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예술이 되기 위한 재료다

외로운 사람들의 자기화사고법 19

by 너라서러키야 혜랑


감정은 예술이 되기 위한 재료다

“예술은 우리가 느끼는 것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 알랭 드 보통


내가 만드는 예술은
나를 들여다보고 분해하고 읽는 과정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불편해한다.
이유를 붙이지 못하는 감정, 설명되지 않는 상태 앞에서
대부분은 서둘러 무언가로 덮으려 한다.
일정으로, 소음으로, 관계로, 의미로.
하지만 공허함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상태를 없애야 할까, 아니면 통과해야 할까?”
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공허함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다음 감정이 태어날 공간이라는 것을.


어느 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무겁고, 가슴이 쓰리고, 생각은 멀쩡한데
몸 안에서 전류가 과하게 흐르는 느낌.
나는 이 상태를 ‘과전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감정이 너무 많아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할 때,
몸이 대신 신호를 보내는 순간.
그때 나는
억지로 글을 쓰지 않았다.
노래를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 상태를 기록했다.
“지금은 과전류다.”
“지금은 차단기가 내려간 상태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공허함은 더 이상 나를 삼키지 않았다.
그건 관찰 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재료가 되었다.


공허함이 충분히 머물면
어느 순간 변형이 시작된다.
처음엔 한 줄의 문장이 되고,
그 문장은 리듬을 얻고,
리듬은 음을 만나 노래가 된다.
그리고 글과 노래가 쌓이면
비로소 하나의 세계관이 생긴다.


나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지나가는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공허함이 말을 걸 때
도망가지 않고 앉아 있었고,
과전류가 흐를 때
차단기를 올리기보다
왜 내려갔는지를 기록했다.


그 기록들이
지금의 글이 되었고,
지금의 노래가 되었고,
지금의 세계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공허함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공허함은 아직 쓰이지 않은 감정의 상태다.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사용될 차례를 기다리는 재료다.


다음 화에서는
이 공허함이 어떻게
이야기와 음악, 글과 세계관으로
구체적으로 변형되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공허함은 끝이 아니라,
다음 감정의 입구일지도 모르니까.





https://youtu.be/m7I46tPV1rA







나를 들여다보는 창문
Q1
이 공허함이 지금 내 삶에서
무엇으로 변하려 하고 있을까?
Q2
최근 내가 느낀 ‘과전류’의 순간은
어떤 장면에서 시작되었을까?
Q3
이 감정을 없애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다면,
나는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8화공허함을 창조력으로 바꾸는 사고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