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0분, 기상 시간임에도 아직 꿈나라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고 있는 두 초등학생들. 서둘러 깨우고 8시까지는 식탁 앞으로 모이라고 재촉한다.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난 첫째 아이, 그 와중에 아침 메뉴가 궁금한지 주방으로 와서 슬쩍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가리는 음식도 없고, 뭐든 잘 먹는(웬만한 어른 보다도 더 많이 먹는) 예쁜 첫째 아이. "가래떡 먹을래, 기정떡 먹을래?"라고 물어봐도 "음, 저는 둘 다 괜찮아요.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답하는 순둥순둥한 참 편한 녀석.
반면에 둘째는 영 까다로운 편이다. 그렇다고 심하게 편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취향을 존중해주기란 꽤 골치 아프다. 계란의 경우 완숙란은 흰자만 먹는다. 노른자는 아빠의 몫. 꼭 반숙란을 고집한다. 하지만 계란 후라이는 또 노른자를 익혀도 안 익혀도 상관없이 잘 먹는다. 계란 스크램블은 토마토나 시금치 등의 부재료가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
고구마는 또 어떤가? 생고구마는 좋아하지만, 구운 고구마는 질색을 한다. 아니 에어프라이에 구운 고구마가 얼마나 맛있는데! 물론 고구마샐러드도, 고구마 수프도 다 싫단다. 하지만 맛탕은 또 신나서 냉큼 집어먹는다.
이 까다로운 8세의 취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째 한 뱃속에서 태어났음에도(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같은 공장 출신인데!) 어찌 이리도 다른 걸까? 늘 의문이다.
아무튼 오늘 아침은 <계란스크램블>이다. 어제 피자를 만들고 남은 시금치를 때려 넣고, 블랙올리브슬라이스도 넣는다. 초록과 검은색 만으로는 칙칙해 보이니 빨간색 토마토도 얼른 썰어 넣는다. 색감은 물론이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와 토마토가 만나면 영양도 배가 되니 안 넣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늘 아침밥상을 마주하고 둘째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투덜대려는 찰나, 비장의 무기를 꺼낸다. "근데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옥수수를 듬뿍 넣었었는데? 그리고 레몬에이드도 짜잔 여기 있지" 둘째는 잠시 망설였으나, 취향저격 최애 메뉴를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계란스크램블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은근슬쩍 토마토랑 시금치는 자꾸 골라낸다. 딱 걸렸어! 엄마 찬스, 오빠 찬스로 몇 개는 집어갔으나 나머지는 이제 네가 먹어야 한다며 눈빛 레이저를 쏜다. 엄마로서 늘 고민은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설득해서 먹일 것인가' 혹은 '싫다는 건 굳이 애를 쓰고 먹이지 말 것인가' 이 둘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한다. 어쨌든 오늘은 전자를 선택했다. 이게 잘 한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식 나왔습니다! <각종 야채 탈탈~ 계란스크램블, 사과 1/4쪽, 기정떡, 레몬에이드>
아이들이 등교하고 조용해진 집 안 분위기. 마침 냉장고 안에 대추가 눈에 들어온다. 아! 한동안 잊고 있던 건대추. 곤드레영양밥을 해 먹고 남은 재료인데, 이대로 내내 방치했다가는 상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아침부터 일을 벌일 것인가, 그냥 조용히 지날 것인가. 먼저 내 컨디션 체크. 아침식사 준비에 크게 힘을 빼지 않아서 설거지도 별로 없고 아직 힘이 남아있다. 날씨는? 초여름 치고 아침은 선선하다. 따끈한 대추차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요 며칠 코를 훌쩍이고 있다. 한 녀석은 목도 칼칼해한다. 그렇다면 대추청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중에 후회할지 언정 일단 저지르고 보자.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기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지는 않았다. 베이킹소다를 넉넉히 풀은 물에 대추를 담가 둔다. 그동안 설거지를 해치우면서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밀크티가 당겼다. 내친김에 냉침 밀크티도 만들어봐야겠다. 선반을 뒤져보니 홍차 티백도 마침 딱 두 개 남았다. 유리병에 뜨거운 물을 소량 담고 홍차를 우려낸다. 여기에 꿀을 두 스푼 넣고 우유를 부어준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가 지나기를 기다리면 끝. 야무지게 티타임을 가질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아참 근데 나 대추청 담그고 있었지! 다시 대추청으로 돌아가서. 대추를 물에 여러 번 깨끗하게 헹궈주고 과육과 씨를 분리한다. 씨는 그냥 버리기 아까워 물을 붓고 팔팔 끓인다. 대추청에 넣을 물로 쓰면 되니까. 과육은 얇게 채 썰기를 해주고, 비정제 원당과 레몬즙 그리고 아까 끓여준 물을 넣고 휘휘 저어주며 졸이면 끝. 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를 빠뜨렸으니 바로 병 소독. 손잡이 달린 냄비에 얼른 유리병을 소독한다. 어쩐지 너무 빨리 끝난다 했어.
