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치매 증세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한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쯤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삼 형제가 살만해질 때부터였다. 어쩌면 삼 형제의 가난과 연약함이 할머니의 정신과 몸을 우악스럽게 지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늘 우리 삼 형제를 안타깝게 보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악취를 풍기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궁핍할 때의 삼 형제를 가장 가까이 봤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삼 형제 친모의 재산 강탈과 두 집 살림, 어린 고모의 죽음, 사채업자의 협박성 방문, 월급 압류 등 한 가지만 겪어도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며 가족과 이웃, 지인들 모두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탓할 곳을 삼 형제로 돌릴 때에도 할머니는 이들을 보호하기에 전력을 다했으니 할머니의 각막에는 더더욱 여리고 약한, 오들 거리는 삼 형제만이 재생됐을 것이다.
할머니의 곁에서 오래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삼 형제는 점차 폐쇄적이고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사회적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으며, 이때쯤 '엄마 없는 애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귀와 가슴에 담기도 했다. 할머니의 과잉보호가 문제인지 삼 형제의 분리불안이 문제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리이자 독립이 필요했다. 비명인지 인사인지 알 수 없는 할머니의 목청을 뒤로하고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짐도 없이 이사를 갔었다.
할머니는 '이제 더는 걸을 수가 없다', '눈앞이 보이지가 않는다'는 말씀을 연신 하시면서도 무언가에 홀리신 것처럼 삼 형제를 보러 오셨고 매번 반찬을 큼지막하게 싸주셨다. 멀미가 심해 차를 타지 못하는데도 택시에 몸을 싣고 반찬을 가지고 오시거나, 찾아뵙겠다고 미리 연락을 드리면 아픈 몸을 기어이 일으켜 한상 차림을 해주시는 걸 보고 있자면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화를 내는 게 일쑤였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삼 형제의 주둥이와 목구멍에 음식이 넘어가길 바라는 눈빛을 보내셨기에, 삼 형제의 맏이는 꾸역꾸역 맨밥을 식도로 밀어 넣어야 눈물이라도 막을 수 있었다.
삼 형제라는 이름보다 각자의 이름으로 사회에서 뛰어다니게 되자 옆동네인 할머니댁에 방문하는 것조차 뜸해졌다. 걸음과 요리가 눈에 띄게 힘들어진 할머니는 그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나오는 돈을 조금조금씩 모아 용돈이라는 뭉텅이가 될 때마다 삼 형제에게 전화를 했고 용돈만 받아가라고 했다. 돈을 받지 않겠다는 고성은 방문할 때마다 줄어들었고, 그렇게 삼 형제는 - 아니, 삼 형제의 맏이는 할머니를 갉아먹으며 자랐다.
쓸 줄 아는 단어와 문장도 몇 개 없을 때 할머니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삼 형제의 이름과 뜻의 설명을 듣고 나서 할머니의 이름을 삼행시라도 하듯 이어 말했다. "할머니는 소 같은 세 명의 남자애들을 키우는 게 정해져 있었나 봐요." 기억이 맞다면 할머니가 보인 웃음 중 손에 꼽히는 환한, 아주 환한 웃음이었다.
치매 증세가 심해진 할머니는 누가 돈과 물건을 훔쳐갔다거나 병원에서 동의 없이 수술을 잘못했다거나 누군가 삼 형제를 해하려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할머니의 찢어지는 비명과 분통함을 표현하는 몸짓을 보고 있자면, 치매라는 병에 대한 좌절감과 무력함에 짓눌리는 수밖에 없었다.
치매 증세는 정신만큼이나 몸의 건강 또한 속이며 앗아간다. 할머니는 어느 날 숙면을 취하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고, 그렇게 가장 작고 앙상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벗어나셨다. 이렇게 작을 수 있을까 싶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막내고모의 울부짖음과 내 입술이 짓이겨지고 찢어지는 소리뿐이었다. 할머니를 갉아먹고 자라난 인간에게 눈물은 감히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매년 1월에는 할머니의 기일이 찾아온다. 할머니는 묻어드린 곳에 계시고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기에 찾아온다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지만, 찾아온다고 써내고 싶다.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을 돌아가신 이후에 자주 찾아뵙는 것으로 자위하고 싶지 않다. 살아내는 것을 더 열심히 살아내는 것만이 죄스러움을 일부나마 갚아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믿는다. 열심히 살아내 살과 근육을 찌우고, 누군가에게 갉아먹히더라도 고통스러움과 비통함을 내뱉지 않겠다. 타인을 갉아먹지 않은 사람의 고통만이 고통스럽다는 문장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