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싯 몸, <달과 6펜스>
고갱의 삶을 닮은 이야기
서미싯 몸은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의 삶을 오랫동안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스트릭랜드는 증권회사를 돌연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떠나 가난한 화가 생활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타히티 섬으로 떠나 원주민 아타와 사랑을 나누며 예술혼을 실현시킨다. 이는 폴 고갱이 그려온 삶의 궤적과 닮아 있다. 고갱의 작품 <타이티의 여인들>에서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고갱이 사랑한 원주민 여인이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그 선택으로 하여금 혼자만 배고픈 거라면 괜찮지만,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이기적인 행동이었다고 지탄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 부인은 스트릭랜드가 떠났다고 해서 망하지 않았다. 스트릭랜드가 재산까지 다 가지고 도망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스트릭랜드 부인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일이었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를 넘길 만큼 컸다. 어쩌면 스트릭랜드는 일말의 책임의식으로 그렇게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냐 소유냐, 이상이냐 현실이냐
이 소설의 제목에서 ‘달’은 존재 혹은 이상을, ‘6펜스’는 소유 혹은 현실을 은유한 것이다. 흔히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서 현실을 택하면 타협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면 소신 있는 것으로 오역되곤 한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6펜스밖에 안 될까? 6펜스는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겨우 10원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꼭 시소의 양 끝 같은 걸까? 현실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이상을 실현할 방법은 없는 걸까? 스트릭랜드처럼 극단적이어야만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지금도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예술지상주의는 무조건 옳은가?
스트릭랜드는 예술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예술지상주의적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자신의 예술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가정을 버리고, 파리에서 가난한 자신을 도와 준 은인인 스트루브의 아내를 취함으로써 그를 배반했으며, 결국에는 스트루브의 아내 블랜치도 버림받아 자살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사실 (스트릭랜드는 가만히 있었는데) 스트루브가 먼저 그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손을 내민 거였고, 블랜치가 먼저 그를 사랑하게 된 거였긴 하다. 그러나 스트릭랜드에게도 예술을 위해서라면 무심하게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잘못이 있다. 다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예의나 도덕보다도 예술을 중시한 결과였다. 그의 행동으로 인한 타인의 불행이 과연 예술적 가치 뒤에 가려져 묵인되어도 되는 것들인지는 재고해보아야 한다.
취미로써의 예술을 넘어서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노동 혹은 학업 등으로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가령 바쁘게 주중을 보내고 숨통을 트는 주말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데이트를 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문화생활만큼 제격인 일이 없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들이 모두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해내는, 기타를 연주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는 일들 역시 예술을 향유하는 일이다.
취미로써의 예술을 넘어서 삶에 더 가까이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달리 말하면 예술 외에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예술 행위가 잘 풀려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게 되면 이상을 실현하기도 하면서 생계유지도 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삶이 좀 고달파진다. 인정받고 성공하기 전까지는 불안하고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닐까,하며 자주 흔들린다.
한편 예술이 생계수단이라면 취미로 할 때만큼 좋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 서류 뭉치들을 보는 것만큼 악보나 원고를 봐야 한다면 지겹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안과 권태를 넘어서야 한다.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확신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한다.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다.
스트릭랜드의 예술혼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에는 원시적인 타히티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모든 문명과 규범을 벗어난 세계만이 그의 예술혼과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