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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Oct 28. 2024

[E] 섬에 갇힌 자유 영혼, 너는 바람이 돼라

내가 대본을 쓰면 너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27살, 우린 서로 같은 일터에서 사회생활 1막을 열었다

우린 한 영상을-작품이라 말하기엔 너무 싸구려였고 너무 작은 것이었던- 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너는 풋내 나는 내 아이디어를 잘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너의 거친 생각이 불안했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고집을 신뢰했다

너의 영상들은 믿음을 주기 충분했으니까


우린 고향이 가까웠다

서울에 툭 던져진 여린 청춘은 서로에게 힘이 됐다

술이 있었기에 빨리 솔직해질 수 있었고

촌놈의 정서가 같았기에 일찍 가까워질 수 있었다

동갑이었던 너는 취하면 내게 말을 놨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예의바르게 존대하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은 점점 겹쳐졌고

나는 네게 연극의 재미를 알게 해줬고

너는 내게 일본드라마의 개성에 재미 붙이게 해줬다

우리 시간은 공유됐고 우리 청춘은 닮아갔다


나는 너보다 3개월 일찍 입사했었다

일본어를 전공했던 또래 K는 일본 콘텐츠를 번역하는 일을 했다

나는 일본 콘텐츠를 봐야해서 K와 먼저 친해졌다

K는 작고 귀여운데다 일본어까지 잘해서 일본여자로 보였다

27살 봄이 지나갈 때쯤 우린 처음으로 셋이 같이 술을 마셨다

너희 둘 다 숫기가 없어 수시로 생기는 적막을 깨뜨리는 건 내 일이었다

술이 너희 입을 열고 일본드라마로 너희는 콤비가 됐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던가?

우린 다시 셋이 술을 마셨다

K가 먹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너희는 사귄다고 고백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

하지만 이내 축하했다

너희는 정말 잘 어울렸다


둘이 만나고 한 달쯤 지났을까?

너는 퇴근 후 나를 불러 영상을 보여줬다

내 대본의 영상이 아니라 네가 쓰고 네가 만든 영상이었다

윤도현의 <길> 위로 K가 걷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게

늘 함께 있어 주었던

그대는 우울한 시절 햇살과 같아

그 시절 지나고

나와 지금도 나의 곁에서

자그만 아이처럼 행복을 주었어"

K는 이대 골목을 걸었고

쇼윈도에 걸린 보헤미안 스타일의 옷을 들쳐봤고

작은 큐빅이 박힌 귀걸이를 귀에 대봤고

아담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고

홍대 소호 골목을 걸었으며

놀이터 벤치에 앉아 비둘기에게 과자를 주고

신촌 기찻길에서 레일 위에 올라 네 손을 잡았다

다시 <길>이 울렸다

"혼자서 걸어간다면

너무나 힘들 것 같아

가끔이라도 내 곁에서 얘기해 줄래

그 많은 시간 흐르도록

내 맘속에 살았던 것처럼"

그건 K에게 바치는 뮤직비디오였고

그 영상에 '너의 길'이 있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 너는 나를 네 자취방으로 불렀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를 한 봉지 샀고

신촌 기찻길 근처에 있던 네 반지하 자취방 문 앞에 서서

너는 이미 술을 마신 것처럼 볼이 발그레해져 내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면 놀랄 거야. 놀리지 마. K에게 주는 선물이거든."

문을 열고 불이 켜지자 방안 가득한 K가 보였다

5평도 안 될 방에,

2제곱미터 정도 되는 한쪽 벽에 K의 얼굴이 가득찼다

2제곱미터 크기의 사진 한 장이 아니었다

5X7사이즈의 사진이 백장 넘게 있었다

2제곱미터 크기의 K 얼굴을 잘게 자른 모자이크였다

너는 그걸 만들기 위해

해상도 높은 K의 사진을 찍어 포토샵으로 이틀 동안 사진을 쪼갰다고 했다

네 술잔을 채우면서 너는 아무말도 안 했다

그 술잔을 들이켜며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는 뭐든 할 놈이라고 어린 너를 추켜세웠다


