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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ug 02. 2022

딜레마에 빠져야 딜레마존인가요?


운전을 시작한지 적지 않은 기간이 흘렀다. 장롱면허 상태로 결혼을 했고, 남편은 나를 대리기사로 쓰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의 온갖 짜증을 견디며 운전연수를 강행했다.(결국 중간에 서로 폭발해서 운전연수 선생님을 불렀지만... 가족끼리 그런거 하는거 아닙니다...)


내가 면허를 딴 07년도에는 장내 기능시험이 엄청 복잡했었다. 젤 싫은게 평행주차였으니까. 사실 S 도 싫고 T도 싫었다. 그런데 이걸 안하면 마트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를 못한다.


당시는 기능시험 코스 한 번 돌면 식은땀이 줄줄 났고 선생님이 운전석 문짝에 분필로 선을 그어 두고 어깨를 거기다 맞추라고 하는 공식을 알려주는 시대였다.(이렇게 운전을 배우면 큰 차는 운전하기가 참 어렵다. 남편은 맨날 베르나로 면허 딴 애들은 베르나 크키의 소형차를 몰아야 된다고 한다. ㅋ) 기능시험 불합격은 심심찮게 나왔던 때였고.


그런데 어느 순간 시동 켜고 갔다 서면 면허를 주는 말도 안되는 시대가 있다 하더니 그 다음엔 좀 돌다가 주차 한번 하면 통과시켜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https://theqoo.net/square/2402732300


이런 상황이다보니 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저리 복잡한 장내기능시험을 통과하고 도로주행을 일정시간 의무적으로 시행했음에도 도로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운전연수 샘이랑 20시간 가까이 도로주행을 추가로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남편을 옆에 태우고 100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도 여전히 혼자 시동을 걸 때면 운전이 두렵고 주차할 때마다 진을 뺀다.(여전히 좁은 골목길은 못들어가고 번화가 갈 일 있으면 그냥 차를 놓고 가는게 맘 편하다.)


그런데 11년 중순 이후 면허를 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도로에 나오는 것일까. 간혹 도로의 빌런을 만나면 '저놈이 그 때 면허를 딴건가!' 할 때도 있고. 솔직히 11년 6월~16년 12월 사이에 딴 면허는 기능시험을 다시 봐야 된다고 본다.




일전에 스팅어 이야기를 쓸 당시 사고 관련 글에 딜레마존에서 사고를 유발한거 아니냐는 댓글들이 간간이 있었다. 내가 딜레마존에서 서는 바람에 트럭이 박았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교차로 진입 전 주황불을 보고 정지했고 몇 초 뒤 트럭이 달려와 후미추돌한 사고인데 그걸 왜 사고 유발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가 사고유발을 한것이라면 트럭이 바로 추돌을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물론 트럭은 빗길 과속+졸음운전이었다. 그리고 이 사고와 관계없지만 차간거리 미확보는 뒷차 과실이다.)


운전자들에게 난감한 순간들 중 하나가 신호과속 카메라가 설치된 교차로 전 애매한 거리에서 황색신호가 들어왔을 때다. 오죽하면 이 곳의 이름이 딜레마존이겠는가.  이건 굳이 초보가 아니더라도 아차하는 순간 굉장한 찜찜함을 남기게 되는 곳이다.


'찍혔나? 아닌가? 번쩍 했나? 아닌 것 같은데? 아오씨, 그냥 좀 빨리(천천히) 올걸 그랬나? 아니 왜 앞차는 저따위로 운전을 해서 사람을 애매하게 만드는거야? 이거 찍히면 벌금이 얼마더라? 벌점도 있었나?' 등등등. 대부분 운전자들은 이 중 한가지는 생각해 본 적 있을 듯.


특히 신호과속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는 교차로 한가운데서 정체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정지 신호로 바뀌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초보 시절에는 딜레마존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속도로나 간선도로 타는 것이 아니면 운전대를 거의 안잡으려 했다. 어쩌다 괜히 황색신호에 교차로 진입이라도 하면 밤새 이불킥을 하면서 잠을 못잘 정도였으니까. 벌금 낼 돈이면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데!!(이랬지만 정작 찍힌 적은 없었다.)


이게 괜찮아지려면 약 2~3달 가까이 짧은 구간이라도 매일 운전을 해야 한다. 내 경험상으로는 그랬다. 몇 년 동안 띄엄띄엄 운전을 하다가 남편이 차를 안쓰게 되면서 매일 출퇴근을 차로 하면서부터 딜레마존에 대한 감각이 생겼으니까.


