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학교를 거치는 기간제교사 생활을 하다보면 스승의날 등등에 졸업생들이 모교를 찾아오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보게된다. 서울은 특히나 사립학교가 많다보니 교사가 한 학교에 계속 근무하고 있어서 졸업생들이 몇년씩 학교에 찾아오는 모습이 잦은편.(공립은 로테이션이라 교사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사립같은 분위기는 아닌듯하다)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나는 늘 한시적 근무자로 일정기간 일하다 떠나는게 일상이고 잦은 근무교 변경에 학생들과 개인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았다. 사생활 보호 문제도 있고, 요즘은 오픈톡방도 많고 밴드나 리로스쿨 등이 잘 되어있어 내 연락처를 굳이 밝히지 않고도 학생들에게 공지할 수 있는 수단은 많으니까.
작년에 딱 1년. 여고에 근무할 일이 있었다. 공학 아니면 남학교 근무가 많았던 터라 첫 여고 근무가 낯설고 신선했다. 여학생들만 있어서 그런지 그간 근무했던 학교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특이한 것은 학교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본관에 수도시설 공사가 불가하여 화장실이 건물밖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크기 마냥 지어진 학교였고 도서관은 화장실과 아주 정반대편에 있었다는 것.(덕분에 방광염까지 앓았던...)
화장실 한번 다녀오려면 먼 여행길 떠나듯이 가야했고 가는길에 교무실도 들르기도 하고 매점이 없어서 대학 매점까지 가야하는 등 별 생각없이 교내를 돌아다녔는데 그새 날 찾으러 온 학교를 돌았다는 학생이 있질 않나 다녀오면 정성스런 어디 계시냐는 원망의 포스트잇이 데스크에 붙어있질 않나... 다른 학교에선 이렇게까지 안찾던데...
결국도서관을 비울 때 상태 안내판 하단에 내 핸드폰 번호를 기입해두었다. 학생들이 도서관에 왔다가 내가 없는데 용건이 있을땐 도서관 전화로 내 폰에 연락할 수 있도록.
계약 종료를 앞둔 올 2월 초. 내가 다른 학교로 간다는걸 안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서 엉엉 울고 난리가 났었다. 게다가 학급이 줄어 특히나 기간제교사들이 많이 그만두게되어(거의 열명 가까이 떠난것 같다) 여기저기 울음바다였던...
아이들이 인스타를 알려달라 했지만 인스타를 안하는 나...ㅡ.ㅡ 그 와중에 아이들은 도서관 안내판에 내 폰번호가 기억이났는지 번호를 저장해도 되냐기에 그러라고 하고 여고를 떠나 남고에 와서 시커먼 녀석들과 투닥거리며 보낸 일년여의 시간도 지나 어느덧 12월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날아온 연락.
기말고사 기간이라 간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서 소파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벌떡 일으켜세운 연락. 도서부였던 00이의 대학 합격소식이었다. 기억난다. '쌤 제가 좋은일 생기면 꼭!연락드릴게요!기다리고 계세요!' 했던 그 표정이.
잊지않고 연락해줘서 고마운 마음, 매우 축하하는 마음 등등이 이 친구의 똘망한 얼굴과 교차되었다. 잘 할것같더니 치열하게 고3을 보내고 결국 해냈구나 싶어서 기특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학교마다 지친 기간제 교사를 일으켜세우는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 덕분에 힘내서 또 다른 학교에 가서도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고마운 녀석들! 너희들이 잘 되어서 쌤도 정말 기쁜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