일 년이 더 지나 가을에 너희 둘은 일본으로 떠났다

K는 전부터 일본 유학을 준비했고

너는 일본드라마에 빠져 일본을 간다고 했다

설사 K에게 빠져 일본에 따라간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사흘이 멀다하고 같이 이별주를 마셨고

우리 둘은 떠나기 며칠을 함께 보냈다

너는 일본에서의 새로운 시작에 긴장했고

K와의 동반 유학과 동거에 설렜고

이국에서 맞을 서른 살을 기대했다

그러나

너는 무엇보다 남겨진 부모님 걱정이 앞섰다

술에 빠져사는 아버지를 걱정했고

아버지 때문에 편치 못하던 어머니를 안쓰러워했다

근래 더 정신 놓고 술을 드시는 아버지에게 멀어지고 싶었으나

그럴수록 더 불쌍해지는 어머니를 놓고 가기 힘들다고 했다

그해 연말 네가 한국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들어왔다고 했고

내 생일을 기억해 술 사준다고 만나자고 했다

어머니는 진단 받은 허리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아버지는 술 없이 못 살고 있었고 환각도 있다고 했다

낮부터 취했고 해가 지면 집안 살림을 다 깨부셨다

어머니를 때리지 않았지만 어머니 마음은 산산조각 났었다

그때는 나도 홍대를 떠나 강남으로 일을 다녔는데

우린 홍대에서 만나 술을 마셨었다

우리가 잘 가던 벽돌집과 오뎅빠에서 

서로 닮은 아버지들을 원망하며 소주를 들이켰고

누가 더 짠하다 말하지 못할 어머니들을 안쓰러워하며 울었다

3차 감자탕집을 갈 때엔 우린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받혀줘야 했다

놀이터에서 깊고 길게 담배를 필 때

너는 고백했다

"K랑 헤어질 것 같다."

일 년을 사귀었지만

같이 살고 한 달쯤부터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곁에서 늘 보던 모습이 생활할 땐 달리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어를 잘하던 K는 수업이 끝나고도 모임이 어어질 때가 많았고

어학원을 마치면 집에서 일본드라마를 보던 너는 술로 K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한다

술취한 너와 일본사회를 흠뻑 마시고 온 K는 서로 다른 공기를 내뱉었다

그날 너는 흠뻑 취해 손을 망가뜨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진 너를 탓하며 벽을 쳤고

늙어가는 부모를 두고 떠난 너를 욕하며 벽을 쳤고

나이는 드는데 철은 없다며 벽을 쳤다




강남에서 업을 바꿔 새 일을 시작한 지 반년쯤 지나도록

나는 그 생태계에 쉬이 적응하기 어려웠다

늦은 밤 집에 귀가할 때면 어두운 골목에서 반짝이는 

빠의 네온싸인이 반가웠다

블랙러시안 두 잔을 마시고 일어서면 나도 강남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던 날

그날은 너희가 생각나 사케를 마셨다

오뎅탕을 놓고 일본식으로 잔에 넘치게 따른 사케를 시켰다

빈 자리를 마주하고 식어가는 오뎅탕을 한 모금했을 때

네가 보고 싶어 전화를 했다

"혼자 지낼만 하니?

-더 편해. 난 혼자 사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런데 넌 청승맞게 술집에서 왜 혼자 술 먹어?

"요새는 누구랑 술 마시는 게 불편해"

-넌 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늘 불편해 보였어

"...... 나 연애 잘했다. 헛소리 마 ㅋ 너나 일본여자 만나서 잘 지내봐"

-난 연애를 하면 안 될 놈이야 ㅎ

우린 신소리를 늘어놓다가 내가 술이 떨어졌을 때쯤 끊었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퇴근 시간이 아직 남았지만 비 소식으로 이미 어두웠다

