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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pr 15. 2022

도서관에서 돈 내고 책 보기?  공공대출보상권

도서정가제에 이어 이제는 공공대출보상권(PLR: Public Lending Right)을 포함한 저작권법 개정 법안이 발의되었다. 취지는 대출 횟수에 따라 도서관이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하라는 의도인데 이건 어찌보면 맞는 말이지만 명확히 보면 그 속내가 표명하는 취지와 좀 다르다. 법안을 보면 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책 때문에 작가와 출판사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그걸 보상해라, 외국도 다 이렇게 하고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유럽과 일부 국가에서 시행중인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에선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전세계 꼴찌에 가깝다. 성인 한 명당 한 해에 읽는 책이 4.5권 밖에 되지 않고, 성인 10명 중 절반 이상이 1년 내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니까.(창피. 이와중에 부커상수상자, 최종후보자가 나오는 나라다)그리고 그 와중에 20대들은 웹소설을 보고 있으니 이걸 독서로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고지식한 나는 물음표가 떠오르기 일쑤.


이런 참담한 독서율의 나라에서 이제는 공공도서관에게 책 이용료를 징수하겠다는 법안이 나왔다. 인간은 자유를 주면 태만해지기 일쑤여서 무료인 것에 돈을 내라고 강제를 하면 마지못해서라도 책을 읽을까봐? 오히려 더 안 읽겠지.


그럼 이 논란의 공공대출보상권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공공도서관에서 무료로 대출해주는 책에 대해서 대출 횟수당 비용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도서대여점인가?)


도서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쓸 수 없다. 그래서 사서들은 신중히 자료를 골라서 구매하고 이용자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운영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여기서 저작권료를 지불하라고 하는 것이다. 시작은 공공도서관에서 먼저 진행 예정이고 보상비는 약 300억 정도를 책정할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아래 통계상 공공도서관의 대출권수를 보상비로 나눠보면 대출권당 약 255원 정도 보상이 예상된다. 물론 인기있는 책의 출판사나 저자가 많이 가져가겠지.

 그리고 300억원어치의 자료는 구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먼저 공공도서관이 뭔지부터 간단히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될 것 같다.

[공공도서관(公共圖書館. public library)]

한자표기에는 '공평할 공'자가 포함되어 있고 public의 뜻은 '대중을 위한(정부의 의지가 들어간)' 이라는 의미이다.


공공도서관의 설립 취지는 찾아보면 이곳 저곳에 역사를 포함해서 멋지게 설명되어 있지만 간단히 '나라에서 국민을 위해 그들이 독서, 정보찾기, 문화활동, 평생교육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립해서 운영하는 곳'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정부에서 공익의 목적을 위해 세금으로 짓고 운영하는 곳이라는 것.


때문에 도서관 관련 급여체계가 몇십년 째 최저임금으로 운영되는 것은 이런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매출을 발생시키는 업종이 아니기에. 오히려 양질의 자료를 구하고 이용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인건비 보다 자료구입비와 독서활동 도모를 위한 행사비의 지출이 큰 분야이다.)


도서관(Library)의 정의를 찾아보면 '도서나 기타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여 독자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되어있다. 도서관은 고대로부터는 기록물을 수집, 보관의 역할이 주였다면 이제는 제공까지 한다. 도서관은 기록을 모아두다가 정권이나 집권자가 바뀌면 통째로 불살라지기도 하고,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기도 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왔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되어오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납본을 받아 자료의 저장 기능을 극대화 하고 있고, 공공, 대학, 학교, 작은도서관 등에서 자료제공의 기능을 수행한다.


좀 더 과격한 표현을 가져와 보자면 1895년 유길준은 도서관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책을 보관하고 읽게 하여 세상에 무식한 사람을 없애는 곳'


무식이라니... -_-

여튼 도서관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공간인 것은 확실하니까 무식한 사람을 없애는 곳도 맞다.


