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맘혜랑 Jun 19. 2024

자영업 30년 차인 나도 "아픈사장"이다

21세기 자영업이야기


나는 한때 월매출 7-8천을 찍던 정말 잘 나가던 자영업자였다. 음식의 ‘음’자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식당사장이 되어 자영업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30년간 잔뼈를 키워왔는지, 그렇게 잘 나가던 식당을 접고 이 업종 저 업종을 거쳐 지금 또 다시 식당운영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참 인생이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또 다시 식당운영에 도전해서 이리 고군분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왜 내가 지금 ‘아픈 사장’인지, 이 아이러니를 글로 풀어보려 한다. 어찌 보면 지금 중년을 사는 우리 서민들의 이야기가 그 어떤 것 하나 남이 아닌 내게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식당운영의 시작은 ‘기회’때문이었다. 사실 밥이라고는 집에서 세 아이들 먹이기 위해 밥한 것 외에는 전혀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아랫집 언니가 매일 같이 내게 하던 말, '식당이라도 운영해서 목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이 가랑비에 옷젖듯 스며들어 ‘아! 자영업? 해야겠는데!’라는, 말 그대로 필(feel)이 왔고 나는 성격대로 일사천리로 식당을 개업했다. 나는 그 언니가 지속적으로 내게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며, 남편 월급 가지고는 세 아이 키울 수 없다며 해준 말들이 일리가 있었고 또 그렇게까지 얘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회'로 느꼈었다.




그런데 제대로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당시 3천만원 정도를 투자해서 식당운영 4년동안 약 10억 정도의 수익을 남겼으니 식당사장 초짜라고 하기에 내 자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었고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자부한다.




악연도 호연도 다 인연이라더니 그렇게 식당과 나의 인연이 처음엔 호연이었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 처음이지만 젊을 때 잠깐 몸담았던 일 때문에 식단표를 짜고 직원을 고용하고 음식맛과 영양을 알게 되고 어떻게 고객을 대하는지에 대한 기본은 갖춰져 있던 터라 기술보다 마인드, 그러니까 정신의 무장이 철저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 생각된다. 과감히 결정짓고 내가 해보지 않았다는 두려움도 금새 실천으로 옮기며 나는 승승장구,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프다.


백화점에서 식당을 운영해보라는 지인의 구애로 나는 또 다시 식당운영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만만했던 패기는 그대로였으나 세상은 같은 행운을 또 다시 주지 않았다. 나 역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성공해 봤으니까 지금 그렇게만 하면 되겠지. 라는 관념. 그리고 타성. 사람은 그래서 때로는 자신을 부정할 필요가 있다는 진리를 요즘 들어 더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




서민들이 힘겨운 이유는 나의 ‘열심’과는 무관한 ‘통제불가능’한 영역이 내 경제를 흔든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코로나가 내게도 커다란 악재였다. 내가 무권리로 인수한 식당은 커다란 신도시 백화점 내 식당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월 6천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줄서서 먹던 매장이었는데 오픈하고 몇 달 뒤 코로나가 터졌고 백화점에 발을 디디는 고객이 없으니 당연히 백화점 내 식당가라는 식당가는 줄줄이 폐업으로 이어졌다. 앞집도 옆집도, 그 옆집도, 그 옆집의 옆집도 계속 문을 닫던 시기, 나 역시 문을 닫을까 계속 버틸까의 기로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자란 싹은 원망과 후회뿐이었다.  




'왜 하필 나인가?', '그냥 가만히 있을걸', '남들처럼 그냥 평범한 아줌마로 살걸', '이 나이에 왜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고 설쳐서 내가 나를 이 구렁텅이에 빠뜨렸나?' 별의 별 생각으로 한달, 두달... 희망고문은 계속되었고 옆에서 줄줄이 문을 닫는 이들을 볼때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느낌에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그렇게 커다란 포부로 새롭게 시작한 식당은 코로나직격탄을 맞아 2년간 제대로된 장사도 못해보고 버티기로 일관되다가 겨우겨우 백화점에 손님이 다시 발을 들이면서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이 현실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는지 그렇게 버티고 버텨 겨우 살아남나 싶었는데 나는 더 아파진다.




첫째. 과다경쟁 온라인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오프라인 시장의 공동화 개점휴업이 내 발목을 잡았다.


