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고양이

by 김양희

#1


봄에서 여름으로 기울어가던 어느 따스한 날이었다. 새벽 내도록 아파트 단지 내에서 들려오던 고양이의 울음에 저층에 사는 우리 가족들은 밤잠을 설쳤다. 아침이 밝자 엄마는 경비실 앞 종이상자 속에서 잔뜩 울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파트 화단을 돌아다니던 노란 고양이의 새끼였다. 경비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동네 아이들이 다리가 부러진 채 발견된 새끼 고양이를 상자에 넣어두고 갔단다. <병원에 좀 데리고 가주세요>라고 삐뚤 하게 쓰인 글자와 함께. 그 모습을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단에서 어미 고양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밤새 고통으로 우는 새끼 옆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던 마음은 어땠을까. 그날 이후, 뒷발에 깁스가 채워진 새끼 고양이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고양이는 당분간 베란다에 마련한 임시 공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작고 볼품없는 아기 고양이는 많이 놀라고 아파 늘어진 다리처럼 기운이 없었다. 탈이 나는 바람에 온몸에 변도 묻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새 별일이 없겠지? 라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한 생명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시들어버릴 것 같던 몸에 점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정이 들고만 이 고양이가 우리 집 두 번째 고양이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엄마를 살짝 떠보았다. "엄마, 새끼 고양이 다리가 다 나으면 어쩔 거야? 우리가 쭉 키우는 건 어때?" 엄마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역정을 냈다. "앵오 한 마리 키우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좁은 집에 무슨 고양이 두 마리야. 절대 안 된다!" 실권이 없는 나는 더는 조르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그 고양이가 이미 우리의 가족이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엄마도 기억 못 할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베란다로 나간 엄마가 고양이의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혀 짧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우리 아깽이~잘 있었쩌요? 엄마 왔어요~ 이제 좀 괜찮아져쩌요?" 나는 우연히 거실을 지나다 그 소리를 듣곤 웃음을 참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엄마는 본인의 말투가 바뀐 것이나 스스로를 고양이의 엄마라고 지칭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으나 무의식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운 법이니까. 드디어 우리 집에도 둘째 고양이가 생기겠구나! 야호! 머지않아 나의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아기 고양이를 뜻하는 '아깽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으며 그 이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짧은 팔다리와 통통한 삼등신의 비율, 자주 칭얼거리고 늘 보살핌이 필요할것 같은 어설픔을 가진 아이와 가족이 되었다.



엄마는 이후로 아파트 화단을 지나던 아깽이의 어미 고양이와 마주쳤다. 그래서 아깽이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고 했다. "너희 새끼 우리 집에서 잘 돌보고 있어, 잘 치료해 주고 건강하게 돌볼게. 걱정하지 마!" 사람의 손을 탄 적이 없던 어미 고양이는 보통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기라도 하면 후다닥 어두운 곳으로 사라지기에 바빴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날따라 가만히 서서 엄마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 후로 몇 달 뒤 엄마는 먼발치에서 동네 고양이를 구경하는 아이에게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아줌마,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에서 다른 고양이도 봤어요. 노란 고양이였는데, 차에 치였는지 죽어있었어요." 그 후로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한동안 노란 고양이를 볼 수 없었다.



**

#2



. "에--엥-!!??" 하는 앵오의 낯선 울음에 급하게 거실로 뛰어나갔다. 그것은 여태 고양이라는 생물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던 음역대와 악센트였는데, 사람으로 치면 "에--잉?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놀라 집안을 빠르게 둘러보니 베란다에서 멀지 않은 거실 끝에 노오란 털 뭉치가 서 있었다. 그리고는 앵오에겐 유치해져 버려 거실 끄트머리로 밀려난 생쥐 모양의 오뚝이의 머리를 사정없이 작은 앞발로 치는 중이었다. 원 투 원 투! 앵오는 나와 아깽이를 번갈아 보며 놀란 눈으로 말을 걸어왔다. “집사야,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옹?” 나는 앵오의 예민한 기질을 조심하려 여태 베란다에 있는 아깽이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이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다행히 오랜 격리로 서로의 냄새가 익숙해져서였을까. 앵오는 큰 거부 없이 서서히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였고, 아깽이는 낯선 세상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으며 우리의 하루로 스며들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스러질 것 같던 작은 고양이가 작은 발자국을 콩콩 찍으며 스스로 문턱을 넘어 우리에게로 온 날이었으니까.


두 고양이의 나이 차는 10살이었다. 그래서 한눈에도 덩치차이가 많이 났다. 손바닥만 한 아깽이와, 성묘 중에서도 듬직한 편이었던 앵오. 아깽이는 으레 그런 앵오를 살펴보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대소변을 보는 장소나 방법,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극단적인 경계심 까지도. 살짝 어색한 기류가 돌던 두 녀석이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는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가 상당히 불편해 보일 정도로 엉킨 채로 붙어 잠들기 시작했다.


