 준비도 부족해 그냥 지나친 것들이 많았다. 심신에 여유가 없어 므라삐 화산, 좀블랑 동굴, 띠망 비치 등 대표적인 여행 스팟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2021년엔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직항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못다 한 족자카르타 여행기를 이어 쓰고 싶다.

또 만나자, 족자카르타! 아쉬운 이번 여행은 to be continued...(언제일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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