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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May 27. 2021

"앞집에 사시네요?"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콩이와 까꿍이를 하원 시키며 우리는 말하기 놀이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거 말하기, 무서운 거 말하기.

"솜사탕!" 콩이가 말하자, 까꿍이가 거들었다.

"응, 고모. 솜사탕은 너무 부드러워서 입에서 녹아!"

"그래. 그렇지. 고모도 생각났어. 크크."

나의 개구진 웃음에 콩이가 뱁새눈을 해가지고 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크. 까꿍이 콧물!"
"에이. 뭐야, 고모! 그건 지지한 거잖아."

"맞아. 그리고 그건 끈적이는 거야." 둘이 꿍짝으로 말했다.

"그럼 이제 무서운 거 말해볼까?"

아이들은 주사기도 무섭고, 티라노사우루스도 무섭단다.

"고모는 뭐가 제일 무서워?" 까꿍이가 묻자, 콩이가 말했다.

"난 알아. 고모가 무서워하는 거!"

"뭔데?" 나는 콩이가 내가 무서워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으응.. 그거!" 하며 콩이는 까꿍이를 곁눈질해 가리켰다.

"뭐지?"

"에이, 고모. 고모가 제일 무서워하는 거는 까꿍이 때 부리는 거잖아."

덕분에 할머니와 나, 그리고 까꿍이까지 한바탕 웃었다.




제일 무서워하는 것!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안타깝게도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오피스텔은 1층 로비에 출입구와 엘리베이터가 두 개씩이다.

내가 들어온 출입구 말고 다른 출입구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주위 깊게 보질 않아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간차가 있으면 내가 먼저 타든지 아님 나중에 타는데 그렇게 하면 '유난스럽다'할 수도 있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싶어 그냥 함께 탔다. 그리고 나는 11층을 눌렀고, 그 남자는 층을 누르지 않았다. 

우리 층에 사나? 반갑게 대화를 주고받진 않아도 눈인사 정도는 하고 다녀 안면은 다 알고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나는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갔다. 그런데 이 남자도 우리 집 쪽으로 트는 거다. 우리 집 쪽에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와 술 먹고 새벽 1시에 들어온 아저씨를 문전박대하는 아줌마와 고래고래 문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아저씨가 살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뒷골이 쭈뼛 섰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서자, 그 남자가 우리 집 앞집인 아저씨 아줌마네 집에 서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앞집에 사시네요?"

나는 긴장을 했지만 웃음으로 답하고 그 남자가 그 집 번호키를 누르기를 기다렸다.

5초의 틈, 그 남자는 내가 번호키를 누르길 기다리는 것처럼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나는 재빠르게 몸으로 가린 채 번호를 누르고 번개처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몇 초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 후, 그 남자가 정말 그 앞집에 사는지, 놀러 온 손님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 사흘 정도 스탠드 불을 끄지 못하고 잠을 잤다.

영화 '성난 황소'에서처럼 번호키를 누르고 걸쇠를 자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나는 다시 스탠드 불을 끄고 편히 잠을 잔다. 

그 남자를 다시 마주치지 않았고, 가끔 허리가 아프신 옆집 할머니를 마주쳐 대신 쓰레기를 버려줄 뿐이다.


그날 나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 그 남자의 정체가 이사 온 선량한 앞집 남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무서울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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