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에서 쓴 문학의 도시

아일랜드 더블린

by 깡아지


당신은 나에게 더블린이 문학의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내가 더블린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스무 번도 더 돌려 본 영화 <원스>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 남녀가 처음 만나 나란히 걷던 그래프턴 거리, 서툴지만 함께 악기를 연주하던 와튼 악기점, 어느 멋진 날 훌쩍 스쿠터를 타고 떠났던 달키의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상상했던 것이었지요. 고등학생 때에 그 영화를 처음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언젠가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이 아일랜드의 더블린이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요.


더블린1.jpg 비 오는 더블린의 거리



당신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마음속 더블린의 자리 곁에 문학을 두었습니다. 더블린과 문학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잘은 모르지만 당신이 말했으니 그런 거라고.

그러다 더블린으로 떠나기 며칠 전 마음이 먼저 더블린을 찾아갔을 때, 산울림극장에서 보았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원작자 사무엘 베케트가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은 긴 시간 동안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행위이고, 중요한 것은 '누구를' 기다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다리는지라는 것을 알게 해준 부조리극을요.


그걸 알게 된 이후 나는 눈앞에 없는 사람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일이 조금은 두렵지 않습니다.


고도.jpg 산울림극장의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더블린에 있을 나를 기다리며 제임스 조이스를 읽었습니다.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단편이었는데, 더블린 특유의 우중충한 분위기가 와닿았습니다.

조금더 마음이 갔던 작품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세속적 욕구에 대한 죄책감과, 온갖 굴레들을 초월하여 예술가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진정한 자신의 내면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을 좇아 가겠다고요.


구속되지 않은 영혼의 상태에서 이미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직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스럽도록 만드는 일. 제임스 조이스는 끝끝내 예술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찾아드는 어떤 고독과 외로움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요.


제임스.jpg 젊은 예술가, 제임스 조이스



나는 더블린의 작가 박물관에서 다시 두사람과 만났습니다. 박물관이 소개하고 있는 수많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 중에서 눈빛이 두사람만 찾게 되는 것은 당신과 만나기로 한 번화가 한복판에서 부지런히 당신을 찾는 일과도 비슷합니다. 그런 때에 인파 속에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무엘 베케트와 제임스 조이스,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문학적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언제나 부러운 일입니다.

더블린은 정말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의 도시였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이미 알고 있었지만요. 때로는 공신력 있는 기관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한마디가 더 믿을만하기도 합니다. 그애가 나에게 준, 말도 안 되는 부적처럼요. 때로는 신앙 같은 사랑만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더블린3.jpg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의 도시, 더블린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에서 펍(Pub)을 피해 걷는 것은 마치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더블린을 지탱하는 힘은 술과 문학이라고 합니다. 파리의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아일랜드의 작가들은 펍에서 글을 썼다고요. 나는 어제 저녁 더블린에 도착했을 때에 거리에 울려퍼지던 버스커들의 노랫소리와 해 진 골목을 밝히는 불 켜진 펍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기네스 흑맥주의 원산지입니다. 나는 더블린에서 기네스를 만드는 앙조장에 갔었습니다. 흑맥주가 새까만 이유는 보리와 홉을 커피 콩을 볶듯 볶아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때 온도가 섭씨 232도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보리와 홉이 검어집니다. 그 아래 온도로는 검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적당히'는 안 됩니다. 제임스 조이스가 문학에 전부를 바친 것처럼요. 이것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232.jpg 기네스 흑맥주는 232도에서 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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