나도 관련업종 10여년차 종사자로서 도서관에 대해 소개를 해보자면 '도서관이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양질의 자료에 접근해서 지적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공간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이 공공대출보상권 이야기에 우민화 정책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 같다. 출판사와 작가의 저작권 보장은 결국 자료 이용의 유료화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공공도서관 설립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고, 그 많은 책을 사서 보고, 보관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지식수준은 계속 상승할테지만, 책과 보관장소, 디지털자료+디바이스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지식수준은 그에 비해 당연히 뒤처질 수 밖에 없을테니까.


적어도 배움과 지식탐구에 있어서 최소한의 기회는 균등해야 된다는 것이 지금 도서관의 입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출판업계와 작가들이 공공대출보상권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저작권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무료로 빌려줘서 저작권자와 출판업계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면서 이를 보상해달라고 나선 것. 창작물과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당연히 보장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도서관 설립취지, 그리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장, 그리고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일부 잘나가는 작가와 출판사들이 더 이윤을 가져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내놓은 법안이라는 것을 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책을 굉장히 안 보는 나라이며 그래서 해마다 나라에서 독서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도서관마다 독서 관련 행사를 부지기수로 기획&시행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제발 책 좀 읽으라고 통사정을 하고 있다.(그러면서 도서판매 할인률을 10% 이내로 제한하는 도서정가제를 왜 계속 고수하는 것인가?)


그래도 독자들은 요지부동이다. 특히나 OTT 서비스와 유튜브 앓이중인 우리 국민들이 전에도 잘 안본 책을 찾아서(특히 구매해서) 볼 리 만무하다. 그러니 출판업계는 맨날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그런데 공공대출보상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이 것이 소탐대실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전국 공공도서관의 수는 약 1,134개, 학교도서관은 11,700개에 육박한다. 대학, 특수, 전문, 작은 도서관 등등까지 체크하면 거의 2만개에 가깝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법으로까지 도서관 운영에 대한 것들을 정해놓고 있으며 특히 학교도서관의 설치와 자료구입비를 법에 지정해 둘 정도로 도서관 설치과 장서 확충에 열심인 나라다.


그럼 생각해 볼 문제.


1. 인기 작가들의 책이야 그렇다 치더라손, 유명하지 않은 책들은 누가 살까? 하루에도 수백권씩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걸 최소라도 소화해 주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출판사와 작가 입장에서 보면 일단 퀄리티가 괜찮고 볼만한 책이라면 적어도 도서관에서 수서를 할 테니 만 권 정도는 판매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해볼 수 있다.(추측) 업계에서는 흥행성 없는 책들 구매하는 곳은 도서관 밖에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도서관이 없으면 일부 출판사들은 문 닫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시장에선 흥행성이 적어 잘 안 팔릴 책들도 도서관에는 '주제별 장서 구성 비율'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전 분야를 망라해서 사서들이 고심하고 회의하고 직접 발로 뛰면서 수서작업을 해서 도서관에 책을 비치한다. 이용자들은 이 책들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해 둔 도서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2.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는데 내용이 꽤 어렵거나 너무 두껍다? 도서관은 대출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산다.


3. 읽고 싶은 책이 대기마저 풀예약이다? 그럼 기다리기 싫은 사람들은 책을 산다. 읽고 중고로 팔아도 되니까.


4. 대여기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책들 중에 읽어봤더니 내용이 좋거나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 읽고도 내 서재에 두고 싶어서 구매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내 경우는 줄 치면서 읽고 싶은 책은 그냥 반납해버리고 책을 사서 맘껏 낙서하고 줄 치면서 읽는다.)


이것은 책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도서관의 순기능들이다.

이게 과연 도서관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저작권비용과 이 순기능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일까?

나는 인기없는 작가니까 후자를 고르고 싶다. (그렇다고 내 책을 도서관이 만 권 사준건 아니더라... ㅎ)




도서관 사서들에게서 하소연처럼 나오는 이야기 두 개가 있다.

1. 우리가 이벤트 회사 직원이냐.

