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프랑스 파리

by 깡아지


나는 오르세에서 모네의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을 보았습니다. 모네가 까미유를 그린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네에게는 <산책>이라는 똑같은 그림이 있습니다. 이름이 두 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장.jpg 클로드 모네, <산책>
장장.jpg 클로드 모네,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



<산책>이 먼저,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이 나중에 그려졌습니다. 모네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산책>의 여인은 까미유이고 어린아이는 아들 장입니다. 그러나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의 모델은 두 번째 부인 알리스의 딸 수잔입니다. 같은 포즈를 취한 모델에게서 까미유가 유령처럼 겹쳐지지만 무언가가 다릅니다.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에서는 모델에 대한 충실한 묘사가 없습니다. 까미유의 선명한 초상인 <산책>과 달리 얼굴의 이목구비가 흐리고 사실적이지 못할 만큼 붓터치가 강렬합니다. 모네는 후기에 상징주의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돌아선 여인>은 그 때의 작품이었습니다. 모네는 ‘자연에 대한 충실한 묘사’라는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학을 선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빛을 그렸던 인상주의의 개척자 모네가 말입니다.

모네는 까미유가 살아있을 때에는 까미유 아니면 안 되었지만, 까미유가 죽은 후로는 까미유를 추억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다른 모델이 까미유가 될 수는 없었기에 흐리게 남았습니다.

유럽으로 떠나올 때에 나는 그해 가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호주의 사막과 항구에서 한꺼번에 웃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면 누구라도 어떤 기억이라도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서도 호주랑 똑같네, 하는 생각도 가져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그것 아니면 안 되는' 기억을 다시 적어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새로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밴드가 있어. 누구라도 좋은 게 아니야. 그들밖에 없는거야." 내가 좋아하는 영화 <Beck>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모든 순간들이 그것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여행은 수잔에서 다시 까미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파리 하늘 (le ciel) 아래서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운이 좋아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는 행운을 누린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든 늘 곁에 머무를 겁니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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