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에 결혼할 당시 남편은 대단히 지분구조가 복잡한 아반떼를 데리고 신혼집에 입성했다. 이 아반떼 구매 비용에는 어머님, 남편, 시동생의 돈이 들어간 상태였고 남편이 결혼한다 하니 그래도 신혼인데 차는 있어야되지 않냐며 어머님이 남편더러 아반떼를 가져가라 하신 것.
덕분에 안면튼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동생이랑 사이가 안좋아졌다..... 게다가 이 차의 명의는 아버님이셨다. 차량 보험도 아버님 명의고, 과태료 고지서 역시 시댁으로 날아갔다. 후훗 :)
당시 10년 가까이 장롱면허였던 나는 운전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굳이 운전연수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 때는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 운전도 못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구제해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본인이 술마시면 나를 대리기사, 택시기사로 쓰려는 것이었다. 내가 운전을 혼자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리고 이번 심야 택시 대란때 남편은 나를 매우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아반떼는 나의 초보시절에 기둥에도 긁고 벽에도 긁고 하면서 어라운드로 판금을 다 갈았다. 처음 사고 났을 땐 무려 조수석, 뒷문, 휀다까지 쫙~ 긁어먹는 바람에 남편에게 스케일이 남다르다는 감탄을 듣기도 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남편에게 사람이나 남의 차 안쳐서 참 다행이라고, 혼자 쳐박았으니 혼자 보험처리 하면 된다는 칭찬같지 않은 칭찬을 들었다. (물론 운전 기간이 늘다보니 남의 차 긁은 적도 있다. 차량보험 만쉐이~)
그렇게 나는 천장만 빼고 아반떼에게 새 옷을 입혀줬다.
여자들은 명품백에 환호하고 남자들은 자동차에 환호한다고 한다. 남자에게 있어 차는 본인을 어필하는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다. 때문에 차에 열광하는 성별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훨씬 많은 것. 남자들은 차를 비싼 지갑 또는 가방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선 어떤 차를 타는지가 그 사람의 이미지와 지위를 만들기 때문에 다들 큰 차, 고급차를 선호한다. 이 작은 한반도에 대형 세단이나 비싼 스포츠카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땅이 남아돌아 주차할 곳이 지천이거나 아우토반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질주 본능을 채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차가 또 다른 본인의 명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푸어도 유난히 한국에서 많이 나오는 것일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실화가 있다. 다니던 회사 회장님이 파타고니아 회장을 만나고 오시고는 그의 환경보호 철학에 감동해 기름먹는 괴물 아우디를 뒤로하고 국산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하신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차를 타고 자주 방문하시던 호텔에 갔는데 도어맨에게 '개무시'를 당하셨단다. 그 호텔은 도어맨들이 회장님 차번호를 알고 있을 정도로 자주 방문하던 곳이었는데 차가 바뀌었다고 그렇게 사람을 무시했다니. 며칠 타지도 않은 그 하이브리드 차량은 주차장 구석에 처박히고 다시 아우디를 타셨다는 슬픈 일화...
세상 물건에 별 욕심 없어 보이던 남편 역시 차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결혼한지 5~6년차쯤 되었을까, 남편이 갑자기 차가 갖고 싶다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자기는 결혼하고 나서 자기 명의로 된 비싼 물건을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나 뭐라나. 집도 자기 것이 아니고, 아반떼는 투자지분구조가 복잡한데다 명의는 아버님꺼였으니 절대로 자기 것이 아니란다. 결혼 시작부터 신혼여행에서 남들 선물 다 살 때 본인꺼는 면세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3단 우산밖에 없었다며 너무 서러웠다고. 그러므로 이제는 본인 이름으로 된 차를 가져야겠다는 무적논리를 주입시키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우리 형편에 새 차냐며 펄쩍 뛰었지만 점점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하는 남편을 외면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아반떼는 신혼집에 오기 훨씬 전부터 큰 사고가 났던 차량이라 상태가 그닥 좋진 않았던 데다가 내가 돌려깎기로 사고를 냈고 어느날부터 들려오는 괴상한 전자음으로 인해 아, 이제 진짜 차를 바꿔야 겠구나 싶은 상태가 되었다. 남편은 그렇게 '온전히 본인의 명의인' 차 구하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