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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pr 06. 2022

담배냄새로 쩐 집에 이사했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 부부는 지금 집으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많이 고민하다 결정했고 다들 이런 시기에 어떻게 이사를 했냐며 놀라워했다.


그들의 놀람이 이사 후 우리의 놀람만 했을까...




평소 봐두었던 집이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사를 해야  시기였고 보고있던 집 매물이 뜨자마자 부랴부랴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집 보러 갈 약속을 잡았다. 부동산 시장이 미친듯이 출렁이던 시기였기에 을 보겠다 해도 기존 세입자가 집을 안보여주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고, 부동산에선 요즘 평면도 보면 대충 알지 않냐는 둥의 배짱 튕기는 일이 벌어지는 등등(억단위의 집 거래를 하는데 집을 보지도 않고 고르라니!!) 여러 집에서 방문 거절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방문 허가가 떨어진 그 집을 보러 가던 날은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다. 비오는 어두운 날인데 집 안에 불도 안 켜고 일부 암막커튼까지 치고 있는 상태라 집의 첫 인상은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아, 이사람들은 집을 거래할 생각이 없네' 라는 생각만.


현관에 들어섰을 때 집안을 떠돌던 담배냄새를 느끼고 더 이상  집을 볼 의지를 잃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왜 집에서 담배를 태우시냐며 흰소리를  나는 남편 옆구리를 찌르며 나가자는 신호를 했지만 아랑곳않고 남편은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른 집을 좀 더 알아보자고 했는데 남편은 이 집이 좋다고 했다. 대체 왜?? 컴컴하고 담배냄새가 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다른 집들에 비해  싸게 나와있던 것이 남편에겐 아마 큰 매력포인트였나 보다.(그렇게 싼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저분들이 내놓고는 싫은 티를 저리 내니까 더더욱 이 집을 선택해야 겠다나. 


부동산 초보인 우린 이 땐 몰랐다. 흡연자가 오래 산 집은 원래 가격을 빼서 거래한다는 것을.




습하기 짝이 없는 한여름날에 힘들게 이사를 했다. 대출은 왜 이리도 제한적인지. 더 슬프게도 이삿날 오후에 짐을 올리려 하자 장대비가 쏟아져서 물건이 다 젖었다. 이 집은 무슨 보러오는 날부터 계약하는 날, 이사하는 날까지 내내 비가 쏟아지나...


해가 다 지고서야 짐을 어느정도 올리고 지쳐서 거실에 잠시 널부러져 있는데 그때부터 스물스물 코를 공격하는 담배 찌든내. 도배까지 새로 한 집에서 지방의 허름한 담배 냄새 찌든 여관의 냄새가 나는걸까. 이사 당시에는 문을 다 열고있으니 몰랐는데 문을 닫고보니 도배풀 냄새 사이로 스물스물 올라오는 담배 냄새...


게다가 화장실에선 더 심한 냄새가 났다. 어이없어하는 날 보며 남편은 말했다. "타일이랑 천장에 누렇게 된 것들이 다 타르일걸?"


왓???!! 그럼 어떡해???!!!


닦으면 된다길래 가볍게 물걸레질을 예상했다. 그게 아니고 렌지후드 닦는 과정처럼 온 집을 벅벅 닦아야 된다고 왜 말을 안해준건가! 


남편이 도배를 다 뜯고 새로하자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미 남편은 그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단다. 시아버지도 집에서 담배를 피우신지 오래 으니 집 자체가 연기를 먹었을 것이라 판단한 것. 이사 당일에 도배를 는 집들은 빠른 도배를 위해 기존 도배지 위에 도배지바르경우가 많은데 굳이 비용 더 내고서라도 뜯는다고 고집을 부리길래 왜그러나 했는데 안뜯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 했다. 니코틴과 타르가 쩐 도배지 위에 새 도배지를 덧발랐다가는 그 냄새가 그대로 새 벽지 위로 올라온다는 것.


그래서 다 뜯고 도배를 새로 했는데도 담배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잘 것이란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밤새 누가 자꾸 옆에서 날 향해서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꿈을 꾸었다.


문제는 머리카락과 옷에도 담배 찌든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고 고약하게 따라붙는 냄새라니... 각종 포털을 다 뒤져서 깊게 밴 담배냄새 제거법을 검색했다. 대부분 스팀세척 이야기가 나왔다. 흡연 차량을 세척할 때 쓰는 방법들이었으니 집에 적용될 리 만무. 집을 비워논채로 작업하는 곳도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린 이미 이사했으니 불가능.


두번째로 피톤치드 이야기가 나왔다. 냄새로 봤을 땐 삼나무숲을 통째로 뽑아와 거실에 심더라도 해결이 불가능 할 것 같았다.


세번째로 향초, 페브리즈, 숯, 향 등의 냄새잡는 물체들이 있었다. 이건 생선굽는 냄새나 갑자기 발생한 음식냄새 등을 없앨 때는 가능할지 몰라도 찌든 담배냄새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네번째로 집에서 각종 생선과 고기를 매일 구워서 담배쩐내를 덮으라는...(시끄럿!)


다섯번째로 올리모델링......... (돈도 시간도 없단말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방법은 기름때 제거제로 벽과 타일 등을 닦아내는 방법이었다. 타르는 기름의 일종이라는 남편의 설명에 다이소에 달려가서 주방후드를 닦는 기름때 제거제를 왕창 사왔다. 사면서도 이거로 담배 찌든내 해결이 된다고? 라는 의구심만 잔뜩 들었지만...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화장실 타일에 기름때 제거 스프레이의 하얀 거품을 분사하고 조금 지나니 누런 거품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지난한 행군이 예상되었다. 저게 안 흘러 내려올때까지 네버엔딩이라 이거잖아...


그로부터 기름때 제거제를 흡연이 일어났을법한 공간마다 들이부었다. 화장실, 거실바닥, 문과 문틀 등등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누런 거품이 더이상 나오지 않을 때 까지 집을 닦아댔다. 닦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에 이사와서 이고생이지?그 할아버지는 대체 집안에서 왜 담배를 피운거? 정말이지 다 집어치우고 울고싶었다.


이사 몸살과 함께 덤으로 팔이 빠질듯한 근육통도 얻어서 한달은 끙끙 앓았다.




이제는 집 안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를 완전히 빼는데까지 반년은 걸린 것 같다. 다만 화장실 천장에 기름때제거제 거품과 함께 맺혀있던 타르의 자국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건 왜 안지워지는지...


혹시 아주 만약에 어쩔 수 없이 배냄새가 찌든 집을 거래할 때는..


1. 가격을 최대한 뺀다 - 담배쩐내 빼는 수고와 기간과 스트레스와 체력소모와 비용과 노력에 비할 정도로 빼야한다. 

2. 도배는 무조건 뜯어내고 한다. 덧붙이기 금지

3. 담배를 피운 위치로 추정되는 곳들의 벽, 타일, 바닥 등등을 기름때 제거제를 잔뜩 사서 뿌린 뒤 타르를 녹이고 닦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작업을 안하면 절대 담배냄새가 안사라진다. 여기저기 달라붙은 타르에서 쩐내가 나는 것이라했다.

4. 뭐니뭐니해도 담배냄새 쩐 집은 그냥 올리모델링을 하는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어쨌든간에 집안에서 담배는 안피우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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