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이트들에서는 멤버십 혜택을 짱짱하게 준다. 구독경제에서 발생한 구독 서비스라는 것인데 단지 회원가입으로 인해 받는 회원 혜택이 아니라 월마다 정기적으로 사용료를 결제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회원가입과는 다른 형태의 서비스이다. 물론 매월 지불하는 정기결제 비용보다 혜택이 크므로 사람들은 이 서비스를 애용한다.
이런 구독 서비스는 아마 쿠팡이 먼저 시작했을테고, 가장 잘 나갔고 독보적인 위치였을 것. 월 2,900원에 모든 물건이 무료배송/무료반품이라는데 누가 안쓰겠는가.
하지만 이 분야에서 지금은 네이버를 필두로 이마트, 아마존 등등에서 어마어마한 혜택을 쏟아부으면서 구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구독서비스가 기존 회원(쿠팡 구독자) 나눠먹기라는 말이 있다. 이걸 이용하는 사람 수는 정해져있는데 이제는 로켓을 버리고 나의 구독자가 되어라! 하는 것.
그런데 이용자의 이동은 한편으로는 쉬워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뭘 많이 주면 사람들이 혹해서 움직일 것 같지만 사람은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특별히 그 서비스에서 큰 불만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고정적으로 사용하던 부분을 바꾸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쿠팡의 사용자들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겠지.
쿠팡 로켓 멤버십 서비스를 사용한지 벌써 4년이 넘어서는 것 같다. 여기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세가지다. 로켓배송, 무료 반품, 그리고 구매기록 관리. (대부분 같은 이유일테다)
* 배송
물건을 시키면 로켓처럼 날아온다 해서 로켓배송이었던가. 처음에는 신기했고 이제는 당일이나 담날 새벽에 달려오는 물건이 아닌 이상 기다리지 못한다. 해외는 택배를 시키면 배송기일이 1주는 기본인데 우리나라는 3일 안에 다 오지만 쿠팡 유저들은 그마저도 못 기다리는 것. 이렇게 시키자마자 당일저녁 또는 다음날에 배송이 와버리면 주문 품목들을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다.
* 무료반품
내 과실로 반품을 하면 무조건 반품 택배비를 동봉하거나 주문 금액에서 까야한다. 이건 국룰이다. 택배비는 상품가와 별도니까. 하지만 쿠팡은 이 룰을 깼다. 로켓배송 물건은 무조건 무료반품이다. 게다가 다른 서비스사들은 본인들 문제로 교환을 해야 할 때에도 물건이 회수가 되고 그것이 확인이 되어야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주었는데 쿠팡은 그냥 일단 새제품을 보낸다. 그리고 회수는 그 다음. 이 얼마나 신속한 교환이란 말인가.
* 구매기록 관리
택배를 여기저기 시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무엇을 언제 샀는지 기억하는 일은 정말이지 진이 빠지는 일이다. 택배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살면서 그 많은 주문 목록을 어떻게 기억하나.
그리고 어떤 물건이 좋았어서 다시 사려고 하는데 내가 이걸 어디서 샀더라...? 하는 일도 비일비재 한데 쿠팡을 쓰고부터는 그냥 쿠팡에서 구매기록을 찾아 검색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한 사이트에 정착하면서 나의 구매기록은 한 곳에 저장되었다. 더구나 그 곳에서는 월 2,900원만 내면 (지금은 쿠팡플레이가 생기면서 4,990원으로 비용이 올랐다)빠른 배송은 물론, 내가 마음이 변해서 물건이 맘에 안든다 하더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료반품을 받는다.
그들이 나의 정보를 가져가고 소비패턴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하는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필요한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어 좋을 뿐.
그리고 판매되는 물건의 가격을 따져보면 딱히 그렇게 비싸지도 싸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굳이 안쓸 이유도 없었던 것. 그리고 곰곰이라는 쿠팡의 PB 상품은 어찌보면 좀 양아치같지만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물건과 유사한 품질의 상품을 50원에서 백원정도 싸게 팔고있다. 그래서 상품비교조차 귀찮을 때는 그냥 상품명 검색 -> 곰곰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꽤 많다. 지인들 집에 가보면 내가 쓰는 곰곰을 쟤도 쓰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렇게 나는 쿠팡에 길들여졌다.
게다가 넷플이나 티빙의 컨텐츠까지는 아니더라도 쿠플에도 볼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네이버멤버십에서 2달 무료 이벤트를 시작했다.
일전에 네이버 멤버십을 쓰면 포인트 적립률이 꽤 쏠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한번 써볼까 싶은 마음도 들던 중에 광고를 딱 마주친 것.
