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내 말이 지닌 무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젊을 때는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말이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얼마 전까지도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나머지 말들은 삼키며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아끼다 보니 내 생각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를 샀고, 관계가 틀어지는 경험도 적지 않았다. 한 번은 직장에서 툭 내뱉은 말이 왜곡되어 직원과의 관계에 금이 갔다. ‘말을 너무 쉽게 했다’며 후회했다. 그때야 알았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공허한 소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얼마 전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퇴근 후 아내에게 “속이 안 좋으니 소고기곰탕을 사 갈까?”라고 물은 후 곰탕을 사서 돌아갔지만, 아내는 방에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아내가 곰탕조차 삼키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태였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처음엔 그가 ‘이렇게 챙겨 줬는데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서운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자신의 무심함을 책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때로는 ‘미안해’, ‘고마워’, 혹은 ‘고맙지만 나중에 먹을게’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의 무게는 단순히 나이나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어른의 말이 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는 단순한 권위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소통을 더 중시한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모든 말이 용납되는 시대는 지났다. 나 역시 친근함에 기대어 가볍게 말을 내뱉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남아있는 건 뒤늦은 후회다. 말은 결국 사람 사이의 다리인데, 이 다리를 잘못 건너면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그렇다면 가정이라는 공간에서의 대화는 어떠해야 할까? 집은 단순히 쉬고 잠자는 공간이 아니다. 감정을 돌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하는 장소다. 가족 간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대화는 집이라는 쉼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이 피로를 주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들과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집. 그곳이 진정한 쉼터이자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역시 감정에 휘말려 무심코 던진 말로 가족 간의 작은 갈등을 만들어 낸 적이 있다. 가정에서야말로 말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느낀다. 단순히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공간에서는 더욱 진지하게 말의 무게를 재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가족 간의 대화는 바깥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난 특별한 소통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지지해 주는 일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또 가족이기에 더 중요한 일이다.
말이란 그저 의사 전달의 수단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그 다리가 튼튼하려면 내가 먼저 나의 말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 무게는 훨씬 깊고 묵직할 것이다. 어른인 내가 먼저 그 다리를 튼튼히 놓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가족 간의 대화가 단지 의무가 아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서 비롯된다면, 그 말은 가정에 더 큰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가족 간의 대화는 그 어떤 외부의 대화보다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하루하루 쌓여 가는 감정을 나눈다. 이 대화가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질 때, 집은 그 자체로 쉼의 공간이 된다. 나와 가족 모두,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말의 무게를 더 잘 다루며, 마음의 짐을 함께 덜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른인 나부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진정한 어른다움을 말로도 배양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