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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OBS Dec 16. 2023

요가원 사람들

열정 넘치는 핑크팬더 아주머니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수업당 인원이 최대 8명인 소규모 그룹 수업의 학원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나지만, 사람이 많지 않고 요가를 다닌 지 꽤 오래되다 보니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충 누가 누구인지 이제 구별이 가능해졌다.


수업할 때는 내 동작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경황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존재감이 강렬한 회원 한 분이 계신다.

이름을 몰라서 (사실 몇 번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남) 나 혼자서 속으로 '핑크팬더'라고 칭하고 있다.

요가일기를 쓰면서 같이 수련하는 타인에 대한 관찰기를 글로 남겨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이 '핑크팬더' 아주머니.



왜 '핑크팬더' 아주머니인가?

이유는 늘 핑크색 요가복을 입고 오시기 때문.

그분은 항상 상, 하의를 핑크색으로 맞춰서 입고 오시는데, 솔직히 처음 그 착장을 목격했을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핑크라는 게 페일 핑크나 인디 핑크 같은 세련된 색상이 아닌 그야말로 핑크팬더를 연상시키는 채도도 명도도 애매하게 촌스러운, '분홍색'이라는 한글로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는 색이었기 때문.

그리고 모델 장윤주가 장착하더라도 핑크 & 핑크 조합은 불호 쪽에 가까울 것 같은데, 키가 작고 통통한 체형인 중년의 여성이 그것을 입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소오올직히 "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실 글을 쓰면서 좀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외모를 비하하자는 게 아니라 뭐랄까..

아니다. 나는 타인을 볼 때 외적인 것을 분명히 본다.

그리고 대중적인 시각에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가이드라인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아무튼 이 자신감 가득한 아주머니는 핑크색의 레깅스와 탑 사이에 삐져나와있는 뱃살들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개쿨녀다.

더 신기한 것은 매 수업시간마다 똑같은 분홍이 세트를 입고 오셨는데, 그 분홍 세트가 여러 벌인 건지 아니면 매일 세탁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추측컨대 상당히 자아가 높고 취향이 확고하신 분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자유고, 나는 그것을 존중한다.



그런데 이런 뒷담 같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뭐랄까.?

핑크 조합에 대해서 어딘가 나의 심정을 털어놓고 싶은 것 같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해두자.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분홍색이 거슬린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특히 CMF(Color, Material, Finish) 디자인으로 먹고살고 있는 나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분홍 & 분홍 조합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컬러 콤비네이션이다.

요즘 얼마나 예쁘고 세련된 요가복들이 많은데 도대체 왜...

"차라리 블랙이나 화이트를 입으세요"라고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려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앞서 말했듯이 취향은 개인적인 영역이고 내가 얘기할 권리 같은 건 없으니까.


아무튼 개인의 취향은 그렇다 치고, 사실은 수업을 할 때 ‘문제’가 있다.

이상하게 최근에 수업시간마다 이 핑크팬더님과 계속 나란히 옆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아사나를 하다 보면 중간중간 촌스러운 핑크가 시야를 가린다.

그래서 아무리 나 자신에게 집중을 하려고 해도 저 망할 놈의 분홍색이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핑크팬더님은 요가를 굉장히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시는 편이다.

사실 열심히를 넘어 오히려 악착(?)에 가깝다고 표현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냐면 다소 스파르타식으로 지도하시는 선생님조차도 핑크팬더님은 잘못하면 다치니까 적당히 하시라고 수업시간마다 당부의 말씀을 하시는 지경이다.

그러니까 본인의 신체 가동 범위나 근력에 비해 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요가하다가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것 같다.

그래서 옆에서 물구나무서기나 핀차 같은 걸 하다 보면 나한테 쓰러질 것 같아서 불안 불안하다.

분홍색으로도 이미 정신이 없는데 더 정신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 핑크팬더 아주머니가 멀쩡한(?) 검은색 요가복을 입고 온 날이 있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눈이 다 편안해졌다.


세상 사람들아, 역시 요가복은 블랙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핑크색 요가 바지가 한 벌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아마 7~8년은 된 듯) 구매한 아디다스 핫핑크 레깅스.

무슨 객기로 산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버리지 않고 옷장 속 어딘가에 짱 박혀 있던 게 생각나서 한 번 꺼내어보았다.

정말 마미손처럼 눈이 부신 핫핑크다.

내가 대체 이걸 왜 샀을까.

그 당시에 10만 원은 훨씬 더 넘는 금액이었던 것 같은데, 돈지랄을 할 데가 없었나?

매장 언니가 이런 색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데 (당연히 없겠지) 어쩜 이렇게 잘 어울리시냐며 나의 잘못된 소비에 불을 지펴줬던 것도 불현듯 스치듯 떠올랐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이냐.

요가복은 블랙, 화이트가 아니라면 중 저채도의 튀지 않는 색상을 추천합니다.




혹시 아디다스 핫핑크 레깅스 필요하신 분? (나눔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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