제레미리프킨이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을 2010년도 되기 전에 부르짖었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이제 제레미리프킨을 읽지 않은 누구라도 그 말을 알게 되었다. 키오스크나 테이블오더로 대체된 식당만 가봐도 노동에서 어떻게 서서히 인간을 밀려나는지, 시장이 어떻게 점점 디지털 속으로 들어가는지 어린아이도 알만큼 세상이 너무 바꼈다. 나의 열심인 의지나 투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이 변하고 있고 그래서 나는 나의 무지로 인해 아프다.




둘째, 자영업자의 눈물은 고정지출이다. 우는 만큼 세금을 덜 내게 되고 뛰는 만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인건비 상승과 정부의 규제로 수시로 변하는 세금정책에 나같은 자영업자가 민감하게 대처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장사하기도 바쁜데 언제 그걸 공부하고 미리 대비하겠는가?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세금에서 조금 자유로우려나, 얼마나 더 뛰어야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으려나? 나는 얼마나 더 울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제 눈도 짓무르고 팔다리도 너무 아프다.




셋째, 아!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아프다. 컴퓨터라곤 한글타자와 인터넷 검색 정도의 나같은 자영업자가 어디 한 둘인가? 50대 이후 자영업자에게 온라인마케팅은 넘사벽이다. 카카오채널, 네이버플레이스, 페이스북 등등 뭐가 계속 생긴다. 결국, 온라인마케팅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 온라인 시장을 들여다보는 눈도 없던 내가 이 넘사벽의 철책을 넘어야 하니 나는 너무 아프다. 이렇게 뻥 뚫린 구멍을 지금부터 배워서라도 메꿔야 한다는 높은 산을 넘으려니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다.




어언 2년이다. 개업 후 코로나로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식당 한 켠에서 눈물 흘리기보다 '어떻게 든 배워야 한다'는 정신으로 온라인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남들이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가게문을 닫을 때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배움'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나이에 나는 그래도 성공에 대한 ‘불굴의’, 정말 안하고 말지! 싶다가도 오기가 생겨서 내 안의 모든 것을 끌어내어 결코 굴하지 않는, 불굴(不屈)로 온라인마케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10만원도 안되는 하루매출에 다들 죽겠다죽겠다 한탄하며 문 닫는 현장에서 나는 부진(不振)과 부족(不足)과 부정(否定)을 모두 거두기로 했다. 마인드에서 3개의 부(不)를 거둬내고 세상을 보니 다시 할 수 있을 듯한 오기와 패기가 그 빈자리에서 샘솟았다. 그래서 2년동안 온라인마케팅을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그렇게 나의 식당을 위한 온라인홍보를 시작했고 지금은 카카오톡채널추가로 월별행사를 안내하고, 네이버플레이스에 매장메뉴를 광고하고, 페이스북과 쓰레드에 시화전 등의 이벤트를 알리고 있다. 처음 식당을 운영할 때의 전단지는 이제 디지털로 교체되었다. 이 정도까지 배우는 것에 젊은 사람들은 뚝딱 해낼지도 모르지만 컴맹의 나는, 2년이 걸렸고 이제 꽤 익숙해졌고 심지어 이 과정을 글로도 쓰려 하다니, 코로나가 준 선물같기도 하고. 마치 자영업자들에게 네가 앞장서서 먼저 배우고 가르치라는 훈계같기도 해서 나름의 뿌듯함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변화는 어렵다. 기존의 관성과 관념을 파괴했을 때 새롭게 전환된다. 변화란 머무르면 결코 가질 수 없다.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지?’, ‘뭘 더 해야 하지?’, ‘과연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무수한 생각들이 내 머리통을 휘갈겼지만 나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 말이다.




성공한 사람은 목표가 있으면 행동만 반복하며 될 때까지 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실패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 안할 이유부터 찾는다. 또 성공한 사람은 1%의 가능성을 보고 전진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1%의 실패확률 때문에 안한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사람들이 하는 짓은 안하기로 했다.




이 성공과 실패의 한끗차이. 이 한끗차이를 머리 속에 박아두고 세상을 다시 봤다.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보는만큼 나의 사업가마인드도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금 나는 여기 현장에서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있다.




누군가가 ‘아프니까 사장이다’라고 했다. 이 말에 절대공감한다. 하지만, 아픔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만 한다. 아프기 때문에 사장이 아니라 아픈만큼 더 큰 사장이 된다는 것. 아픔은 날 키우기 위한 현상일뿐, 나는 점점 커지고 있고 더 멀리 보고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 결국, 신은 결코 날 응석받이(주)로 키우지 않기 위해 아픔을 겪게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는 이 길에서 성공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주>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동서문화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