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

호주 애들레이드, 빅터 하버

by 깡아지


눈앞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어떤 장면을 잘라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전부 다 담을 수 없다면 그저 기억하기로 합니다.


애들레이드의 빅터 하버



잠시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국적이 다른 세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각자의 바다에 잠깁니다. 호주인 할아버지는 몸이 아파 함께 오지 못한 할머니를 생각하고, 유학 온 아랍 소년은 비슷한 풍경을 가진 고국의 지역을, 나는 바다 위를 지나다니는 배를 바라보며 소중한 이와 읽었던 어느 시의 구절을 떠올립니다.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

배는 뒤꽁무니에 하얗고 선명한 포말의 흔적을 남기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배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어도, 새겨진 자국들이 배의 존재를 대신할 것입니다.

시인의 말이 옳았습니다.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



우리는 똑같이 마음 한켠이 저릿합니다. 눈앞에 없는 사람, 또다른 시인이 이 말을 시집 제목으로 삼은 까닭이 혹여나 이런 마음에 있지 않을지. 나는 내가 품은 마음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시 구절을 영어로 바꾸어 말하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수평선이 아득하다, 따위의 말들도 언어가 가진 느낌을 고스란히 전할 재간이 없어 삼키고 맙니다.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말수가 줄었습니다.


시간이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내가 있을 곳은 오직 하나, 공기처럼 모국어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눈앞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움은 나의 배가 지나간 뒤를 짙게 새겨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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