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월의 교토
사월의 교토는 천지가 벚꽃이었다. 나는 유난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봄을 미리 만나러 그곳에 다녀왔다. 나는 교토 구석구석에서 윤동주와 마주쳤다. 윤동주의 시집을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 눈에 보이는 장면들마다 그의 시가 겹쳐졌다.
일본의 거리를 걷던 식민지 지식인의 걸음은 꽃놀이 온 관광객의 걸음과 달랐겠지만, 홀로 타국에 서 있는 외로움은 감히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교토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보이는 집안의 벚꽃이나 기찻길 길섶에 핀 벚꽃이, 명소의 벚꽃보다 더 예뻤다.
내가 교토 교외의 야라시야마 역에 내렸을 때에는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에서 그림으로만 보았던 벚꽃 승강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追憶)」을 떠올렸다.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히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ㅡ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ㅡ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기다린다 기차를. 기차가 오기까지는 너무나 외롭다. 외로워서 담배도 피우고 비둘기 떼가 날아가는 것도 지켜본다. 그러나 사실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내가 타지 않았던 것뿐이다. 나는 서성이며 기차가 아닌 ‘누구’를 기다린다. 그는 옛 거리에 남은 ‘나’일 것이다.
홀로 떠나온 여행이 외롭기도 했지만 사실은 외로우려고 온 거였다. 나를 혼자 가만히 두기 위해서. “사월의 교토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문학 할 자격이 없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교수님의 ‘문학 할 자격’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며. 가만히 있기 위해서 휴학도 한 거였고, 휴학을 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여전히 나를 괴롭혀서 잠시 도망 온 거였다. 나는 그럴 수만 있다면 문학 할 자격을 갖추고 싶었다.
윤동주와 정지용이 유학 와 다녔던 도시샤 대학에는 윤동주의 「서시」와 정지용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적었다는 「압천」이 시비에 새겨져 있다. 압천은 교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카모가와 강이다. 정지용은 이 강을 보고 고향 옥천에 흐르던 실개천을 떠올라 그리워했다. 닮은 것을 보고서 원래의 것을 그리워한다. 예민한 우리들이 자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슷해서 대체물로 삼은 그것은 끝끝내는 원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마음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지금껏 내가 가본 나라는 일본과 호주였다. 호주에는 특히 오래 있었는데, 돌아온 지 몇 개월 만에 나는 호주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곳에 갈 수 없는 현실적 이유보다도 더 커다란 이유가 생겼고, 죽기 전에 다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교토에 왔는지도 모른다. 좋았던 기억만 가득했던 첫 해외여행지 교토에, 오랜 후에 첫사랑을 찾아가듯이. 사실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으면서. 나는 장소만 바꿔서 너를 그리워하다가 왔다.
나는 카모가와 강변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다시 올 거라고 생각 못했던 장소였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 못했던 길 가는 사람과 하루종일 교토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그 마카오 친구를 보고 너를 떠올린 일도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고베 항구를 보고 시드니를 떠올린 일도. 두 번째라서 설렘이 반감된 빈자리를 외로움이 메웠다. 그래도 닮은 것들이 있어서 원래 외로워야 할 만큼보다 덜 외로웠던 것도 같다. 정지용도 그랬을까.
스물셋의 한해는 오롯이 기억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업을 잠시 멈추었다.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건 세계에 눈길을 준다는 거였다. 이렇게 멈춘 채로 일년이 지나면 자신이 어떻게 변화해 있을지도 궁금했다. 천국 순례를 끝마친 단테처럼 새로워진 자신과 조우하게 될 것을 기대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에 있어 그런 극적인 순간이란 흔치 않다. 다만 조금 느리기로 결정한 올해가 지나고 다시 새로운 봄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교토에서 해마다 봄이면 떠오를 기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