내가 다니는 길은 편도 10km가 채 안되는 시내 구간인데  어마무시한 S자 코스와 어린이보호구역 카메라 2번, 신호과속(50짜리)카메라 3번을 만나는 환상의 구간이다.


차라리 30짜리 카메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면 된다. 어차피 주황불 들어오면 서면 되니까. 그 속도면 황색등이 들어오면 스무스하게 정지하면 된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50이나 60짜리 신호과속 카메라다. 자칫 애매하게 진입했을 때 달리면 과속이고 늦추면 신호위반이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정지선 앞에 두 점이 있고 그걸 밟아야 1차 감지고 그 다음 2차 감지선이 있는데 그거까지 밟아야 단속이 되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운전하다보면 그런건 잘 안보이기 때문에(제대로 본 적도 없다) 이걸 빠져나가거나 서거나 하는 것은 오롯이 감에 의존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얘기는 '찍혔나?' 하면 대부분 안찍혔고, '아오 ㅅㅂ, 찍혔네' 하면 찍혔다는 것. 눈 앞에 불이 번쩍 하면 백프로라는데 번쩍 안하고도 찍히는 경우도 있단다.

 

물론 과속단속 카메라의 설치 목적은 벌금을 신나게 퍼부으려는 것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위험한 과속을 못하게 방지하는 것이겠지만 대부분 곡선구간 진입 전이나 사고다발구간 진입 전에 설치되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내부나 간선, 고속도로 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과속카메라는 대부분 곡선 시작 구간이나 사고 발생 위험 구간 전에 있다는 것을. 카메라 설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원래도 과속은 거의 안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신호과속 카메라는 정말이지 시내 운전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몇 년 전 아르메니아로 출장을 갔었는데 신호등 옆에 숫자 표시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걸 본 순간 '아니 이런 좋은 시스템이 왜 우리나라엔 없는건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중국도 신호등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https://trivia.tistory.com/m/169

이걸 설치하면 딜레마존의 모든 상황들이 한방에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이걸 도입하지 않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에는 보행 신호에만 이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보행 신호도 처음엔 점멸로 표시하다 잔여 시간이 나오니 사람들이 못 건너갈 시간이다 싶으면 알아서 포기를 하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전에는 점멸신호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횡단보도에 들어서고 봤는데 이제는 신호기 옆에 남은 시간이 나오니까 내가 건널 수 있나 없나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된 것.


자동차 역시 주행 중에 신호등이 언제 바뀔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내 앞에서 신호가 안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나간다. 이럴 때 해당 신호마다 잔여 시간이 카운팅 되면 내가 지금 이 구간에 진입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될 텐데 왜 이 좋은 걸 시행하지 않는 것일까?


첫째로 비용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만약 비용이 문제라면 일단 주요 교차로들에만 시범적으로 설치해서 효과가 좋으면 전체 도로로 확산시키면 참 좋을 것 같다.(남는 예산 있잖아요.... 연말에 보도블럭 뒤집고 하는 그런거. 아니면 아침에 일제히 음주단속을 해서 벌금을 왕창 버는 방법도 있고. 요즘 숙취 운전이 문제라 하니...) 이게 설치되면 많은 운전자들이 딜레마존에서 헤매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시내 운전 스트레스도 그만큼 줄어들테고. 급정거, 급출발도 확연히 줄어들 것이니 사고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비용으로 따져보면 설치비를 상회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올 3월에는 티맵에서 신호 잔여시간을 표시한다는 기사가 한동안 있었는데 애플 카플레이를 썼더니 본 적이 없다... (시행 안하는건가??)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을 도입하자는 요구들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나 역시 교통 관련 아이디어 공모전 같은 곳에 이 아이디어를 낸 적이 몇 번 있었고. 그런데 이 아이디어에 대한 댓글들에 '저거 설치되면 빨리 통과 하려고 가속하는 놈들이 분명 있어서 위험하다'라는 의견이 꽤 많았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3초 남았다고 풀악셀 당기는 놈들은 딜레마존이든 어디서든 엉망으로 운전하는 놈들이다. 그런 난폭운전자는 운전자 중에 그리 많지 않은 비율이다. 도로에는 정상적인 운전자들이 훨씬 많으니까. 무법자들 때문에 다수의 운전자 편의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단 말은 이런 때 쓰는 것.


얼른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이 도로에 설치되어 전방에 신호과속 교차로를 만나도 두근두근 하지 않는 그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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