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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Aug 18. 2024

아버지와 자동차

"네, 아버지 더운데 별 일 없으시죠?"


"그래 너도 별 일 없냐? 나는 예전 회사 동료가 나처럼 시골 내려와서 생활한다길래 놀러와 있어."


"저야 뭐 항상 괜찮죠. 아 다름이 아니라 ㅇㅇ주식 최근 상한가 이후에 며칠째 하락인데 내일 보시고 반등 없으면 매도 고려해보시죠."


"아 그래?"


"네. 이렇게 내려가기 시작하다 쭉 하향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회사의 호재가 꼭 주가에 반영되지도 않는 것 같고요."


"그래. 그렇더라. 내일 한 번 볼게."


"네. 지금도 수익률이 괜찮으니까 처분하는 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 너 새 차 사줄 돈은 나올거다."


"(웃음). 아버지 차 사세요. 저는 괜찮아요. 왜, 미국사람들 아버지 차 물려받아서 타고 다니는 것 좋아보이더라고요."


"(웃음) 왜, 내 차 최고인데. 더운데 몸 조심하고 잘 지내거라."



최근, 아버지는 부쩍 내게 차가 필요없냐는 질문을 하신다. 이미 아버지께서 타시다가 물려주신 차가 있고 비록 2012년식이지만 아직도 큰 문제 없이 잘 굴러다닌다. 경유차인지라 내심 지구에 가할 부담이 걱정되지만 유로5 기준이 적용된 모델이라 매연저감장치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나와서인지 자동차 검사를 할 때마다 매우 양호한 매연검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해가 지날때마다 낡아가는 부품들이 늘고 있어 카센터를 가는 것이 조금씩 겁이 나지만 그건 내가 당연히 감당해야하는 부분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꾸준히 해오신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부터 종종 하신 이야기니까. 그 때는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주차 공간도 없었고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히 내 생활은 영위가 가능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왜 꾸준히 내게 차를 선물해주시고 싶은걸까.


물론 완벽한 인간이란 없는 것이지만 최소한 강인함이라는 측면에서 적어도 내게, 아버지는 초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강원도 산골, 밖으로만 나돌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3학년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쓰지도 않으면서 노암동 달동네 방 한 켠에 덮개를 씌워 모셔두던, 발판으로 굴러가는 재봉틀을 가지고 삯바느질을 해가며 자식들을 장성시켰다. 큰누이와 형은 저마다 삶을 찾아 외지로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버지는 막내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대학 진학을 잠시 미뤄두고 낙엽송과 함께 트럭 짐칸에 몸을 실으며 1년을 버텼다. 그리고 대학과 병역을 마친 후 일을 찾아 머나먼 울산으로 떠나왔다.


85년에 입사해 현대사의 많은 것을 목격하며 회사생활을 이어오던 아버지는 94년에 이르러서야 첫 차를 사게 되었다. 중고 구형 엘란트라. 여름이 되면 뙤약볕에 상부의 페인트가 벗겨지고는 하여 속을 썩였지만 2001년까지 남색의 소형차는 우리 가족을 싣고 여기저기로 다녀주었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던 여름, 계곡으로 휴양을 갔다가 실수로 켜놓은 안개등 때문에 방전되기도 하고, 길을 잘못들어 골프장 공사로 생긴 뻘밭에 빠지기도 했지만 건재하던 엘란트라는 명절을 보내기 위해 강릉으로 향하던 어느 날 도로 위에서 멈춰버렸다. 도로 위에서 밤을 보내고 견인차에 실린 엘란트라에서 보았던 일출과 창밖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아이러니하게도 참 환상적이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 기억들이 아버지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아들놈에게 뭔가 준다면 새 차라면 좋은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지 않은 아들인 것이 항상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물론 아버지가 내게 새 차를 주고 싶은 이유가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나의 진정한 '드림카'는 포드사의 '컨트리 스콰이어'이다. 금속 투성이 차체에 언발란스하게 나무가 들어가서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짐이든 사람이든 차곡차곡 실어서 가고싶은 곳으로 우직하게 데려가 줄것만 같이 생겼다. 참고로 지금 아버지께서 최고라고 하신 '내 차'는픽업트럭이다. 강인함과 성실함은 물려 받지 못했지만 자동차에 대한 취향은만큼은 물려받았나보다. 그거라도 물려 받은것이 참 좋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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