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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Jul 04. 2022

아시다시피 김신영은 천재다

헤어질 결심

* 헤어질 결심의 주요 내용에 스포는 아니지만, 약간의 내용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김신영은 천재다.

김신영이 김태현과 함께 콩트를 할 때(행님아) 남동생을 연기했지만 그가 자기 역할을 얼마나 기막히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지 그가 젠더벤딩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할 수 없었다. 종종 하는 할머니 연기도 마찬가지. 몸을 구부정하게 하거나 목소리를 떠는 등 전형적인 나이든 몸을 보여주는 식이 아니라 놀랍도록 구체적인 어떤 인물을 만들어내서 그 인물이 할법한 방식으로 몸을 쓰고 그 인물이 할법한 방식으로 말을 한다. 거기 앉아바라. 이렇게 털썩 주저앉아하는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누구를 연기하는 건지를 바로 관객들에게 전달해낸다.

이건 그냥 재능 정도가 아니라 젠더, 나이, 계급, 지역 등 범주가 나눠지고 사람들이 인상을 구성하는 세계의 작동원리를 훤히 다 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특히 성별과 관련해서 김신영의 '분석'이 탁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서 성별 구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특히 여자가 절대 할 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낸 다음 그런 금기 같은 걸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태연하고 신속하게 연기한다. 천연덕스럽게 뭐?라고 상대방의 의문을 일거에 일축하고 해소하면서.

김신영이 아는 형님에 나와 시원하게 하의를 내리는 시늉을 하며 동료 남자 연예인들, 특히 남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강호동의 턱을 떡 하고 빠트려 버리는 연기를 할 때, 남자 개그맨들이 자주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인 '고간을 붙잡고 아파하는 연기'도 종종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할 때, 나는 지금 본 게 뭐지?라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형사로 김신영 캐스팅한 건 아주 의도적인 선택이었을 거다. 일단 이 역할은 1부에서 고경표가 맡은 형사 오수완과 대구를 이룬다. 오형사는 공평하게 의심하는게 형사의 도리라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젊고 예쁘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서래를 쉽게 제외해버린 해준이 못마땅하다. 정의로운 형사는 무엇보다 불편부당해야 한다고 믿는 그는 기어이 '역차별'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오형사의 의심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또한 별다른 근거없이 젊고 예쁜 과부라는 것만으로 의심을 유지한다. 제 의심 자체가 이미 편견의 산물인 걸 모르는 인물. 그래서 해준은 오형사가 아무리 술먹고 꼬장을 부려도 스스로 떳떳하다.) 이포의 강력계 형사인 연수는 인싸인 듯한 오형사와 달리 아싸다. 동료들은 그에게 담배불조차 빌리지 않는다. 흡연자가 담배불조차 나누지 않는다니. 왕따가 공공연하다는 걸 박찬욱은 이 단 한장면으로 관객들에게 설명해낸다.

남초 사회에 적응한 강력계 여형사를 그리는 전형적 연기가 있다. 여자 형사들은 형사역할을 수행하면서 의도적으로 여성성으로 읽혀지는 젠더표현들을 감추고 긴 바바리, 긴 커트에서 숏단발 정도의 머리기장, 권위를 싣기 위해 약간 억누른 목소리와 털털하거나 담백한 성격 등을 연기한다. 가능한 여성임을 감추는 쪽이 남초 세계에서 직업적인 유능함으로 보여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연수는 거의 성별이 드러나지 않아보이는 착장을 했지만 이건 남초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그는 왕따를 당하고 있을 것이다. 이분법 어디에도 맞지 않는 존재라서. 연수는 살인사건 수사에 꽤 신이 나있고 질문이 많다. 어떤 장면에서는 서래를 의심하는 해준에게 그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한다. 다른 여형사가 했다면 역시 여형사가 감정적이라는 식의 지루한 성별편견의 반복이 될 수 있는 장면인데 그걸 김신영이 해서 질감이 달라진다. 김신영이 연기하는 연수라는 인물은 별 생각없이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가 다시 사건 수사의 세계로 이격없이 빠져드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김신영이 특별히 이 영화에서 그전과 다른 뛰어난 연기를 한 건 아니다. 김신영은 늘 그랬듯이 김신영했는데(=천재적인 연기를 했는데)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서 김신영이 천재적인 지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도록 서사와 구성의 맥락 안에서 보여줬다. 이런게 진짜 박찬욱이 기막히다고 생각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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