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 오자마자 새로운 이웃이 된 아기 고양이가 있다. 깡 마른 채 꼬리마저 온전치 않아 반토막 나있던 녀석이 먹을 것을 찾아 어디 쓸 데 없이 돌아다니다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밥을 챙겨주고 하던 것이 어언 10개월이 되어간다. 조그마한 체구에 비해 경계심은 중량급이었던 녀석이 내게 애정을 표현한다거나 손을 탄다거나 하는 건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었다. 물론 내가 움찔이라도 할라치면 옆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듯 펄쩍 뛰는 모습을 보며 내심 야속하기는 했다. '내가 널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류의 대사를 내뱉는, 영화나 드라마 속 못난 가장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고.
나는 녀석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야옹이' 쯤으로 생각나는 대로 불렀다. 아직 녀석을 책임지는 것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매일 밥을 챙겨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필요한 일이지만 물그릇과 밥그릇을 매일 비우지 않는 정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 정도는 열 달 동안 빠지지 않고 할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집에 들이는 순간 그 이후의 10년 이상의 시간을 내 마음의 한 켠을 저 친구에게 할애해야 한다. 내 마음의 한쪽을 무언가에게 고스란히 내준다는 것에 완벽히 준비되어 있는 상태 같은 건 없겠지만 스스로 건사하기도 벅찬 내게는 더더욱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온전히 그래 본 경험이 있나 싶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냥 밥이나 주며 만족하기로 했다. 이 또한 못난 마음이겠지. 물론 집에 들일 수 있을 만큼 녀석이 내게 호의적이지도 않았고.
그러나 열 달이라는 시간은 어쨌든 짧지 않았고, 몹시 느리게 느껴졌지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엔 내가 발끝만 달싹여도 제대로 있지도 않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던 녀석이 점점 문 안 쪽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출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슬쩍 손이라도 내밀어 볼라치면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는 눈빛을 내게 보내며 달아나 버렸지만, 내가 이 곳에 익숙해지는 만큼 녀석도 내게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 마당에 나가니 별안간 녀석이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어떤 특별한 계기나 과정이 없이 갑자기 이뤄진 일이었다. 이후 진전은 매우 빨랐고 녀석은 이내 내가 손을 내밀면 다가와 어색해하면서도 머리를 들이밀었고 이따금 내 손을 핥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이 주 정도가 흘렀고, 출근길과 퇴근길에 나를 반겨주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인지 재볼 겨를도 없이 이 친구가 나의 삶에 들어오게 되는 것을 조금씩 상상하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