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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Nov 25. 2017

잘 살기 위한 기도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장.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근대 자본주의 문화


베버는 근대적 자본주의가 왜 서양에서만 발달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부르주의 계급의 문화를 그 원인으로 찾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가톨릭과 구별되는 개신교를 의미한다. 근대적 거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프로테스탄트가 많았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근대 자본주의 문화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고등학교 때 사회문화를 배우면서 베버는 사회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 이원론을 주장한 학자라고 배웠다. 방법론적 이원론은 사회문화 현상을 자연현상과 다르게 보는 연구법이다. 사회문화 현상은 인간의 의식과 의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현상과 다르다. 자연현상은 설명해야 하고 사회문화 현상은 이해하며 해석학적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 베버는 노동윤리는 설명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장. 고대와 근대의 노동의 의미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동을 경멸했다. 그래서 노예에게 맡기고 시민들은 정치를 했다. 이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말처럼, 생계를 위해서는 노동이 당연해졌다. 이것이 비단 노예가 해방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노동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일을 많이 하면 그만큼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면 취미를 즐길 수도, 가족들에게 좋은 것을 먹일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사적 영역의 추구이다.) 


그렇게 일만 하다 보니 돈을 쓸 시간이 없어졌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한가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의 공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멈추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도 장시간 근무를 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도 등장했다. 인간들은 철저히 자본주의화, 기계화되어갔다. 그러면서 ‘근면’이 인간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윤리로 자리잡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이미지 출처 : 영화 <모던 타임즈>)



3장.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노동윤리의 모태  


베버는 이러한 합리적 자본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을 문화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문화적 조건은 새로운 합리적 가치관을 지닌 집단의 등장이고, 경제적 조건은 상공업의 발달과 화폐 제도의 도입과 같은 제도적 차원의 조건이다. 대전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 마르크스는 경제적 조건에만 관심을 가진 반면에 베버는 물질적 조건의 충족을 전제로 문화적 조건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 문화적 조건인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집단을 종교개혁을 통한 프로테스탄트로 보았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근대적 노동윤리의 모태라는 것이다.  



4장.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의 세속적 금욕주의  


베버는 종교개혁이 근대의 출현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부패한 특권 계층인 가톨릭에 저항하는 개신교의 다른 이름이 프로테스탄트다. 앞서서 베버는 사회현상의 정신을 이해하는 방법론적 이원론을 주장한 학자라고 말했었다. 베버는 자본주의에 있어서도 자본주의 정신을 연구하고자 했다. 전통주의와 구분되는 자본주의 정신은 이렇다. 전통주의는 노동을 경멸하고 노동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생존을 위한 것 이상으로 부를 추구하는 것을 탐욕스럽고 부끄럽다고 여겼다. 반면 자본주의 정신은 부의 추구를 자랑스러워하며 노동과 이를 통한 부의 추구를 삶의 목적으로 보았다.  


기독교의 성경 속에는 근면과 노동이 있었다. 더불어 지나친 부의 추구를 경계하는 내용도 있었다. 금욕주의는 전통주의인 가톨릭에서도 중요한 교리였다. 그러나 가톨릭의 금욕주의는 수도사에게만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들의 금욕주의는 현세를 떠난 금욕주의였으나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세속적 금욕주의’였다.   


티벳여우 해탈 짤



5장. 칼뱅의 예정설과 천직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선구자인 칼뱅은 예정설을 주장했다. 인류 중에서 선택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소수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예정되어 있는지는 인간은 모른다. 어찌 보면 너무한 이 예정설을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적 금욕주의의 심리적 동인으로 삼는다. 즉 “어차피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 그냥 하고싶은 대로 막 살자!”가 아니다. 내가 예정된 사람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맞서기 위해, 더 열심히 금욕적인 생활(노동)을 해서 내가 구원받을 사람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합리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기독교의 천직(calling;부르심) 개념도 세속적 금욕주의에 기여했다. 이 개념은 세속의 노동이 최고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6장. 벡스터와 프랭클린  


설교자 벡스터는 부자가 비난받지 않으려면 노동을 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부자가 비난받는 이유는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부자들은 일은 하지 않고 놀고 먹는다”는 의식이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벡스터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돈을 모으는 부자들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이유가 없으며, 불로소득자들만을 비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만들어 효율적인 자기 관리로 하여금 세속적 금욕주의에 기름을 부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금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7장. 프로테스탄트적 신앙이 없는 오늘날에는  


종교를 믿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이 불안은 죽은 뒤에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대한 불안이다. 현대에도 이러한 불안은 계속된다. 바로 내일도 오늘 번 것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 실업에 대한 불안이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위험을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통제하고자 한다. 이것은 때로는 강박적이다. 현대에는 신앙이 절대적이지 않지만, ‘돈’이 하나의 ‘신’이 되었다. “너 돈 많이 벌고 싶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어”라는 테일러리즘적 속삭임이 현대인을 노동의 굴레에 속박되게 만들었다.


한편, 현대인들은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벌기도 한다. 포드주의와 대량생산으로 물건들이 많아져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이다.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사회이다. 마냥 열심히 일하고 금욕적이기만 했던 프로테스탄트와 달리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보상할 권리, 혹은 게으를 권리도 있다고 믿는다.


또 한편, 현대인들은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어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도 '조물주 다음'이라는 건물주가 되고 싶어하고, 한 주를 견디는 힘을 채우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산다. 주식과 비트코인을 사고 들여다보며,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그럴 수만 있다면 누구든 일하기 싫은 건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일 뿐 좋아서 노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학도 가고 자기계발을 해서 화이트칼라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쿵야 레스토랑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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