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2 -기이한 문장

장례식장에서

by 김양희

#1


긴 잠에 빠져 우리의 방 가운데 웅크려 누워 있는 나의 고양아. 그 쓸쓸한 모양 곁에서 나는 한참을 엎드려 울어야 했지. 그래도 조금만 더 머무르지. 얼마 전에 가득 주문해 놓은 사료와 간식들이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이번에 고른 것들은 까칠해진 네 입맛에 꼭 맞을 거라 자신했었거든.


사실은 난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아.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야. 하지만 그날은 좀 아니었어. 그러기에 그날 아침은 너무 평범했잖아. 해가 서서히 밝아오던 익숙한 시간에 고운 목소리로 나를 깨워줬잖아. 그게 우리의 마지막 모닝콜인걸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눈을 떠 그리운 얼굴을 바라보아야 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 잔소리 가득 섞인 목소리를 귓가에 더 담아둬야 했을까.




영원한 잠에 빠진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침 동안에 벌어진 일들을 꾸역꾸역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일이 떠올랐다. 나는 노묘를 돌보면서도 이제껏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의 절차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게으른 집사였는데, 그날은 멀게 여길수록 천천히 다가올 것만 같은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순간적인 울음이 잦아들자 인근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검색 한 뒤 한 곳을 정해 연락을 했다. 그러자 까망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앵오 화장하러 갈 때도 나한테 연락해. 같이 가줄게." 나는 염치없이 몇 시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마침 마음이 무거워 근처 공원에 앉아 있다고 했다. "앵오 오늘 바로 보내도 되겠어? 그래, 지금 출발할게."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수녀원에 갔을 적에 받아 온 하얀 수건에 앵오를 감싸 보내자고 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성스러운 기운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동의했다. 그러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꽃집에 전화를 걸었다. 어떤 꽃이 필요하냐고 묻는 물음에 방정맞게 목소리가 들썩거렸다. "아, 우리 고양이가 오늘 가서요. 흑…. 보내러 가는 길에 같이 보낼 꽃이에요…..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약속한 십 분이 지나고 꽃을 찾으러 갔다. 작은 다발에 노란 꽃잎이 인상적이었다. 검 갈색 고등어 고양이와 딱 어울리는 색이었다. 마스크 너머로 위로의 눈빛을 보내는 그녀에게 꽃다발이 예쁘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앵오를 안고 마지막으로 집안을 보여 주었다. 항상 같이 잠들던 우리의 방, 햇빛을 쐬던 소파 위,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낮잠을 즐기던 러그 위.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망 언니가 집을 도착했다. 이제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었다.




**

#2


나는 하얀 포대에 싸인 갓난아기 같은 나의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로 언니의 차에 올랐다. 이렇게 얌전한 내 고양이라니. 나는 뒷좌석에 앉아 꺽꺽거리며 눈물을 그치다 말다, 이야기를 했다 침묵하기를 반복했다. 그사이 앵오의 촉감은 생전의 것과 달라졌다. 나는 기다란 수염 몇 가닥을 당겨보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볼은 잠들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실감이 나질 않아 이동하는 동안 틈틈이 하얀 수염을 당겨보았다.


낯선 동네를 지나 어느새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들어섰다. 나의 예상 도착 시간에 맞추어 직원 한분이 주차장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린 편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었는데 그분은 검은 정장을 입고 미리부터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문득 오히려 우리보다 그분이 조금 더 우리 고양이의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주차를 끝내고 차에 내릴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앵오를 직접 들어주신다고 했지만 내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그날 그 시간의 손님은 우리가 유일했다. 우리는 복도의 가장 끝쪽 방을 안내받았다. 그곳의 벽은 큰 유리로 되어있었고 그 너머로는 커다란 가마 같은 것이 보였다. 곧 직원의 안내에 따라 또 다른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며 그녀가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장례식을 하지 않고 바로 화장하는 절차를 선택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부산에 있지 않았고, 엄마는 자가격리 중이어서 오늘내일 내로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앵오는 스테인리스 책상 위에 누워있었다. 이것이 내가 볼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하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보드라웠던 털을 또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모레라도, 아니 몇 년이 지나도 나의 고양이를 보내기 아쉽지 않은 날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큰맘 먹고 앵오를 홀로 두고 방에서 빠져나왔다.


처음 안내받은 방으로 돌아오니 곧 화장 절차가 시작되었다. 앵오는 준비해 온 노란 꽃으로 둘러싸여 잠들어 있었다. 다시 한번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마지막 앵오의 모습을 담았다. 곧 불곰같이 크고 시꺼먼 가마가 열리자 나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무언가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별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 옆에 와줘서 고마워. 내 인생에 와주어 고마워. 그 말 밖에 생각이 안 나 수십 번을 더 되새겼다. 누군가는 세상에 있는 말을 모두 지우면 사랑한다는 말이 남는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고맙다는 말이 남았다.



**

#3


조금 진정이 되자 직원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나 한 넓은 방의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손에 쥐어 준 계약서를 보니 내가 선택한 절차가 제일 저렴했다. 화장과 기본 나무 목각함 제공. 다른 상품을 훑어보니 천연 수의, 최고급 유골함, 장례식 거행 등의 서비스가 추가되는 것들은 백만 원을 호가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적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사랑의 크기 또한 작은 것임을 증명하는 것 만 같아 마음이 씁쓸해졌다.