돌아보니 설거지가 또 한 가득이다. 일을 벌이기 전에 다음에는 꼭 뒷정리의 귀찮음을 떠올리며 참아보겠노라 다짐하며. 비록 나의 귀한 노동력이 투입되었으나, 따끈하게 <대추차>를 한 모금 홀짝거리는 순간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생강가루와 계핏가루도 첨가하니 꽤 그럴듯한 건강차가 되었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도 한 잔 배달한다. "이거 쌍화탕이야?" 내가 너무 잡다하게 재료를 넣은 건가 뜨끔하다. 대추차 본연의 맛이 사라지다니. 아무튼 이로써 아침시간의 부엌데기의 대장정은 끝.
점심식사 사진이 없는 걸 보니 외식을 했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맞다! 중식당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나도 가끔은 밖에서 사 먹는 일탈을 해야 집밥을 해 먹을 힘을 저축한다. 밀가루와 유제품을 제한하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이렇게 애들 없을 때 몰래 가끔 외식으로 먹는 이유도 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 참에 식단 조절에 같이 동참하면 좋으련만, 40여 년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란 왜 이리도 쉽지 않은 건지. 게다가 이 엄마는 만성인후두염 때문에 커피도 끊었고, 술은 원래 안 마시는데, 밀가루까지 끊으면 삶의 낙이 없지 않겠니? 구구절절 핑계만 늘어놓는 내 모습이 참으로 구차하지만, 결론은
"탄수화물 못 잃어!"
방과 후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온 아이들은 덥다고 난리다. 하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유를 부린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했지, 바로 <엄마표 수제 아이스크림> (사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집에 있는 주스 얼린 것)
얼마 전 고민 끝에 실리콘 아이스크림틀을 새로 샀다. 작년에 플라스틱으로 된, 6개를 동시에 얼리는 아이스크림틀에게 참패를 당한 후 올해는 꼭 개별로 된, 그리고 꽝꽝 언 딱딱한 얼음을 비틀어서 꺼내기 편한 말랑말랑한 실리콘을 사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모양이 달라서 혹시 싸울까 봐 잠시 소심해졌지만, 다행히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으며 즐거워했다. (휴우, 심장을 쓸어내렸다. 싸움의 빌미를 애초에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물건은 똑같은 사양으로 사는 애 둘 엄마의 삶이란) 내용물을 좀 더 충실하게 채웠으면 좋았을 테지만, 일단 테스트해보는 셈으로 집에 있던 과일 야채 주스를 얼렸다. 양심에 찔린다. 다음에는 뭔가 특별한 아이스크림을 약속하며, 곧 연구해보마.
올 여름을 부탁해!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망설임 없이 선인장 모양을 고른 둘째, 이유는? 제일 크다며 ㅋㅋ
냉장고가 텅 비었다. 아, 무얼 해 먹지. 저녁밥 먹고 빵도 한판 구워야 하는데, 저녁 메뉴는 반드시 노동을 줄여야겠다. 냉장고 한 구석에 신김치와 찬밥을 발견하고 실온 보관 식재료 선반에 쟁여둔 햄을 보고 안심이 된다. 그래, <김치볶음밥>으로 낙찰. 두 아이의 미세한 입맛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동 단결되는 메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김치볶음밥이다.
