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싫어 쓰지 않았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탈락했다. 실제 아무런 일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라는 모래성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손에 남아 있는 건 알알이 들어있던 실패뿐이었다.
글쓰기가 싫어졌다. 글을 쓰지 않았다. 쓰기가 두려웠다.
글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라이킷 개수, 조회수, 다음 메인페이지에 마음은 하늘 위로 솟구쳤다 땅 밑으로 꺼지기를 반복했다. 남들에게 내 글이 멋져 보여 유명해지고 싶었다. 성찰을 위해서 글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가장 적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기가 적절하게 써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글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인기 있는 글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 글은 점점 나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글은 내가 가진 단어들과 표현의 한계에 금세 맛을 잃고 말았다. 같은 단어의 반복, 지식의 부족은 글이 나에게 질려버린 이유였다. 글이 나에게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질리지 않는 방법이 필요했다. 다른 책들을 열심히 내가 먹는 일이었다. 단순히 읽는 작업이 아닌 그들의 문체와 흐름을 나에게 체화하는 일을 함께 해야 했다. 좋은 단어, 좋은 문장 하나를 잡아두려고 노력했다.
지난 24년은 나에게 이랬다. 글에 대한 욕망이 올라올수록 아이들과의 시간에도 글을 놓을 수가 없었다. 더 잘 쓰고 싶었고, 더 많이 쓰고 싶었다. 지금의 아이디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아이들과의 사소한 대화는 “엄마 글 써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로 끝을 맺었다.
글은 아이들과의 사소한 시간을 빼앗았다.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가 필요했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아이들과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글과 나의 관계는 차선이었어야 했다.
세상은 마흔이면 작가 데뷔로 늦다고 했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섰는데. 시간의 속절없음에 조급한 마음은 글쓰기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나는 없어지는 거라고. 그러면 이제 나는 뭐 하며 살아가야 하나라고. 그리고 생각을 멈췄다. 세상은 오십의 새내기 작가도 괜찮다고 할 날이 올 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고쳤다.
글과 헤어지면서 아이들과 사소한 대화를 다시 이어나갔다. 아이들이 요즘 관심을 가지는 릴스가 무엇인지. 관심의 대상을 공유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원하면 게임도 같이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속상한 일을 같이 험담도 해준다. 각각의 아이들이 서로 싸울 때 둘이 들어가 각자의 상황을 들어주며 다른 아이 못됐다고 손가락질도 했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글과 다시 시작해야겠다. 아이들과의 시간에 손대지 않겠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아이들과의 시간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탄핵되는 대통령의 말처럼.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게도 아무런 일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마음속의 소동일 뿐이다.
글을 쓰는 적확한 이유,
그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온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