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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와 Mar 04. 2020

크러쉬의 digital lover

나의 paradise는 이곳이 아니야




우울하고 처지는 기분일수록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현실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은 기분. 친구나 가족과 연락하는 수단인 카카오톡도 끄고, 내가 하는 유일한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도 너무 버거워 차마 볼 수 없다.

내 삶을 구성하는 것들이 어디선가 자꾸 튀어나와 나를 괴롭힌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데 가슴 한편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다.



어느 것과도 연결되고 싶지 않고 혼자 있는 내 자취방 침대만이 유일하게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곳에 누워 현실은 잊어버리고 어두운 앞날은 잠시 내려두고

세상에서 로그오프 하고 싶은 기분으로 천장 한 구석을 바라본다.  



왜 이렇게 무기력하니, 너는 뭘 할 줄 알아  도대체? 너처럼 애매모호 어중간한 애가 뭘 하겠다고 욕심이야?

그곳에서는 내가 이렇게 소리치고 있다. 내가 나한테 나가 죽으라고 야단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때, 실제가 아닌 가상세계에서 내가 아는 이들을 만날 때 더 날카롭게 채찍질하게 된다.

현실에서 현실을 자각하는 것보다, 애매하게 현실과 연결되어있는 가상공간에서 현실을 더 깊이 자각한다.

또 그런 비참한 기분이 들수록 의미 없는 예쁜 사진들로 나를 대변하는 척 인스타그램 피드를 꾸미곤 한다.

이게 무슨 모순일까.



유일한 내 도피처는 유튜브나 왓챠. 최대한 머리를 비우고 허허 아무 의미 없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다. 웃고 있지만 감정은 최대한 배제한다. 에너지 낭비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로그아웃하고 새로운 캐릭터로 로그인한다. 소셜 미디어보다 더 강력한 마약과도 같다. 소셜 미디어에는 현실의 나와  40퍼센트는 연결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내 이름 석자는 존재하지 않고 나는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어떤 죄책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



여느 날처럼 유튜브의 세상을 둥실둥실 떠다니다 크러쉬가 현대카드와 콜라보한 신곡 뮤비를 보았다.



그 내용은 이렇다. 화성처럼 외계의 행성에서 홀로 표류된 채로 우주 게임을 하는 크러쉬, 게임 속 캐릭터의 시점으로 시점이 전환된다.

용맹하게 싸우던 캐릭터는 크러쉬가 게임에서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닌 어떤 끝이 있는 세상임을 알게 된다.

혼자 표류된 크러쉬는 소통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끝을 알아버린 캐릭터는 레이더를 통해 그를 찾는다.

남아있는 크러쉬는 혼자 눈을 감아버리고, 캐릭터는 그가 있는 행성을 찾아낸다. 도착한 곳엔 죽은 지 오래된 그의 몸만이 남아있다.

크러쉬를 묻어준 캐릭터는 또다시 그 행성에 홀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게임을 꺼버린다.



Feeling like an empty shell

I like to be alone be alone

cause i'm a digital lover

평범히 살고 싶어

내가 만든 공간 속에 계속 사랑받고 싶어

이 모순적인 미묘함이 외로움을 살아가는 묘미

닳아버린 감정은 내려두고

마음을 듣는 방법도 까먹은 채로

보이는 것만 믿기로 해

들리는 것만 듣기로 해

더 외로워졌으면 해





노래 속 가사에서 크러쉬는 끊임없이 혼자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혼자일 때 외롭지만, 남들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그 외로움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 짓는 감정의 고리는 모르는 척 잊어버리고 비어있는 곳에서 외롭지만 편안하게.



모순적인 미묘함이 외로움을 살아가는 묘미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사랑하는 이들을 보고 그 모순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버티는 마음이려나.

만난다면 어떤 마음인지 들어보고 싶다.

그는 진실을 말하지 않을 테니 그 마음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어떤 분이든 이 노래를 보고,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마음을 듣고 싶다.


진실이 아닐지라도 상관없다. 누구도 완벽한 진실은 절대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당신들의 삶 속에서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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