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안 갈 수도 있지

학교이야기

by 지금

나 어릴 때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국민학교 때 열이 나고 어지러워도 학교에는 꼭 가야 했고 아픈 나를 아빠는 오토바이를 태워서 학교에 데리고 갔고 1교시 수업도 하지 않은 체 그냥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수업도 하나도 받지 않을 것을 학교는 왜 그렇게 꼭 다녀와야 했는지?. 물론 지금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학교에 매일 가는 것이 성실함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셨고 학교는 그 어려운 공부를 배울 수 있는 곳이고 거기에 계신 선생님도 존경의 대상이니 직접 얼굴을 뵙고 상황을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선생님을 어려워했고 지금도 나에게 선생님은 아주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렇게 교사가 되었다.

우리 아들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1년에 2~3번은 결석을 했다. "엄마 머리가 아파요, 학교에 못 갈 것 같아요" 그럼 나의 대답은 항상 " 그래 오늘 쉬어" 너무 쉽게 말을 한 건 아닌가 약간의 후회도 될 때가 있지만 어릴 때 아파도 학교를 빼먹지 못하고 꼬박꼬박 가서 인지 나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결석하겠어' 아들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몰래 속삭인다. 요새 학교는 학교장허가 체험학습 승인만 받으면 1년에 20일도 학교를 안 가도 된다. 세상도 바뀌고 학교도 바뀌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이것이라고 누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학교는 코로나 19가 대유행을하기 전의 학교와 코로나 후의 학교로 완전 학교가 바뀌었다. 학교 오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과 당연하지 않은 시절로 말이다. 우리 반 27명 중에서 학교에 등교하는 친구는 수요일 11명, 목요일 14명이다. 코로나19전염병으로 인해 학교는 홀수와 짝수로 나누어 학교정원 3분의 1만 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으로 나누어진 친구들도 가정학습을 하는 친구들이 2명이나 있어서 4달이 지난 지금 아직도 얼굴을 못 본 친구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가 이리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바이러스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아무도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학교는 집단생활장소이니 아무리 조심을 해도 방역이 한번 뚫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져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잠잠하다. 기저질환이 있는 친구나 조심을 더 하고 싶은 친구들은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 4학년인 옆반 친구가 쇼크가 와서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한다. 원인은 저혈당 쇼크라고 한다. 부모님도 이 친구가 이렇게 큰 병을 앓고 있는지 몰랐다고 하신다. 요사이 살이 자꾸 빠져서 키가 크려 하나보다 했다고 하셨다. 당뇨는 어른들만 걸리는 병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니 소아당뇨는 생각도 못했다. 이 친구가 등교할 때마다 열이 있어 학교 입구에서 체온 측정 시 매번 교실로 못 올라오고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가정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 부모님이 몇 번 이러니 짜증만 내셨지 아이가 아픈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하셨었나 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친구가 미열이 있으니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하시는데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서 갑자기 쇼크가 와서 응급실로 갔고 수치가 너무 높아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일반병실로 옮겼다한다. 이제 수치가 조금 안정이 되니 그 부모님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셔서는 이제 학교에 보내면 학교에서 인슐린 주사를 맞혀 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보통 천식이나 비염만 있어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를 안 보내는 상황인데 저혈당 쇼크로 쓰러질 수 있는 친구를 학교에 보내신다고 하시니 갑자기 놀랍기도 하고 어릴 적 우리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학교는 꼭 가야 하는 곳은 아닌데 아직도 나 어릴 때 80년대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