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꿈에 닿아
몇 달 전 출간된 MBC 이재은 아나운서의 책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마법>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꿈만 같았던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앞둔 시점에서, 다음 학기는 뭐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아야 하는 독일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맞나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휴학은 하고 싶지만,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학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처음 그 공고를 보았을 때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귀국 준비만으로도 정신없는데 몇 날 밤을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자소서를 썼다. 실은 여행 중에 공고를 본 순간부터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지 고민했었다. 좋은 글은 한 번에 훅 써지지 않기 때문에. 대입 자소서 이후로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써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모든 지원자가 그랬겠지만 너무나도 간절했기 때문에 더 이 악물고 준비했던 것 같다.
결과는 서류전형 합격.
정확한 경쟁률은 모르지만, 작년 경쟁률을 들었을 때 꽤나 좁은 문을 통과한 것 같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하다. 서류 전형 결과를 기다릴 때는 서류라도 붙었으면... 하다가 막상 서류를 붙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다행히 비대면 면접이었다. 면접까지 며칠 동안은 밖에 안 나가고 방에서 줌을 켜놓고 면접 준비를 했다. 이전의 면접 후기를 보니까 질문이 굉장히 심오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해서 며칠간 준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이 직종에 얼마나 오래 그리고 깊게 관심이 있었는지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올해로 딱 10년째 이 직종을 꿈꿔왔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과 독일은 8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독일 시간 아침 6시부터 일어났다. 복장 규정이 따로 없어도 보통 정장을 입는데 이미 한국에 택배로 옷을 거의 다 보냈기 때문에 니트를 입고 줌에 들어갔다. 옷보단 실력이라고 자기 세뇌를 하면서.
그렇게 면접에 들어갔다. 면접관 5명, 면접자 4명. 다대다 면접인걸 알았지만, 실제로 다대다 면접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 당황했었다. 심지어 나 빼고 세 분 모두 정장을 입고 계셨다. 최대한 차분하게 이 일에 대한 내 진심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었다. 중간에 블라인드를 쳐놨는데도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와서 당황했지만(한국시간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다들 놀라셨을 거 같다)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하려 애썼다. 면접이 끝나고는 아쉬움이 남았다. 예상 질문으로 뽑은 것 중에 이거 물어봐주시면 진짜 답변 잘해서 합격할 자신 있다고 생각한 질문이 나왔고 준비한 대로 말은 잘했지만, 마지막 질문이 의견을 묻는 거였는데, 지원자 중에서 나만 생각이 달랐다. 다 말하고 나서 내가 틀린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에 타당한 근거를 대었으니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또 한 번 자기 합리화를 했다.
마지막 질문 때문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생각이 짧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이 질문 때문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자신 있게 답변한 질문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면접 다다음날 난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해외 입국자 격리를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 결과가 나온다는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반신반의하며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새로고침 했다.
대학입시만큼이나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겠는 심정이었다. 만약에 최종에서 떨어지면 또 어떤 공고 찾아서 지원해야 하나. 서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학교를 다녀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며칠 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일어났다. 뭔가 결과 발표가 나왔을 거 같아서 바로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최종 합격.
너무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방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정규직이 아닌 인턴이지만, 10년 동안 꿈꿔왔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남들은 모두 힘든 일이다, 쉽지 않다고 하지만 그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라도 좋으니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이루어진 것이다. 경쟁률 높기로 유명한 곳에 최종 합격을 하니, 앞으로 취준을 시작해도 뭔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이 일 때문에 귀국을 2주 반 앞당겼다. 귀국을 2주 반 앞당긴 게 100퍼센트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50퍼센트 정도 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최종 합격을 하게 된다면 2월 말에 한국에 있어야 하는데, 내 귀국 표는 원래 2월 말이었고 해외 입국자 격리까지 하면 3월에서야 자유의 몸이었다. 1차 서류를 내면서 붙을지 떨어질지도 모를 인턴 공고 때문에 비행기표를 당겨버리다니. 지금 생각하면 되게 용기 있었던 거 같다. 붙으면 좋고, 떨어지면 조금 쉬다가 개강 준비하거나 다른 일 또 알아보면 돼 라는 생각이었다(라고 겉으로는 말했지만, 그만큼 간절히 붙고 싶었고, 이유 없는 자신이 들었다.) 다행히 운 좋게 합격을 해서 비행기표를 앞당긴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그래서 난 이제 "멈추지 않으면 꿈에 닿아"라는 말을 믿는다.
아직 내가 10년 동안 꿈꾸고 바라 왔던 일에 깊숙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그 사회의 일원이 잠시라도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꿈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한 우물만 파서 늘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그 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더욱 기뻤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교환학생 가서 인턴 지원을 할 생각을 했냐고 말했다. 물론 귀국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아보고 친구를 한 번 더 만나며 곧 떠날 곳에 서서히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에 망설임 없이 도전한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꿈에 닿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