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인형] 제3부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by 꼬야

방송국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조각상을 지나, 회전문을 통과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저마다의 표정과 분주함이 생기롭기까지 하다.

그 분주함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이 일상이 되어가는 사람들...


한쪽에 마련된 카페, 여러 개의 테이블,

테이블 위에 있는 일회용 컵들, 그리고 주인을 잃은 볼펜과 메모지들...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그들의 한가로움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들은 그들처럼 한가롭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여기 테이블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주겠다고 해도 들을 시간들이 없는 사람들이 사무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을 기계처럼 한다.

한 곳을 바라보며 직진하기에도 바쁜 사람들이다.

그리고 쉼 없이 그들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초점 없이 멍하게 내려다보는 사람들.


B스튜디오 안,

스텝들은 숨으로 죽이고 한 곳만을 응시한다. 카메라조차도 멈춘 듯 고요하기만 하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적막을 깨고 나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핑크 톤의 트위드 재킷만큼이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희진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다시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정하 시인의 바람 속을 걷는 법이었습니다. 사랑, 지금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이는 이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여자들의 지&미 정희진이었습니다."

"오케이!!!"

김 감독은 매우 만족한 듯 오케이를 외쳤다.

"정희진 씨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희진은 오케이 사인을 받고 김 감독의 인사를 습관처럼 받아주고는 대본을 챙겨 일어났다.

여기저기에서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며 인사들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세트에서 내려와 김 감독에게 살짝만 웃어 보이고는 그곳을 빠져나와 텅 빈 대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큐 사인이 나는 동시에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희진은 자신이 했던 멘트가 자꾸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 시구를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그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장미 넝쿨 담장을 넘어 들여오던 그날 그 마당이 선명하게 보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들어서면, 그들은 밝게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 그는 다가와 '수고했어'라고 속삭이며 등의 책가방을 받아주었다.

그의 미소는 너무도 따뜻했다.


"언니!"

그때 대기실 문을 열고 미숙이가 들어왔다.

"어디 다녀와?"

희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똑바로 앉으며 미숙을 바라보았다.

"아... 네.. 그게."

"두통약 없니?"

미숙은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또 머리 아파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 희진은 힐끗 꽃바구니를 보며 물었다.

"왠 꽃바구니야??"

"한동안 뜸하시더니 강 본부장님요. 언니 방송 응원하신다고." 미숙은 삐쭉거리며 대꾸를 했다.

희진은 일어서더니 미숙의 답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가방을 들었다.

"가자.. 너 집에 내려주고 병원으로 가면 될 것 같아."

"저기.... 저기 언니."

희진은 한걸음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미숙을 돌아보았다.

"사모님이 아까부터 앞에서....(기다리고 계세요)"

희진은 피로감이 갑자기 더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가자."

희진은 대기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희진이 내쉰 한숨이 문을 때리고 희진 자신에게 돌아왔다.


복도를 걷는 또깍또깍 구둣 소리가 그녀의 성격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