쿠팡을 너무 오래 쓰다보니 이제 프레시 물건들은 대부분 먹어본 것들이었고 로켓배송 물건들은 대부분 써본 물건들이었다.
나는 이제 슬슬 쿠팡이 지겨웠던 것이다.
권태기라고 해야할까.
가격도 좀 비싼 것 같기도 하고 물건도 좀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포인트 적립도 없고. 갑자기 쿠팡이 못미더워 보였다.
그렇게 네이버 멤버십 2달 무료 + 네이버웹툰 쿠키 49개 + 티빙 1달 서비스를 준다길래 냉큼 네이버 멤버십으로 이동했다. 호기롭게 쿠팡과 쿠팡플레이 앱도 지웠다.
그렇게 쿠팡을 떠나고 나니 카드값이 확 줄었다. 정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불편해서였던 것.
네이버쇼핑은 입점 업체가 매우 많지만 각 업체마다 배송비가 있고 네이버 자체결제가 되는곳과 상품이 한정적이다. 맘에 드는 물건 하나를 사려 하니 매번 발생하는 그놈의 배송비 때문에 멈칫. 2,500원부터 시작되는 물건별 배송비가 이렇게 커보이다니. 그럼 이마트처럼 얼마 이상 모아서 사면 배송비가 줄어드나? 그것도 아니었다. 매장 구성이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것인지 같은 매장인 것 같은데 각각 배송비가 부과되는 것들도 있었고... 혼돈의 도가니탕이었다.
게다가 물건을 사려고했더니 해당 사이트로 납치+회원가입까지 요구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게 가장 크리티컬한 문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놔, 가입안해! 안 산다고!
그렇게 구매를 하지않다보니 카드를 쓸 일이 확 줄어든 것이다.
물건을 안사니까 그 적립률 높다는 포인트 쌓일 일도 별로 없었다.
쇼핑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더 늘어났는데 물건을 못사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쿠팡을 끊고나니 내가 좋아하는 네이버 웹툰의 무료쿠키를 구할 길이 사라졌다. 쿠팡은 매일 2,5,10만원당 웹툰쿠키를 퍼주고 있었는데 쿠팡을 끊으니 무료쿠키를 구할 길이 사라진 것. 미리보기를 하고 싶은데 현질하기는 좀 그런마음...
더 큰 문제는 생리대였다. 쿠팡 유저들이 포기 못하는 것은 기저귀랑 생리대라 하던데 나 역시 그 덫에 걸렸다. 그런건 좀 미리미리 사놓으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쿠팡을 몇 년 쓴 사람들이 생리대를 미리 쌓아둘 리 만무. 시키면 내일 오는데 굳이 창고 비좁게 쌓아둘 리 없지 않는가.
내가 쓰는 생리대는 집 근처 마트에는 없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겠다며 이마트에 4만원을 꽉꽉 채워서 주문을 했다. 아.. 이제 좀 많이 불편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쿠팡을 끊자마자 뭐 그리 사야될 것들이 자꾸 튀어나오는지. 잘 떨어지지도 않던 화장품은 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며 세제랑 칫솔은 왜 또 바닥을 보이는건데... 네이버를 뒤져봐도 또 배송비 지옥의 도돌이표.
그리고 왜 쿠팡 끊자마자 손흥민 친선경기는 쿠플에서만 중계하는건가.
눈물을 머금고 안(못)봤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참았다.
나는 이제 쿠팡을 떠나 네이버멤버십 쓰는 사람이니까 참아야한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결국 굴복해버렸다.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면서. ㅋ
자가격리에는 답이 없다. 그냥 바로 와우멤버십을 결제했다.
그리고 나서 그동안 못샀던 물건들을 싹 다 구매했다.
그렇게 이번달 카드값이 폭발했다.
나를쿠팡의 노예라고 놀리던 남편 역시 나에게 쿠팡 상품 링크를 보내면서 '이거 사줘'를 다시 시작했다. 아니 이럴거면서 왜 나를 놀린거냐.
나는 결국 고작 한달 남짓 버티고는 다시 쿠팡의 품으로 돌아와버렸다.
쿠팡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고 7천원 쿠폰도 줬다.
이건 졌잘싸도 아니고 그냥 패잔병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어린왕자에서 말했다.
당신이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쿠팡은 길들인 유저들을 언제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매번 적자라는데 안무너지고 잘 버텨줘야 할텐데... 같은 괜스런 우려도 해본다.
떠나보니 알았다. 없으니 너무 불편하다.
이러다 도시도 못 떠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조금만 시외로 벗어나도 로켓배송이 안된다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