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다.
민혁에게도 당연히 있다.
그 집... 마당... 그리고 그들의 해맑던 웃음 소리...
행복했던 그 날, 그 집... 마당...
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잊지 않을 기억이다.
그는 샌드백을 향해 마지막 펀치를 날리고 주저앉았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어느새 그 집, 마당에 가 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들의 얼굴, 그리고 웃음소리, 그는 순간 눈을 떠 버린다.
“어지간히 해라. 몸 상한다.”
남관장은 민혁에게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야? 체육관도 비우고.”
민혁은 의자에 걸쳐져 있는 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정말, 나랑 이렇게 살면 안 되겠냐?”
“뭔 소리야?”
민혁은 힐끔 관장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남관장은 더 큰 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정말, 나랑 이렇게 살면 안 되겠냐?”
“그만해. 얘들 들을까 무섭다.”
남관장은 주변을 살폈다.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던 트레이너들이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그들을 스윽 보고는 다시 민혁을 향해 말했다.
"왜? 뭐?"
“프로포즈 대사 같잖아.” 민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 새끼가...”
남관장은 근육질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았다.
“그만, 그만해.”
테이블이 몇 개 안되는 포장마차,
늦은 저녁을 국수로 때우는 청년과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둘이 각각 테이블을 잡고 있었다. 주량을 넘어선 것 같은 얼굴을 한 아저씨들은 슬슬 주사를 부릴 요량이었다.
“술!! 술 한 병 더!! 근데, 이모!!! 닭발 모양이 왜 이래??!”
“이모! 저희들 왔어요.” 하며 남관장과 민혁이 들어왔다.
포장마차 이모는 환한 미소로 반겼다.
“어서와! 오늘은 좀 늦었네?”
한 병 더를 외치던 아저씨들은 남관장의 눈을 피해 슬슬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이모, 저 아저씨들 계산은 하고 내빼는 거야?”
이모는 테이블 위에 물과 물컵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민혁도 피식 웃었다.
민혁의 매력적인 미소를 보는 유일한 사람이 남관장과 포장마차 이모뿐이었다.
“소주 한 잔 할까?”
“전작이 있는 것 같은데?”
“딱 한 잔 했어.”
남관장은 이모에게 찡끗하며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체육관 관장이 그렇게 막 술 먹고 돌아다녀도 돼?”
민혁의 말에 남관장은 뜸을 들이더니 답을 했다.
“혜주한테 다녀왔어."
민혁은 이모가 두고 간 소주잔에 소주를 말없이 따랐다.
"어머니한테도 인사하고 왔다.”
남관장은 따라놓은 소주를 한 모금에 넘기고는 말했다.
“그래서.. 프로포즈는???”
민혁은 뜬금없는 그에 말에 남관장을 바라본다.
“거절이냐고??? 이 새끼야!!!”
민혁은 그제서야 알아채고 피식 웃었다. 그리곤 다시 씁쓸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 민혁을 보며 남관장은 입을 연다.
“안다. 거절인 거.. 그냥 알면서 마지막으로 물어 봤다.”
민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한 품고 어떻게 평범하게 살겠냐. 그건 남자 새끼도 아니지.”
남관장은 가져온 서류 봉투를 민혁에게 건넸다.
민혁은 물끄러미 남관장을 보았다.
“만나야 복수를 하든, 지랄을 하든, 하지 않겠냐?”
민혁은 남관장이 건넨 서류봉투를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민혁은 건네받은 서류를 꺼내 보고는 다시금 표정이 굳어졌다.
그에게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려지는 얼굴들, 그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만나야 무엇이든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