2. 추천도서 좀 그만 물어봐라. (나도 저기 있는 몇십만권 다 못읽었다)


도서관에서는 사서들이 이용자들을 위해서 책 좀 읽으시라고 온갖 이벤트를 기획해서 책의 세계로 꼬신다. 한 권이라도 더 읽히려고 독서교실도 열고 책 관련 행사도 연다. 그런데 사서들이 마치 이벤트 회사 직원처럼 책을 열심히 홍보해도 출판사와 작가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강연회를 오면 강연료를 받아간다.


이렇게 독자들을 도서관에서 만들어내는 경우는 정말 많다. 학교도서관은 학교도서관대로 학생들을 책과 가까이 만들어 주려고 난리, 공공도서관은 공공도서관대로 제발 여러분들 책 좀 가까이 하시라고 난리. 책과 이용자를 위한 이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광고 행위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사서들이 늘 듣는 질문. '뭐가 재밌는 책이야?'

이 질문 들을 때마다 '이 수많은 책들 중에 내가 당신 취향을 어떻게 파악하고 당신의 관심 분야를 어떻게 알고 거기에 맞춰서 책을 꼭 집어서 알려줍니까!!!' 라고 외치지 않고!(직업이니깐!) 추천도서 목록을 주제별, 나이별, 성별별, 월별, 특별한 날별 등등으로 추린다. 하다못해 날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적당해도 우리 이용자님들은 다양하니깐 입맛에 맞게 고르시라고 책을 골라둔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에게 제발 이 책 좀 보시라고 여기저기 또! 홍보를 한다. 물론 이렇게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줘서 몸달아 일하는건 출판사와 작가들이 아니라 도서관 사서들이다. 이정도면 출판사에서 사서들한테 월급을 줘야 될 판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 책 사달라고, 홍보해달라고 한 적 없다고 할까?ㅎㅎ


이렇게 노력하는 도서관과 사서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숨겨져 있던 책들이 빛을 보고 있는지 과연 일부 출판사들과 작가들은 알까...싶어진다.(만나본 작가님들 중에는 도서관의 순기능을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책으로 보상금을 받는 것 보다 자신의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이라는 채널이 꼭 필요함은 물론이고. 나 역시 글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 보다는 누가 내 글을 재밌게 읽고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큰 편이니까.




도서정가제 및 공공대출보상권을 포함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예산이 부족해서 공무원 외 일반 사서들을 최대한 최저임금으로 고용해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더 위축시키게 될 것이고, 자료구입비를 줄이게 될 것이며(도서관 예산을 단 10원도 안빼겠다고 하는데 법안을 들여다 보면 비용을 국가가 전부 또는 일부를 도서관에 지원해라 이런식으로 써있다. 일부는 대체 얼마인가?) 이는 곧 다양한 주제의 자료보다는 인기있는 자료를 먼저 구비하게 될 것이기에(이용자서비스적 측면) 결국 인기자료 독식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길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국 이 법안이 통과되면 어차피 인기작과 인기 출판사들이 그 비용을 대부분 가져가게 될 것인데 지금도 도서관에서는 베스트셀러들은 여러 권 산다. 대출 요청이 많기도 하고 사람들 손을 많이 타면 책이 훼손이 잘 되기 때문에 한 권 살 것을 서너권 사게 되는 경우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봤기 때문에 책을 안 사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책 살 사람은 다 사는걸. 도서관이용자들이 도서구매율 역시 높다는것은 연구 결과로도 나와있다. 도서관에 있어서 안 샀다는 책은 도서관에 없어도 구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 이야기가 일부 작가들과 출판사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저작권의 개념과 작가와 출판의 권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의 공적 개념과 앞서 말한 도서관의 순기능으로 인한 책과 독자와의 만남 저변을 넓히는 부분을 더 고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법안은 공공도서관이 무료로 책 빌려주는건 권리 침해라고 말하기에 급급하여 공공도서관의 설립취지에 대한 이해와 해결 방안등에 대한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법안 발의 이전에 충분한 업계 및 사용자들의 논의를 더 통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정부가 보상하겠다는 발언을 할 거면 전부 또는 일부 지원이라는 두루뭉술한 말은 하지 말았어야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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