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편지
아파도 아프단말 못해요
숨이 넘어갈 듯해도
좋아도 좋단 말 난 못하고
보고 싶단 말 못 해요
하고 싶어도 늘 얼버무리죠
눈치 빠른 그대가 또 날 알아채지 못하게
남들 다 하는 그 ‘첫사랑’이 나에겐 정말 가슴 아픈 ‘짝사랑’으로 남아있다.
이전 글에서 썼다시피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돌 그룹의 덕후였어서 사실 주변에 있는 남자 친구들을 이성으로 바라본다는 게 이상했다.
TV를 켜면 멋진 오빠들이 나오는데 왜 굳이 내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이성의 감정을 느껴야 하지?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찾아온 정말 지독했던 짝사랑. 아마도 첫사랑
그 친구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학원에서였다.
6학년이 되기 딱 1주일 전 꽤나 먼 지역으로의 이사로 인해, 전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정말 적응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그런 날 걱정해서 종합반 학원을 보냈던 엄마 덕분에, 학원에서 친구들이 몇 명 생기게 되었다.
그 당시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나와 한 반에 있는 동갑내기 남자 친구들은 3명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나름 본인의 학교에선 유명한(?)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내 눈엔 그저 셋이 까불면서 다니는 걸 좋아하는 그저 그런 친구들로 보였지만.
처음엔 그저 얼굴은 희여 멀건 해서 비쩍 마르기나 하고, 왜 이렇게 나한테 장난을 거는지 정말 눈만 마주치면 서로 으르렁 거리는, 그런 귀찮은 녀석이었다.
(참고로 나는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성격이라 이전 학교에서도 남자인 친구들과 거의 형제처럼 지내는 아이중 하나였다. 나에게 남자는 그저 TV속의 오빠들뿐)
그저 그랬던 마지막 초등학교 생활을 지내고, 중학교 예비소집일.
그나마 반에서 친하다 했었던 친구들은 다 다른 반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배정받은 교실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아이들 뿐이었다.
또다시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려니 정말 머리가 하얗게 됐었는데,
순간 누군가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학원에서 까불고 다니던 3명의 남자무리 중 한 명! 그 희여멀건하고 비쩍 마르기나 했던 그 아이(K)였다.
솔직히 학원에서는 매일같이 싸우고 서로 싫어한다고 얼마나 으르렁 거렸는지, 오죽했으면 학원 선생님이 남자반, 여자반을 따로 만들어서 수업을 해야만 할 정도로 앙숙이었는데, 그 예비소집일날은 뭐가 그렇게 반가웠는지, 정말 그 아이가 내게 구세주 같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도 내가 그렇게 느껴졌는지, 내 자리 근처에 와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더라.
“오? 너 나랑 같은 반이야?” (대충 이런 말이었겠지)
매일 학원에서 까불이 같던 녀석이 처음으로 든든하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입학을 했고, 담임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에 앉게 됐는데 어머나? 내 바로 뒷자리?
당시 무조건 남녀 짝으로 앉았던지라, 남자가 왼쪽, 여자가 오른쪽 이런 식으로 자리를 앉았어서 K는 정확히는 내 대각선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렇게 기쁘더라. 그리고 두근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지독한 짝사랑은.
학원에선 매일 장난이나 치는 그 녀석은, 알고 보니 정말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인기 관리를 위해서였는지) 학교에서는 정말 조용하고 차분한, 누가 말을 걸어도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런 아이였다.
심지어 K의 친 형은 우리 학교 선배였는데,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동네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학교에선 조용하고 학원에선 까부는 모습이 웃기네?라고 느껴졌지만 점점 그 모습이 꼭 ‘나에게만 보여주는 진짜’ 의 모습인 것 같아서 자꾸만 설레게 됐다.
학교에서 그렇게 조용한 아이였는데도, 잘생겼다는 이유로 다른 반에서 꽤 많은 여자애들이 K를 보러 우리 반에 쉬는 시간마다 놀러 왔었고,
소위말하는 ‘일진’ 여자아이 중 얼굴이 정말 예쁜 아이가 복도 정 중앙에서 K에게 고백을 하는 그런 상황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친구는 거절을 당했다)
K 또한 반에 나밖에 친한 사람이 없다고 느꼈는지 늘 나에게만 장난을 치는 편이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점점 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학교에서도 같이 놀고, 학원에서도 같이 노는. 정말 서로밖에 없어진? 느낌.
K 덕분에 나는 시험기간이 좋았다.
시험기간이 되면 학교에서도 같이 있다가 학원에선 더 늦은 시간까지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학원에서 자습시간이 되면 나는 늘 워크맨을 들으며 공부를 했는데, 꼭 K는 내 옆자리로 와서 내 이어폰 한쪽을 뺏어 본인귀에 꽂고 공부를 하곤 했다.
중학교 1학년 소녀에겐 정말 너무나 커다란 쇼크. 내가 남자와 같이 이어폰을 나누어 끼다니!!!!!
정말 그땐 무슨 정신으로 공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부를 잘하는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 덕에 K와 나는 나란히 전교권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정말 그 친구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것 중 하나. 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갔고, 정말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안달이 나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버디버디로 얼마나 고백을 많이 했었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창피한 것도 모르고 계속 고백공격(?) 을 쏟아부었던 나였다.
매번 거절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3번 거절을 당하면 4번 고백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3년의 짝사랑 후 우리는 각각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게 됐고,
그쯤부터 나는 예체능 전공을 했기 때문에 다른 학원들은 다 그만두고 레슨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K와는 연락이 끊어지게 됐고, 고3이 되기 얼마 전 K와 같은 고등학교를 간 내 친구에게 들었던 소식.
“ 걔 여자친구 생겼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한 내 첫사랑이 다른 여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 다닐 거라고?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하늘이 무너질 때 들었던 노래가 바로 이 ‘눈물편지’ 라는 곡이었다.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첫사랑이어서 더 서툴렀고, 그래서 더 아팠고, 그래서 더 애틋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K를 잊지 못해 대학을 가서까지도 꽤나 오랫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군대 가기 전에 어떻게라도 둘이 한번 만나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얘기하면서 그저 술안주 거리로 남은 이야기지만,
정말 K 덕분에 나는 사랑이 얼마나 아픈지, 주기만 하는 사랑이 얼마나 외로운지,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 것들을 많이 배운 것 같다.
지금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로 남아 가끔 안부나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한동안은 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친구.
보고 있니? 맞아, 이거 네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