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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적대는 끼서 Jan 15. 2023

광란의 카니발

네덜란드 도착 D+40

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어제는 대망의 카니발 첫날! 마스트리히트의 모든 가게가 쉬고, 모든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와서 미치는 바로 그 카니발이다. 그렇지만 아침부터 찌뿌둥한 하늘은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고, 덩달아 쌀쌀해진 날씨는 기껏 차려입은 한복 위에 겉옷을 입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름 카니발을 위해 맥주 한 궤짝을 구비해 놓은 만큼,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손에는 맥주병,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마켓 광장으로 향했다.

네덜란드에서 길거리 음주는 평소같으면 금지겠지만, 카니발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지 다들 그냥 밖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도 마켓에 도착해서 준비성있게 챙겨온 맥주를 꺼내 땄다.

하늘은 우중충했지만,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말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이한 의상은 기본이고 다들 화려한 페이스 페인팅까지 한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래부터는 윤진이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인데, 내가 찍은 것들보다 카니발 당일의 분위기가 훨씬 잘 느껴져서 윤진이의 허락을 맡고 포스팅에 올린다ㅎㅎㅎ 이번에는 가릴 얼굴들이 많다보니 스티커 대신 일괄 블러칠을 했다.

이렇게 의상을 맞춰 입은 사람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략 이런 분위기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마켓에서 구경하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 낯선 사람들. 사실 첨에 인종차별 발언 하려는 줄 알고 쫄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 박터트리기 같은 행사였던 것 같다. 근데 그.... 너무 무섭게 생긴거 아닌가요ㅋㅋㅋㅋㅋ밤에 보면 무서웠을듯




큰길쪽으로 나가니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었다. 사실 그냥 코스튬 입고 적당히 손 흔들며 지나가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본격적이라서 깜짝 놀람. 아래 사진처럼, 우리나라 놀이공원 퍼레이드마냥 거대한 움직이는 구조물을 탄 채 노래를 부르거나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일반인들'의 퍼레이드 행렬이 쭉 이어진다! 이 사람들 카니발에 진짜 진심이다. 듣자 하니 카니발 자체가 워낙 예전부터 이어져 온 큰 지역 행사다 보니 가족들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카니발 전통 같은게 있기도 한 모양이었다. (사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열심히 즐기는 걸 볼 수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다같이 즐길 수 있는 이런 지역 축제가 있는 게 참 좋아 보였다.


이렇게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길가에서 자유롭게 구경을 했는데,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한편에 쪼로록 앉아 있는게 너무 귀여웠다. 하긴 아침 일찍부터 분장하고 나오려면 피곤할 만도.


어린이들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올라프와 엘사의 만남ㅋㅋㅋㅋ올라프 친구의 얼굴을 가리는 바람에 엘사 어린이와 눈을 맞추고 쑥쓰럽게 웃는 표정이 사라져서 대충 그려넣었다.
이 사진은 화보처럼 나와서 내가 꼭 넣고 싶어서 가져왔다. 윤진이가 사진을 진짜 잘 찍는다...!!!!


낮동안은 밖에서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음식도 사먹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동네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이제는 저녁의 파티를 위해 준비할 시간! 우리는 리빙룸에 모여서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저녁에 나가면 분명 새벽에 들어올 테니까...^^ 물론 궤짝째 사둔 맥주를 열심히 비웠다.  나랑 지은이는 한복을 벗고 좀더 놀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윤진이가 페이스페인팅용 크레용을 가져와서(왼쪽 사진 우측 하단에 보면 크레용이 살짝 보인다ㅋㅋㅋㅋㅋ), 사진에는 블러칠해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얼굴에 이런저런 그림도 그렸다. 아침에 마켓에서 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의 페이스페인팅은 진짜 그냥 소소한 낙서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재밌었다. 우리는 카니발 준비랍시고 궤짝째 사두었던 맥주를 후루룩 비워내며 프리드링크를 했다. 다음번에는 엄청 큰 맥주통 모양으로 된 걸 사봐도 좋을 것 같다.


어둑어둑한 시간이 다 돼서 마켓으로 내려가자 낮에 비해 몇 배는 많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당연히 클럽마다 줄이 길었다. 우리는 디 알라로 들어가는 줄에 서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웬 중년쯤 돼보이는 아저씨가 스몰토크를 시도하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다들 이미 프리드링크를 하고 와서 모르는 사람이랑 잘 이야기한 걸지도ㅎ 근데 아저씨는 처음에는 그냥 카니발을 즐기는 시민들끼리의 가벼운 스몰토크인 척 하더니, 나중에는 본색을 드러내고 자기 친구랑 같이 클럽 안에서 놀지 않겠냐고 부담스럽게 추근덕대기 시작했다. (나중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아저씨 친구도 당연히 아저씨였다) 아니 우리는 20대 초반이고요... 글고 여기 사람들은 아시안이다보니 우리를 제 나이보다도 훨씬 어리게 보던데, 진짜 제정신인가 싶었음; 우리는 이상한 아저씨들을 가까스로 떨쳐내고 디 알라에 들어가서 우리끼리 재밌게 놀았다. 카니발에는 원래 모르는 사람이랑도 거리에서 막 재밌게 얘기하고 그런건가보다~ 했는데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밤에는 노느라 정신없어서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생애 첫 카니발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역시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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