재료 준비도, 요리 과정도 너무 간단해서 콧노래를 부르며 휘리릭 만들 수 있는 메뉴. 아직 매운 김치를 잘 못 먹는 막내를 위해 아이들용 김치는 물에 몇 번 씻어준다. 김치와 햄을 송송 썰어주고, 신맛을 잡기 위해 설탕 소량 뿌리고 전자레인지에 몇 분 돌려 둔 찬밥과 함께 현미유 혹은 기버터에 볶아주면 끝! (참고로 우리 집은 오**스 에서 첨가물도 밀가루도 없는 국산 무항생제 햄, 즉 '착한 햄'을 사용한다. 그나마 안심하고 먹을 수 있기에. 그리고 기버터는 카제인이 없는 버터이다. 유제품을 못 먹는 우리 애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기버터에게 박수를)
계란은 중 약불에 천천히 반숙으로 익혀주고,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려주면 비주얼 완성. 여기에 김가루를 살포시 더하면 이제 서빙 나갈 준비는 완료. 이렇게 뚝딱 저녁 메뉴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역시나 좋아하는 메뉴 앞에서는 딸아이가 연신 상글벙글하다. 시키지 않아도 손을 씻고 일찌감치 내 옆으로 와서 수저도 놓고, 밥그릇도 서빙한다. 엄마를 도와줘야 빨리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 그릇은 파스타용이지만 이렇게 한 그릇 음식을 담아내는데 이만한 게 없다. 국도 반찬도 없이 한 그릇 요리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사용성, 실용성 백 퍼센트. 한 입 먹자마자 "엄마, 더 있죠? 더 먹어도 되죠?"라고 묻는 녀석. 그래 실컷 맛있게 먹으렴. 그럴 줄 알고 넉넉하게 만들어서 볶음팬에 좀 남겨놨지.
그나저나 자기 전에 꼭 장을 봐야겠다. 새벽이면 집 앞에 도착하는 이 놀랍고도 고마운 나라 대한민국. 피클이 똑 떨어졌으니 오이를 좀 사야겠다. 주말에 심심하지 않게 아이들 요리 활동 겸 레몬도 사서 레몬청도 담가볼까 싶다. 이렇게 늘 사서 고생하는 나란 여자.
여기서 하루가 끝나면 좋을 텐데, 조금 더 힘을 내본다. 바로 내일은 남편이 춘천 할아버지 댁에 가는 날.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님을 봉양하러 강제 차출 된 남편은 울상이다. 시부모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그 순서가 손자인 남편에게까지 온 것이다. 남편은 우리 가족 다 같이 가자는데, 그냥 한 명만 대표로 고생하자고. 미안한 마음에 선물용 빵을 한판 구웠다. 아니 빵이 아닌 떡이라고 해야 하나.
바로 <LA찹쌀파이>는 나의 단골 베이킹 메뉴이다.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에게도 수 없이 구워서 선물로 준 메뉴. 특히나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요청받은 적도, 판매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상대방이 맛있게 먹어주면 참 기분이 좋다.
후한 평가를 받는 비결은 바로, 아낌없이 들어간 견과류가 첫 번째 이유이다. 여기에 달지 않은 은은한 맛과 쫀득하고 오독오독한 식감의 조화가 괜찮은가 보다. 아이들에게 밀가루 대신 찹쌀로 만든 간식을 주려고 만들기 시작한 건데 엉뚱하게도 선물용으로 더 자주 만든다. 정작 둘째는 LA찹쌀파이만 봐도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래서 나머지 세 식구만 아주 좋아하는 메뉴이다.
따로 발효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가루류를 체 쳐서 넣어도 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치대고 반죽하느라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쉬운 메뉴라 만만하다.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해아 할까. 식힘망에서 한 김 빼 주고 예쁘게 썰어서 개별 포장을 해 준다. 여기에 손 편지 빠지면 섭섭하지! 짧게라도 마음을 담아본다. 그리고 핸드메이드 스티커를 붙여주고 리본을 묶어주면 완성. 부디 할아버님께서 간식으로 맛있게 잡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