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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13. 2022

명품 매장에 맞는 TPO

요즘도 명품 살 때 옷 차려 입고 갑니까?

추석 연휴가 끝났다.


결혼한지 9년차가 넘어가는 지금까지 매 명절마다 남편은 나에게 '명품 가방 하나 사줄테니 받고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며 흰소리를 한다. 명품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시끄럽다'로 일관해왔다.

 



어김없이 이번 추석에도 남편은 '가방 하나 사줄테니 제발 조용히 해줘'를 외치던 중이었고 나는 '싫다' 로 일관하던 중 엄마집에 갔더니 10월에 친척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아, 명품가방을 하나 새로 마련해야 되겠군.

결혼한지 오래되고 보니 행사 때 마땅히 들 가방이 없었다.

곧 10주년도 오고 하니 겸사겸사 명품 백 하나 살까? 싶었고.


근래 호감 갖고 있는 브랜드 중에 S가 있었다.

가격은 L만큼 나가는데 인지도는 좀(?) 하지만 디자인이 예쁘다.

그리고 로제가 엠버서더다!


우리 부부야 원체 흔한 물건보다는 레어템을 선호하는 터라 내가 S 가방을 얘기하자 남편은 '그래, 그거 어디서 파는데? 빨리 사러가자!' 을 외쳤고 신세계를 갈까 롯데를 갈까 하다가 9월은 빅 지출의 달이니 그냥 아울렛을 가기로 했다.

문제는 S 아울렛 매장이 여주, 대전, 부산 프리미엄아울렛 외에는 없다는 것.

남편은 파주로 가는 줄 알고 나왔다가 여주를 간다고 하니 거기까지 가야 되냐며 절레절레.

내비는 100km넘는 거리를 가리키고 있었고 오늘까지는 톨비 면제다! 를 외치는 나였다.


날씨도 좋고 간만에 드라이브이기도 했고 일찍 출발한터라 생각보다 도로에 차도 없었고 가서 가방도 사고 맛있는거도 먹을 생각에 명절 스트레스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오픈런도 아닌데 명품 매장들마다 대기 줄이 만만찮았다.


이 와중에 남편은 여기까지 왔는데 암것도 안사면 앞으로도 가방 안사준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워낙 결정을 못하는 것을 알아서 미리 약치는거 누가 모를까봐서? 


한참을 걸어 도착한 S 매장 역시 대기가 있었고 P 매장보다 두 배도 넘는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간 매장에서 우린 찬밥 취급을 받았다.


검은색 가방이 없는지 문의했는데 내 앞에 있던 여직원 둘은 대꾸도 안하고 다른 손님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뒤에 서있던 남자직원이 '대답도 안하고 간다'투덜대는 내 말을 들은건지, 남편이 그 직원을 끌고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가자고 열내는 나에게 원은 검정색 가방을 들고 매보라, 남편은 그냥 그거 사라 난리를 피우는 통에 결국 가방을 사고 말았다.


명품 가방을 사서 좋지만 아까의 상황 때문에 빡침이 겹쳐 멘탈이 나간 나를 끌고 남편은 지갑을 사겠다며 옆 B 매장에 끌고갔다. 입구에서 안내직원은 우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모든 매니저들이 매장에서 고객님을 응대중이라 차례가 오면 입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명품 매장 입구에서 사람들을 줄 세우는 이유가 매장 내부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통제하는 것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도난, 제품 훼손 방지겠지) B 매장은 명확히 '고객의 쇼핑 편의를 위함'이라고 안내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매장 내 직원이 고객에게 제 때 응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니까.


남편은 로고가 야광이라며 신나서 지갑을 하나 사들고 나왔는데 입장부터 퇴장까지 직원은 우리의 쇼핑을 도왔다. S에서 지불한 가격의 10분의 1밖에 지출하지 않았는데 응대의 질은 완전히 달랐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루이까00 매장 입구에 걸려있는 미니백이 귀여워서 앞에 얼쩡거리고 있으니 매장 직원이 뛰어나왔다. 역시나 이 매장에서도 S에서 지불한 가격의 10분의 1 금액을 지출했는데 직원의 태도는 달랐다.


차로 돌아오니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푸대접을 받고 S가방을 산게 속상했다. 하지만 남편은 기왕 여기까지 그 브랜드 찾아 왔으니 가방 하나는 내 손에 쥐어주고 싶었을테지...




한동안 명품 매장에 가려면 옷을 차려입고 가야 무시를 안당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매장 직원들이 그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응대를 한다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직원이 손님의 겉모습으로 구매력을 어떻게 알아? 라는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 기가막히게도 내가 그 상황이 되었다.


여주 맛집을 찾아보기는 커녕 집에 가자 하고는 돌아오는 내내 남편에게 '내가 운동화 신고 있어서 그래? 이거 나이키 이번 시즌 신상인데... 내가 티셔츠 입어서 그런걸까?' 등등의 바보같은 질문을 쏟아냈고 남편은 '신경쓰지마. 그 여직원들이 따라간 우리 앞에 서있던 그 아줌마들, 여기 오려고 짝퉁 들고왔다 그랬어. 그 매장 직원들은 짝퉁도 구별할 줄 모르나보지' 라고 했다.


아, 어쨌든 옷차림이 문제인가보군.

근데 내가 왜 매장직원에게 잘 보이려 옷을 차려입어야 되는거지?


내가 계속 꿍해있으면 큰 맘 먹고 경조사비 털어 비싼 가방값을 지출해준 남편이 속상하겠다 싶어서 그냥 잘 매고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그래서 S에서 고객만족 설문 조사 요청이 와 있길래 매장에서 있었던 상황을 썼고, 점장이라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


씨씨티비로 상황을 확인했고(명품매장이니 당연 매장 씨씨티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음) 해당 상황이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으며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까지 다 찍혀있었단다. 그 와중에 가방 구매까지 해주셔서 고맙고 죄송하다고. 자기 번호 저장해놨다가 여주에 오면 자신이 직접 쇼핑을 돕겠다고. 순간 점장이 쇼핑을 도우면 나에게 무슨 혜택이 있나 생각했다. 없는 것 같다.


여주 갈 일도 없고 이제 S는 스킵할 것 같은데.


브랜드의 좋은 이미지를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렇게 힘들게 쌓은 이미지를 매장 직원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걸 몰랐을까.


내가 구매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응대한 것이냐 물었는데 매장에서는 손님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고 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무시였다.


점장으로부터 직원 교육과 재발 방지를 약속받았지만 그게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지 나에게 도움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발생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나에게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인데 내 입장에선 말 그대로 돈쓰고 기분나쁜 꼴이 되었으니.


비싼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라 손님 상태를 보고 지불여력을 가늠하는 것일까? 대체 무슨 기준일까? 확실한건 그들 눈에 우리는 지불여력이 없어보였나보다.


그래도 앞으로 명품 매장에 갈 일 있으면 어제처럼 입고 갈 예정이다. 그럼 또 마음 속에서 지워버릴 브랜드가 생기게 될까?


손쉽게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명품을 구매하려고 지출 계획도 세우고 상품도 찾아본다. 적은 금액의 물건이 아니니까. 나처럼 특별한 날에 맞춰 구매하는 경우도 많을테고. 명품이라면 콧대를 세우기 전에 그 브랜드를 찾은 고객들의 경험과 사연들에게 진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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