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지 않아 나의 발걸음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도 받았고, 실컷 울어도 봤지만 마음을 엉크리는 소용돌이는 작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 속에는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답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죽음은 내가 아닌 누군가와, 누군가를 아는 이가 반드시 겪었던 일일 테니까. 나는 가급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죽음과 상실의 기록을 모두 보고 싶어졌다.
도서관에는 일 인당 다섯 권의 책을 빌릴 수 있는데, 마침 매달 마지막 주는 평상시 보다 두 배로 대여가 가능했다. 나는 엄마의 도서관 카드까지 빌려 길을 나섰다. 지고 올 책의 무게를 생각해 엄마의 장보기 동행자인 바퀴가 달린 천 모양의 캐리어 (일명 구루마)를 끌기로 했다. 달달 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십여 분 정도를 걸어 도서관에 도착했다. 나는 줄 서 있는 책들 중 마음이 가는 책들을 끌어모아 책상 위에 탑을 쌓았다.
그러다 내 옆을 지나는 발걸음이 느려지는 걸 느꼈다. 힐끗 쳐다보니 육십 대 정도의 아저씨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할 것이 웬 젊은 여자가 책 무더기 앞에 앉아있는데, 그 책의 제목은 하나같이 죽음, 애도, 슬픔, 이별과 같은 뭔 일이 날 것 같거나 뭔 일이 났거나 하는 내용들이었으니까. 그도 소중한 존재를 먼저 보내 본 경험이 있겠지. 그래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식의. 그것도 아니라면 '저기, 그 책들 다 보고 안 빌릴 거면 제자리에 꼽아놓고 가슈.'라는 말이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가는 도서관 골목에서 흰 몸에 검은 반점이 멋진 고양이를 마주쳤다. 이 아이를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먹을 것을 주려고 몇 미터를 따라다녔는데 녀석은 마침 어느 횟집의 부엌으로 들어가 자기 몫으로 챙겨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아귀찜 집 아주머니에게도 귀여움을 받는 듯했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나의 세상에서 큰 축을 이루던 존재가 사라졌지만 늘 있던 길도, 가로수도 벽화도 도서관 길고양이도 그대로네. 나는 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집까지 구루마를 끌고 온 것 같다.
나는 몇 달 동안을 주로 방에서 죽음에 관한 책만을 읽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은 공감이 가지만 전부 동의할 수 없기도 했는데, 특히 잔뜩 예민해진 내 마음은 작가의 사소한 문장 하나에도 곧잘 기분이 상하곤 했다. 죽음을 담은 책은 보통 '인간'을 대상으로 쓰였기 때문이었다. 가령 인간과 달리 동물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장에는 짜증을 내며 동족을 잃고 슬퍼하는 코끼리나 인간 가족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야생동물과 싸운 강아지, 주인이 죽자 곡기를 끊은 채 생을 마감한 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허튼 주장을 한 작가에게 반박했다. 죽음과 불행을 검은 개가 덮쳐온다고 표현한 글을 보고는 관습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죽음에 관한 글을 쓰는 이가 그런 편협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눈썹이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검은 개가 도대체 어때서?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구만. 결국 나는 넘기던 책장을 쾅하고 덮어버렸다.
며칠 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저의 반려동물도 얼마 전에…'라는 말 따위는 금지하길 바란다는 글을 읽고선 (슬픔에 빠진 이에게 위로랍시고 자신의 경험을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는 그의 의도는 백번이고 공감하나) 적어도 상실의 상처를 다루는 글에선 마주치지 않고 싶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그저 하나의 예시 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결국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건 타인의 슬픔의 크기를 자신의 기준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 되니까.
나는 얼마 전 해외토픽에서 본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사진 속 남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갑작스러운 화재로 그의 집은 큰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의 개는 미처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온갖 몸짓을 동원하며 갖은 애를 써야 했다. 결국 한 소방관의 기지로 개는 무사히 구조되었다. 마침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개를 양팔로 끌어안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어느 사진기 속에 남았다. 어느 길고 어두운 밤, 서로를 꼭 끌어안은 그들의 뒤로 시뻘건 불길에 먹혀 사그라지는 집이 서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한 점의 좌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감사와 안도의 빛만이 역력했다. 그에게는 그 개가 유일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