일반전화로 연락이 왔다

강남터미널에서 네가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그날밤 전주로 향했다

밤 11시의 장례식장은 고요했다

안타까운 망자의 사인으로 더 적막했다


"아버지가 산에서 발견됐어

여느날처럼 그제 술을 많이 마셨나봐

아니나다를까 집이 또 난장판이 됐지

그런데 다음날인 어제는 다른 날과 달랐대

엄마 얼굴과 몸에 멍이 들어있었어

술 깨고 엄마를 보니 당신의 실수를 알게 된 거지

그게 어제 12시쯤이었대

1시간 정도 집을 치우시더라는 거야

평생 걸레 한 번 안 잡아본 양반이

그리곤 산에 간다고 나갔대

엄마는 운동하러 갔겠거니 했대

근데 저녁이 되도록 안 오시더라는 거야

경찰에 실종신고 하고 오늘 오전부터 찾아나섰는데

뒷산에, 등산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어

아버지는 아셨나봐

이제 더 스스로 안 된다는 걸." 


친구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년 후 도쿄에서 직장을 잡았다


K는 그 사이 돌연 진로를 바꿨다

갑자기 제빵을 배우더니 2년 후 제빵사가 돼 돌아왔다

그리고 몇개월 후 오키나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자는 일년 동안 K를 쫒아다닌 일본남자였다

인물은 없지만 착하고 자기를 많이 아껴준다고 했다

둘은 요코하마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K는 일을 그만두고 자기 주방만 지켰다

이따금 K는 전화해 심심하다고 했다

남편이 퇴근이 늦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뭐든 해봤지만 이제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게 없다고

요코하마의 태양은 너무 뜨겁고 날씨는 서럽도록 매일 좋다고

바다는 푸르고 그 위의 요트들은 너무 한갓지다고

저런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있자니 너무 짜증난다고

K는 결혼 2년 후 한국에 혼자 들어왔다


서로에게 서로의 안부를 가끔 전했다

그럴 때마다 너희는 서로를 응원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 후 15년이 지났다

너는 여전히 일본에서 일한다

일본에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다

연애할 좋은 놈이 못된다고 안 하는 게 낫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셔서 들어왔다

온 김에 너도 치아 치료를 한다고 한다

음식솜씨 좋은 주인장은 낙지숙회를 추천했지만

너는 이빨이 안 좋아 부드러운 전을 먹자고 했다

이빨을 모두 빼고 새로 넣어야 한다고 했다

임플란트는 아니라는데 새로운 말이라 나는 기억 못했다

아직 반백살도 안 됐는데 벌써 이빨을 다 빼야 한다는 친구의 현재가 

기억의 토막을 날려버릴 정도로 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K는 새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은 하지 않고 2년째 살고 있다

제주도에 터를 잡고 요리를 하며 살고 있다

육지에서 태어난 너는 섬을 좋아하는 아이였구나

돌고 돌아 너는 결국 요리를 하는구나

술을 좋아하는 너는 누룩을 써 맛과 부드러움을 가미한 수육을 판다고 한다

수육과 막걸리가 맛있을 가을에 제주에 가보련다

K의 새 안주도

K의 새 남자도

K의 새 인생도

K의 새 섬도

모두 축하하고 싶다




며칠 전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네게 내 11월의 계획을 말했다

"11월에 휴가를 내고 도쿄에 갈 거다. 너랑 같이 도쿄 옆 사케마을에 가서 2박3일 사케 만드는 체험을 할 거야."

-나랑? ㅋ 나랑 할 계획을 혼자 세웠어? 나 사케 안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사케는 혼자 하고 바다 여행이나 가자


그러자

바다를 가자

네가 가자고 하면 좋은 곳이겠지

네가 함께하자고 하면 좋은 시간이겠지



우린 20년 전에 만났다

그때 우린 참 비슷했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대한민국 40대 평균의 삶을 살고

너는 타국에서 혼자이면서 고향의 가족을 챙기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나는 20년이 더 지나면 우리는 다시 비슷하게 살아갈 것 같다

나는 동해를 마주한 동네에서 혼자 살고 싶다

곁에 빈 자리를 만들테니 둥지를 틀어볼래?

약한 이로도 잘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음식을 해줄게

내 잔이 쓸쓸하지 않도록 채워만 주렴

그때는 그걸로 됐다

우리 

파도를 출렁이는 바람처럼

바람을 흔드는 파도처럼

사이좋게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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