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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Nov 05. 2022

공감을 못할 거면 가급적 닥쳐주시길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 저는 무슨 마음이든 힘든 마음을 겪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지내려고 해 보았지만, 살아있는 한 영원히 아무것도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뭐든 눈앞에 맞닥뜨려야 했고 그럼 뭐든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감정을 피하는 방법은 어디에서도 알 수 없었습니다. 게임도 SNS도 소용없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감정을 피하고 있으면 더 괴롭습니다. 잠을 자면 꿈에도 쫓아옵니다. 차라리 그냥 마음껏 괴로울 수 있는 방법이 저한테는 나은 것 같습니다. 저는 수시로 감정을 피하면서 더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 사실을 쓸 때는 막 더 괴롭진 않습니다. 그냥 괴롭습니다. 저는 그게 마음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수많은 괴로운 일들을 마주하다 빈약한 마음이 더 이상 괴롭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을 때 뉴스에서 너무 괴롭고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계속 머릿속에 뉴스에서 들은 소식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힘들면 소식을 보고 듣는 것을 멈추고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슬픈 소식을 떠드는 것을 아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충격받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결국에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괴로운 감정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다른 일을 해도 마치 할당량이 있는 것처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계에 다다른 저는 그냥 그 사실을 쓰려고 다시 여기를 구질하게 찾았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글 몇 자로 전하기엔 송구스럽게도 감히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사람들을 구하시던 분들, 그리고 마음 아파하는 모든 동료 시민분들께도 슬프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 현장에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공개된 플랫폼에 같이 아프고 슬프다고 글을 쓰는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주제에 살아있는 게 죄송스럽고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 이 글을 발행하게 될지 아니면 묵혀두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조의를 표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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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생각해보면 이번 참사는 당연히 모두에게 똑같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곁에서 세상 누구보다 괴롭고 고통스러울 사람들과 지금 여기에 있는 저의 거리는 실로 정말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정말 죄스럽지만 그럼에도 저는 슬퍼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똑같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의 길이가 체감상 얼마나 차이가 날지 저는 짐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슬퍼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시간 자체는 모두 똑같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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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일어났을 때,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일어난 일과의 거리가 좁게 느껴져서 바로 곁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멀리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정반대의 평행우주처럼 다른 세상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느끼는 괴로움을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군가는 당연히 쟤가 미친놈이라서 느끼는 것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 사는 세상은 조금만, 정말 조금만 애를 써보면 사실 닿을 수 있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까지 누군가와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뭔가를 고치러 누군가 온다면 그 사람의 일상에 잠시 내가 놓이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각자의 세상은 분명히 닿을 수 있고, 연결되어 있고, 또 실은 그렇게 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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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번에 일어난 이 참사가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은 사람들을 봅니다. 다른 이의 세상에 닿기 위한 애를 쓰고 수고를 들이는 것이 '사는 게 바쁘고 힘이 들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냥 사람 다니던 길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렇게까지 다른 세상에 일어난 일처럼 말하고 책임 없는 척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심지어는 본인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관부터 구청장, 경찰서장 같이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일수록 자기 세상과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느끼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겪고 있는 시간도 다른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울다가 쓰러지는 가족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도 웃으면서 농담한 국무총리 아저씨는 조금도 이 시간이 지옥 같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생사를 오갈 때 걸어서 몇 분이면 올 거리를 차 타고 가겠다고 거의 한 시간이 걸려 찾아온 경찰서장 아저씨의 한 시간은 거기 그 길에 있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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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실 그렇게 놀랍지도 않은 '높은 사람들'의 대응방식은, 그들의 이따위 대응에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수 있게 해 준 지난 기억들과 더불어서 제가 '혹시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차피 나중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지겨운 역겨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 사실이 저는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반복되는 불안과 걱정에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또 체감하고 그만큼 지치고 무력해집니다.

그냥 놀러 간 거라는 이유로는 참사라는 단어를 납득할 수 없어하는 사람들, 심지어 정부가 나서서 그런 단어는 이태원 이미지를 망친다고 변명하는 장면 같은 것들을 보면서, 그렇게 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서로 간의 세상 사이에서 어떤 사람들은 담을 쌓으며 본인의 세상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고 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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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제가 생각할 때 이번 참사가 슬프거나 아프지 않은 어떤 사람들이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이겁니다. 아무리 나의 세상과 다른 이의 세상 간에 담을 쌓거나 혹은 당연히 남의 일이라 아주 쉽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이들도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니 세상이나 내 세상이나 쟤 세상이나 걔 세상이나 다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그놈의 염병할 각자의 세상이라는 건, 기껏해야 다 같이 사는 단 하나의 똑같은 세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참사에 대해 남일 말하듯 쉽게 말하는 그들은 운이 좋게 살아남았을 뿐 그따위로 쉽게 말하는 니가 겪었을 수도 있었을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니나 내나 같은 거리를 동시에 지나가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어쨌거나 물리적으로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렇게만 이야기해버리면 사실 많은 것들을 지우게 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여성이 더 많이 희생된 사실. '중년들이 너무 몰려서 수많은 중년들이 참사로 희생되었다'는 뉴스는 사실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거기에 갔었던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라는 사람들의 댓글과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축제에 많이 모인 이유'를 찾아내려는 늙은 사람들. 그 늙은 사람들만 이번 참사의 이유를 설명하러 나올 수 있는 뉴스. 막상 그냥 놀러 갔다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음에도 기죽고 눈치를 봐야 하는 살아남은 이들. 심지어 그마저도 여성들이 더 비난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왜인지 늘 항상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사고, 재난, 참사에서 죽는다는 사실 같은 것들이요.


그럼에도 이렇게 '세상이 연결되어있니 어쩌니' 하며 구구절절 이야기 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 참사를 남의 일처럼 쉽게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그건 니가 너무 꼬아서 세상을 보기 때문, 그런 불평등은 없다.'라고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에 하나의 확률로 이번 참사가 너무 남의 일이라서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아 거기 간 사람들이 잘못한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어떤 이가 이 글을 읽었을 때 최대한 납득하기 쉽게 '그래 백번 천 번 양보해서 그런 불평등은 없다 치고서라도, 최소한 이런이런 이유 때문에 당신이 이 참사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티라도 숨기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당신이 같은 일을 겪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당신도 상처받을 거잖아요.'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사실 마음 아픈 이와 함께 마음 아파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 이에게 상처는 주지말자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나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저 때문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셨거나 마음이 괴로워지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도대체 어째서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마음 아픈 이들에게 상처 주면 안 되는지를 이렇게까지 설득을 하게 되었을까요.


누군가는 세상이 무너져내려서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누군가는 연락이 안 되는 이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며 기다리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말 온 힘을 다해야 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건 축제가 아니라서, 우리 소관이 아니라서, 어째서 저째서 이유를 설명하며 어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하는 걸 보고 역겨운 마음이 드는 것을 또 피하고 모른 척 하기엔 제 마음에 정말 한계가 와서 이렇게 괴로운 마음을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본인들에게는 이런 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믿고 쉽게 말하고 계신 분들께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공감을 못하시겠으면, 심지어 어설프게 하는 척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못하시겠으면 그냥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동안 잠시만 닥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금의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나도 좇같고야 마는 이 세상에서 앞으로 당신들이 이런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을 겪을 확률은 극히 낮겠지만, 당신들이 혹여나 마음이 아픈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당신과 함께 아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시 한번, 유가족분들께 조의를 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처받으신 많은 분들이 부디 더 이상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나을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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