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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야 Jul 13. 2021

나의 닭갈비 떡볶이는 취소를 하지 못하고 천안으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을 정리해야겠다.

다시 내 정신이 가출한 사건이 생겼다.




목요일 저녁, 뒹굴뒹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애꿎은 TV 채널만 돌려대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시 찾아올 불금, 그리고 주말, 꼬박 일주일을 회사-집 하며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보내버렸다. 

힘든 일주일이었다. 일도 많아 정신도 없었고, 더웠다.

그래, 내일은 불금! 그리고 주말! 맛있는 거 먹고 잘 쉬고 에너지 충전을 해보자 싶었다.

소파를 박차고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역시나 냉장고 안도 나랑 닮아 있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김치랑 계란이 덩그러니 그 안을 지키고 있을 뿐.


먼저 냉장고를 채워보자 싶어 휴대폰을 열었다.

잘 가는 앱에서 닭갈비 떡볶이와 와인에 먹을 치즈, 그리고 몇 가지를 더 주문했다.

결제를 하고 일어서다 레몬즙을 빠트렸다는 생각에 취소하고 다시 주문하려고 앱을 열었다.  


앗!! 주소지가 천안!?


얼마 전 천안 워킹맘 그녀에게 보냈던 기록 그대로 주문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다. 물론 내가 먼저 할 때가 많다. 어쩌다 내가 안 하면 먼저 전화를 해 '왜 전화 안 하냐'며 잔소릴 하곤 한다. 거의 매일을 통화하면서도 할 말은 늘 많다. 그 통화에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늘 “후,  오늘. 저녁은 또 뭐 먹어야 하냐?”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길 통화에서도 그녀는 어김없이 말했다. "오늘 저녁은 또 후! 뭐 먹지? 나에게 요술 램프 지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딸내미가 늦게 왔다고 오만 갑질을 해대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도 크크 거리며 전활 끊었지만, 유치원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갈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녀의 지니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보냈던 닭갈비 떡볶이 주문지가 내 마지막 주문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취소하고 다시 주문하면 되겠지 싶어 재빠르게 취소 페이지를 찾았다. 하지만 새벽 배송을 해야 하기에 주문서를 넣자마자 택배사로 넘어가는 구조인지라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국 그렇게 나의 닭갈비 떡볶이는 취소를 하지 못하고 천안으로 가버렸다.


순간의 실수로 다시금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 멍하니 거실 바닥을 바라보았다. 

전에 썼던 글의 주제가 떠올랐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주변도 복잡해진다는 것!

거실엔 소파에 세팅되어 있어야 할 쿠션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메모지들과 몇 장 읽지 못하고 던져둔 책들, 물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 둘러본 집 안은 그야말로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서재는 책들과 이면지, 색연필들로 폭탄이 떨어져 있었고, 침실은 어제 입었던 청바지는 의자에 걸쳐져 있고, 침대에 있어야 할 쿠션이며 인형들이 죄다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한 동안 정신줄을 놓고 있긴 했지 싶었다.




워킹맘 그녀가 천안으로 간 닭갈비 떡볶이를 재주문해 보내주면서 덤으로 보내준 커피 파우치에 얼음 가득 넣어 정신 번쩍 나게 마셔야겠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정리해야겠다.


새벽 배송으로 오자마자 먹어치우고 보내온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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