앵오는 내가 다정한 톤으로 “앵~~오야~~(도~솔미)” 계이름에 특유의 박자를 타며 궁둥이를 두드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센 고양이라 내가 힘의 우위를 이용해 저를 오래 안아 들거나 귀찮게 기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넘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그렇게 하고 말 때면 꽤 긴 시간을 둥그런 눈으로 받아주었지만. 그런 앵오가 노란 호박같이 퉁퉁해진 아깽이가 온몸의 무게를 실어 기댈 때도, 느긋한 낮잠을 방해하며 갑자기 얼굴을 들이댈 때조차 귀찮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도 하지 않던 그루밍을 아깽이에게 해주었다. 그럴때면 아깽이도 눈을 반달처럼 구부려 감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앵오에게도 아깽이는 아기 고양이 같았나 보다. 그러나 평화의 시간은 보통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앵오의 넘치는 애정 덕에 아깽이의 정수리가 무스를 바른 것처럼 침 떡이 되거나, 수염까지 톡- 하고 잘라내는 날에는 짜증을 내는 아깽이와 앵오 사이에 푸닥거리 한판이 시작되었으니까.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깔깔거리기 바빴다. 특별한 일 없어도 행복한 날들이었다.



어느 날 오전, 앵오가 짧은 시간에 연달아 토를 하고 괴로워했다. 눈치 없는 아깽이가 다가가 얼굴을 부비니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로 캬악! 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아깽이는 주눅이 들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겁많은 앵오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며 병원을 다녀온 뒤, 갑자기 아깽이의 상태도 좋지 못했다. 갑자기 구토를 하더니 밥을 적게 먹고, 잠든 모습도 기운이 없어보였다. 나는 두 고양이가 동시에 건강 이상이 발생한 치명적인 원인이 있을까 싶어 무서워졌다. 아깽이를 데리고 다시 동물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기다리며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실로 들어갔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의 입이 열렸다. "아깽이는 멀쩡합니다. 아무 이상이 없어요." 아깽이는 엑스레이 소견상으로도, 혈액 검사상으로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안도감에 긴장이 와르르르 풀리자 아깽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깽이 너 꾀병이구나 꾀병. 으이구.. 앵오가 아파서 놀랬어?" 다시 병원에 가기 싫었는지 아깽이는 금새 평소의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아픈 곳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종종 더 이상 우리 셋이 함께 할 수 없는 어느 날의 막내 고양이를 떠올리며 걱정하곤 했다.


그후로 몇 년 뒤, 결국 셋이서 함께 잠들던 이부자리에 둘이서만 눕는 날이 왔다. 내 걱정과 달리 아깽이는 다음날도, 모레도,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밥도 잘 먹고 씩씩했다. 아직 아깽이가 앵오의 부재를 모를지도 몰랐다. 여전히 앵오의 달달한 향이 방구석 구석 좋아하던 자리마다 남아 있었으니까. 자주 눕던 이불에 코를 묻고 킁킁일 때면 마치 나의 주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후각이 발달한 고양이들은 더욱 강하게 체취를 느낄 테니, 아깽이는 앵오가 집안 어느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나는 아깽이가 어떤식으로든 앵오의 죽음을 인지했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책 속의 한 개의 주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가족이 돌아오지 않자 이유를 알 턱이 없는 개는 온종일 울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개를 돌보던 이가 지인에게 상담을 요청했는데, 그에게서 가능하면 주인이 사망한 모습을 개에게도 보여 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는 영안실로 찾아가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집으로 돌아온 개는 다시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글을 읽고 몇 가지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앵오가 처음이자 마지막 발작을 하며 쓰러졌을 때 아깽이는 나만큼이나 빠르게 앵오에게 뛰어왔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앵오의 얼굴에 코를 가까이 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짧은 두 마디를 토해냈다. "아오오올.-아오오올-" 그 소리는 마치 이리 한 마리가 늦은 밤 언덕에 올라가 누군가를 찾으며 울부짖는듯한 외롭고 탁한 소리였다. 항상 참새처럼 짹짹 거리는 작고 가는 목소리를 가진 아깽이에게서는 처음으로 듣는 통곡 같은 울림이었다. 몇 시간 뒤 온기가 사라진 모습을 아깽이에게 보여주었을 때, 겁 많은 아깽이는 온종일 정신없었던 분위기 탓에 캣 타워 밑에 숨어 우릴 보고 있었다. 그곳은 아깽이가 공포를 느꼈을 때 몸을 숨기는 자리였다. 조금 특이한 점은 숨을 수 있는 자리 중 가장 바깥이라 할 수 있는 경계지점에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아깽이는 공포를 느끼면 제일 깊숙한 곳으로 숨어 나오질 않고, 안전하다 싶을 때는 완전히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런데 경계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는 건, 무서워 숨고픈 마음과 한번 더 앵오를 보려는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 후로 약 3주간, 아깽이는 변한 것이라곤 앵오의 부재밖에 없는 뻔한 방구석구석을 킁킁거리며 한 바퀴씩 돌곤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유독 애정표현도 늘었다. 방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잠시 눕기라도 하면 다리와 겨드랑이 위로 파고들어 얼굴을 묻고 골골거렸다. 이 작은 고양이는 나보다 씩씩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살고 있었다. 내가 집이라도 비울 때면 앵오에게 안겨있을 아깽이가, 얼마나 우리를 그리워하며 나를 기다릴지 상상한다. 나의 첫째 고양이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노오란 고양이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남은 삶에 다가올 너와 나의 변화 속에서도 작고 말랑한 이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평온히 잠든 얼굴 위로 입을 맞추며 속삭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