곧 그녀는 나에게 화장한 유골을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어왔다. 예전에는 앵오의 유골을 스톤으로 만들어 간직하는 방법을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것을 매일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아는 절의 하늘과 나무 사이로 흘려보내 주고 싶다고 했다. 그 절은 산을 꽤 올라가야 나오는 곳이었는데 원효대사가 지은 절 중의 하나로 크진 않지만 경치가 빼어났다. 큰 돌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가파른 계단을 타고 절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파란 하늘 아래로 빼곡한 초록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대로 몸을 내던지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었다. 겁 많은 나의 고양이는 대부분의 생을 작은 방 안에서 보냈지만 이렇게라도 아름다운 하늘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직원은 나에게 그런 것들은 불법이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아하. 그렇다면 나는 나무 밑에 묻어주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말에 직원은 잠시 일어나 나를 상담실 구석으로 안내했다. 그곳의 투명한 유리 진열대 안에는 화려한 유골함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중 은은한 옥빛이 도는 도자기는 무려 삼십만 원 대를 호가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지금처럼 기본으로 나가는 나무 상자는 아무런 기능이 없어 유골이 빨리 상할 수 있다고 했다. 가격이 나갈수록 밀폐기능이 뛰어나고 황토 처리가 되어있어 오래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유골함을 집에 두고 매일 바라보며 슬퍼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랑하는 고양이의 유골이 상할 수 있다는데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고객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바란 것은 나의 고양이와 함께 하는 것이었기에, 이후에 것들에는 큰 의미가 가지 않았다. 내가 몇 번 거절을 표하자 직원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슬픔에 빠진 나에게 유골함 영업을 제안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수익구조였을 뿐이다. 시설은 깨끗했고 그분들은 도를 넘지 않았고 머무르는 동안 정중했다.


방으로 들어오니 머지않아 절차가 끝났다. 유리 너머로 다시 등장한 직원이 정중히 인사했다. 시꺼먼 가마가 열리더니 서서히 내용물이 밖으로 나왔다. 하얀 가루들 위로 아직 부서지지 못한 큰 뼈가 보였다. 직원은 큰 붓을 가지고 와 가벼운 스냅으로 붓질을 하며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까망 언니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내가 이 장면을 직관하는 것이 괜찮은지 마스크 위로 보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너 괜찮아?" 하고 물었다. "응 괜찮아 언니. 앵오가 죽는 일이 제일 큰일인데. 더 놀랄 것도 없지." 곧이어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나는 청록색 보자기에 싸인 네모난 물체를 전달받았다.



**

#4


모든 절차가 끝났다. 결제를 하러 긴 복도를 지나 카운터 앞에 섰다. 결제를 담당한 직원은 낯이 익다. 앵오의 화장을 진행한 분이었다. 카드가 읽어지는 동안 그가 물었다. "고양이가 젊을 때는 덩치가 많이 컸겠네요. 유골의 크기만 보면 최소 5kg급 이상의 체격이네요." 나는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꼈다. "네. 앵오가 한창때는 정말 건강하고 몸집이 컸어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저건 고양이가 아니고 살쾡이가 분명해!"라고 했을 정도라니까요." 그 문장을 뱉는 순간 낯선 감각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 잔잔한 소름 같던 느낌을 분석할 새도 없이 곧 "삐비빅--!" 하며 성공적인 결제를 마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늘 정중했던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느새 두 손을 모으고 건물 밖까지 배웅하려는 직원을 손사래로 돌려보내고 건물을 나섰다.


이후의 시간은 쏟아지는 감정의 홍수에 빠져 그날 내가 느낀 알 수 없는 감각을 되새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서야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 기이한 감각의 원인은 바로 내가 뱉은 말 때문이었다. 앵오는 정말 건강하고 컸었어요. 그 단순한 문장은 처음으로 나의 고양이가 영원한 과거형이 되는 문장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숨을쉬던 나의 고양이가 이제 영영 다른 차원으로 분리되었음을, 최초로 나의 언어로 타인에게 시인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 많던 두려움도 잊은 채 낯선 차에서 잠든 나의 고양이와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 언니에게 털어놓던 앵오의 이야기는 아직 나에게는 현재의 영역이었다. 비록 온기는 사라졌지만 내 품에 안겨 있었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부재를 인정하는 나의 행위에 온몸의 세포들은 준비가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낯선 감각을 내세워 각기 혼란을 표현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어야 하는 건지, 손에 쥔 보자기를 믿어야 하는 건지.


종종 과거가 된 소중한 이를 떠올리는 사람들을 본다. "어릴 적 어머니와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었지요.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얼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듯한 사람, 담담하게 이어가다 어느새 눈시울이 촉촉해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요즘 내가 앵오의 이야기를 할 때도 이들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제 나의 고양이는 나의 기억 속에서 살고, 사진첩 속에 살고, 과거의 말속에 산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이상했던 감각은 최초의 경험 이어서일까, 앞으로 겪게 될 소중한 이들의 과거를 시인할 첫 문장마다 느끼게 될까? 그렇다면 나는 살며 얼마나 많은 이상한 문장들을 뱉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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