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콩 Mar 05. 2024

묘연도 인연

2014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어느 봄날.

몇 달 동안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 그 순간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엔 모란장에서 새끼 고양이와 강아지를 파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가끔 오일장을 구경할 겸 맛있는 것도 먹을 겸 모란시장을 가던 나였으나 그날은 일생일대(?)의 결정을 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반대로 키우지 못하고 독립한 이후에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동물이긴 하나 내가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몇 달 동안의 고심 끝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데려와야겠다.라는 결심이 선 다음에 찾아간 모란5일장이었다. 시장에 들어선 이후에도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한 마리의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진회색의 날렵한 새끼 고양이였다. 러시안블루의 피가 섞여 있는 듯한 이쁜 새끼고양이였다. 너무 이쁜 나머지 바로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아직도 고민이 많은 내 머릿속엔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장을 한 바퀴만 돌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있으면 데리고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 다시 그 자리에 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입양되고 난 다음이었다.


역시, 아직은 아닌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돌아나가던 길에 한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새끼 고양이를 데려가라며.

"한 마리에 삼천 원, 두 마리에 오천 원에 데려가."

라는 말과 뺙뺙 거리던 새끼고양이들을 마주한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무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첫 반려묘를 들이는 나에게 새끼 고양이 두 마리는 어려운 선택이었고, 그중 한 마리만 데리고 오게 되었다. 할머니가 주신 박스에 고이 담아 집까지 데리고 올 때의 그 두근거림이란.


그때 마음에 들었던 회색 고양이가 남아있었다면 그 고양이가 나와 함께 하는 반려묘가 되었을 테고, 그 두 마리 중 다른 고양이가 내 눈에 들어왔으면 칠봉이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동물들과의 인연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생명들 중에 그 시간,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인연이어야만 함께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 작은 악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