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는 소리가 좋다.
스윽, 스윽.
나무를 벗겨내는 그 소리는
마치 무언가로부터 털어내는 것 같다.
바쁘게 써 내려간 글들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라는 듯
손끝에서 돌려지는 연필은
점점 더 날카로운 끝을 드러내지만
연필깎이 병 속에 떨어지는
연필의 잔해를 보자니
마치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이
하나둘 깎여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깎여 나가야만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힘도,
앞으로 나아갈 여백도 생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연필을 깎는 이 순간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의식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