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대면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쉬운 인간관계
H라는 분의 이름이 새겨진 수건이 집에 많다. 엄마가 동창회 임원의 자격으로 수건을 한 무더기 얻어와 내 신혼살림에 넣었다. 오랜 기간 그 수건들을 쓰면서 익숙해진 이름이었는데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공원 산책을 하다 우연히 이 친구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우연히 공원에서 오리 구경을 하다가 모르는 사람과 친구의 죽음을 공유했다.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았으며 봄에 저 세상을 간 친구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점심이나 먹자고 엄마가 말했다고 했다. 세상은 이렇게나 좁다.
나는 엄마가 모르는 사람과 단숨에 친해지고 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만나는 건지. 또 엄마의 잘난 척에 상대방은 힘이 들게 뻔히 보였다. “엄마 사람들 아무렇게나 사귀지 말라고!” 나는 통화 중에 소리를 질렀다.
오래된 친구가 생일이라는데 친구에게 양문형 냉장고를 받았다고 했다. 신기했다. 친구 사이라도 응당 주고받음이 있음에도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10살 어린 동생이었다고. 친구는 라디오 앱의 디제이로 활동했고 선물을 준 친구는 청취자에서 친구로 옮겨간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내 기준에서는 너무 큰 선물이었다. 그런 선물에는 바람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 MZ들 사이에서는 라디오 앱을 켜놓고 서로 일상을 대화했다. 대면하기에는 시간적 물리적 물질적으로 감내하기보다 덜 피곤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돈을 들이지 않아도 나를 치장하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공간이 생긴 셈이었다. 채팅에 익숙한 나는 홀로 타이핑을 했고 다들 익숙하게 전화통화 식으로 일상을 공유하며 잘 준비를 했다.
주변에는 예능을 즐겨보는 사람들도 많다. 데이트하는 남녀의 연애 예능이 요즘 인기다. 왜 남의 연애에 남들이 관심이 많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도 일종의 인간관계의 일방 소통이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인간군상을 TV라는 매개체로 보여주면서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스테프들이 만들어낸 영상과 연기하는 사람들의 개성에 대해서 저 사람의 인성, 성격이라고 남들은 대체할 수 있었다. 평가하고 바라보는 사람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만을 평가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인간관계인 셈인가.
엄마의 대면 인간관계는 어쩌면 어른들의 소통방식 중 가장 익숙한 방법이었다. 온라인 소통은 카카오톡이 아닌 이상 어렵다. 내 생각과 다른 인간관계의 소통방법을 누구에게도 강요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조절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엄마가 하는 방법이 옳았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말을 주고받고 감정을 드러내다 보면 옛사람들의 사귐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내 얼굴을 내보이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고 나를 숨기면서 남을 판단할 수 있는 쉬운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얼굴을 매일 맞대며 보는 내 아이의 육아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탄생 후, 바라보지 않은 대화의 시기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대면해서 맞서고 싸우고 알아봐 주고 반가움의 터치를 하며 우리는 서로 진실된 마음을 알아가지 않을까. 텍스트로는 알 수 없는 그 미묘한 기류를 눈을 보며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장기하의 노래처럼 연인 사이에도 오해를 풀기 위해 ‘우리 지금 만나’를 외치지 않았던가.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이런 날이 점점 없어질까 두렵다. 사실 나 역시도 혼자 있는 게 나이 들수록 좋아진다. 하지만 이러다 영영 내 본래 모습도 사라질까 싶어서 또 두렵다.
조금만 더 시간을 쏟고 나를 드러내며 소통해 보자. 모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들여다보면 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실수하면 어떤가. 단점이 드러나면 어떤가. 어차피 같은 사람인 것을.
밖으로 나가야겠다. 누구든 만나러.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