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잠시라도 엉덩이를 땅에 붙이면 노오란 아깽이가 품으로 파고듭니다. "으이구, 그새 또 보고 싶었어?" 괜히 둥그런 코끝을 퉁 치며 한 마디 해보지만, 사실 복부를 압박하는 이 뜨끈하고 몰랑한 감촉이 싫지 않습니다. 이 따땃한 것을 끌어안고 나는 방안에서 참 긴 시간을 보냈더랍니다.
얼마전에는 나는 술도 잘 못 마시면서, 술을 좋아하는 도시의 세 여자의 우정을 나눈 드라마를 몰아보며 끅끅거리다가 환상의 캐스팅이라며 담당자의 안목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여성 댄서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보며 멋진 언니들이라며 물개박수를 치며 응원했지요. 저는 아무래도 잘 지내고 있나봅니다. 지나간 드라마 몰아 보기, 유튜브 보기, 웹툰과 웹소설에 쿠기 굽기, 넷플릭스 감상 등 어느때보다 문명의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것들은 모두 그해에 만들어진 취미들입니다. 나는 슬플때마다 취미를 만들어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아닌 일로 웃고 울을 거리들을 찾다보니 이젠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게 되었나봐요.
다만 무난한듯 보이는 일상속에서도, 가끔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나는 혼자 있을때면 머릿속에 툭툭 떠오르는 노랫말을 흥얼거리곤 하는데, 그럴때면 절묘하게 가사에 나오는 단어를 우리집 고양이들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곤 해요. 터무니없는 가사와 멜로디에도 이제는 익숙한 듯 멀뚱히 집사를 바라보는 고양이들을 향해서요. 그러던 어느날은 방안을 정리하다 무심코 떠올린 한 동화같은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동그란눈에 까만작은 코. 까만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얘기하지.
너에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
까만 작은코에 입을 맞추면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예쁜 아기곰.
그런데 갑자기 눈가에서 뜨거운 것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어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방안에서 구겨져 펑펑 울고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푸르고 맑은 눈을 가졌냐며, 분홍 코는 또 왜이렇게 환하고 곱냐며, 네가 있어 난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내 옆에 있어주어 고맙다고 입맞춤을 퍼부을때마다 지긋이 바라봐주던 그리운 얼굴이 떠올랐어요.
둥그런 눈을 맞추며 코끝에 입술을 가져갈 때의 달달한 향기, 입가와 볼에 닿이던 부드러운 촉감. 이름을 부르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을때면 살랑이던 꼬리가 바닥을 탁탁 치는 기분 좋은 울림. 19년을 반복해서 표현해도 모자라던 사랑,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던 행복의 조각.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날이 어느덧 일년이 다되어 가지만
나의 고양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처럼 엉엉 그리움을 쏟아냈습니다. 눈물을 그치고서도 내가 왜그랬지? 하며 노래를 떠올리니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문득 이런 얄궂은 생각도 했답니다. 어린시절에 친구들과 누가 먼저 눈물흘리는지와같은 내기를 할때면, 나는 억지로 하품을 하며 눈물 몇 방울을 짜내보다가 늘 내기에서 졌었다는 걸요. 그러나 지금 이 노래를 마음속으로 떠올린다면 나는 적어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한 채 질 일은 없겠다고요.
이젠 알 것만 같아요.
나는 남아있는 나의 생에 많은 날을 또 웃다, 망각하다, 그리워하다 보낼 것이라는 것을요.
주먹만한 몸으로 나에게 찾아와 살쾡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용맹히 자라더니,
서서히 작아저버리다 끝내는 소멸해버린 나의 고양이를.
그렇게 내가 살며 사랑했지만, 사랑하지만, 사랑에 빠지겠지만, 사라저버릴 모든 것들을요.
나에게 그날 이후의 1년은 이런 것이었어요.
그렇게 끔찍이도 아끼던것이 사라지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부수어져도 사람은 끝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때마다, 힘주어 살던 마음과 애정을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은거냐고. 자주 생각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조차, 나는
나의 두 번째 고양이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어요.
어쩌면 나는, 우리는, 사라질것들을 사랑하려고 태어났나봐요.
나는 이 오묘한 삶의 모양을 이해하는 것에,
아마도 나의 전 생애를 소모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