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2 아이의 독감이 나에게로 왔다
부재중 전화가 네 통이었다. 축구 삼매경에 빠져있다 핸드폰을 확인한 건 수업이 끝나고였다. 아이의 학교, 남편, 아이의 전화였다. 튼튼하다고만 생각했던 첫째 아이가 아파서 조퇴했다. 이럴 땐 집에서 학교의 거리가 100미터도 안 되어 다행이다. 아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올 수 있었다. 1년 동안 아픈 적이 없던 6학년 아이다. 게다가 예방접종도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나. 엄마의 자책이 시작됐다. 지난 주말에 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렇게 됐는지, 평일 쉴 틈 없어 그랬는지, 배드민턴에 쏠렸던 운동의 시간을 축구의 시간으로 늘려서인지의 핑계들이 떠올랐다.
같은 반 친구 네 명이 아파서 결석이랬다. 전국적으로 퍼지던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조금 늦게 아이의 학교에 퍼지기 시작했다. 병원 의사 선생님은 플라스틱 봉으로 아이의 콧구멍을 쑤셔댔고 액체에 희석해 키트에 떨어뜨렸고 기다림의 시간은 A형 독감을 판명했다. 코로나 검사와 다를 바 없었다. 주사와 5일간의 복용할지의 선택은 엄마의 몫이었다. 주사를 맞으면 5일간의 독감약은 따로 먹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주사를 선택했다. 주사는 플루엔페라로 20분간 누워서 링거로 맞게 되었다. 해열제는 어린이들에게 혈액 속으로 넣는 게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복용 약으로 받아왔다. 독감 검사 비용은 3만 원에 주사료 14만 원이었다.(나중이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글에 가격을 같이 적어둔다)
당일 오후에는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타이레놀로 잡히지 않아 이부프로펜을 교차 복용 약으로 먹였더니 저녁에는 열이 뚝 떨어졌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세트아미노펜보다는 이부프로펜이 잘 맞는다) 열이 떨어지고 48시간이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의사 는 4일에서 5일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진료의뢰서에 써 주었다. 전염병으로 학교와의 격리기간이 시작됐다. 그렇게 시작된 독감 걸린 아이와 독감 간병인이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었다.
화요일, 아이의 콧물 푼 하얀 휴지가 투명 봉투에 가득 모였다 하루치였는데도 산타할아버지가 들고 오는 선물 보따리 아니냐며 아이가 웃었다. 평소 6학년 아이는 학교에서 1시 반에서 2시 반에 끝난다. 이어서 수학학원과 영어학원, 방과후 등을 다녀오면 집에는 오후 5시 반에 들어온다. 그리고 6시부터 이어지는 축구교실과 배드민턴 수업으로 쉴 수 없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자유시간이었다. 그런 바쁜 일상에서 모든 학원에서의 자유라니. 독감이 아이의 자유를 만들어주었다. 아이는 아파서 쉬고 있었지만 나름 즐기고 있었다. 매일 해야만 하는 영어 숙제만 해내고 나머지는 TV 시청하거나 게임을 했다. 동생들이 오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렇게나 쉬는 틈이 많았냐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수요일, 큰 아이와 실컷 닌텐도 게임을 했다. 아직도 마무리를 못 본 게임 몇 가지가 있었다. 젤다무쌍 대재앙의 시대였다. 전투 두 가지가 남았었다. 게임의 전략을 잘 세우지 못했다. 결국 딸과 열심히 목요일 오후까지 한 결과 승리했다. 엄마인 내가 젤다, 마리오를 좋아해서 아이들과 함께 끝을 보았다.
목요일에는 마스크를 쓰고 밖을 나갔다. 아이폰 매장에 가서 핸드폰도 만져보고 옷 가게에 가서 옷 구경도 했다. 온 가족이 있는 상태가 아닌 오붓하게 둘이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 만 원이 넘고 파스타 하나가 2만 원이 넘는 가격이라는 데에 새삼 놀랐다. 대식가인 딸은 네 가지 메뉴를 나와 함께 다 먹었다.
엄마인 내 시간은 그대로 멈췄다. 매일 가던 축구는 독감을 내가 전파할 수 있음을 전제해 갈 수 없었다. 땀을 내지 않으니, 몸은 더 금세 피로감이 쌓였다.(애들이 감기에 걸리면 더 뛰어서 땀을 내라 하던 엄마였다) 매일 하던 운동을 안 하면 오히려 건강하지 않음의 상태가 되는 느낌이었다.(땀 흘리는 게 좋은 나는 축구에 미친 엄마가 분명하다) 아이의 독감 증상이 시간차로 나에게로 왔다. 만 사십이 지나서인지 면역력이 약해진 탓일까. 나도 독감 예방접종을 했는데 효과가 없던 것일까.
금요일이 되어서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병원에 갔고 역시나 독감이 옮았다. 하지만 열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버텨낼 수 있다고 믿었고 늦게서야 병원을 찾았다. 엉덩이 주사에 독감 링거주사에 알약만 여덟 개가 넘는 약을 처방받고 실손보험 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이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내 증상에 기다린 진짜 이유는 저녁에 맥주 한 잔 때문이었다.
둘만의 시간이 또 오는 날이 있을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해야 하는 걸까. 아이 혼자만의 자유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게임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 큰 아이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내게 눈부신 추억으로 남았다.
독감아, 고마워.
이제 우리 집 독감 안 걸린 사람 세 명 남았다.
+어젯 밤에 눈이 많이 내려 눈 놀이 하고 싶었는데 독감으로 나갈 엄두를 못냈어요.
오늘 우체국에서 보인 꼬마 눈사람들 귀여워서 남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