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입니다

무엇이긴요. 새해 글입니다.

by 김민중

새해입니다. 새해라는 단어를 써두고 '맞았다', '열렸다', '밝았다' 중 어느 표현이 잘 어울리는지 고민했는데, 맞았다고 쓰기엔 슬그머니 다가온 것 같았고, 열렸다고 하기엔 이전에 보내온 날들의 평가가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져 싫었고, 밝았다고 하기엔 늘 그렇듯 기대가 없기에 그 무엇도 새해라는 말 옆에 붙이지 못했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그래서 새해입니다.

몇 년 동안은 연말이나 연초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장문의 글을 쓰며 나름의 회개와 감사를 남기곤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일까 싶을 정도로, 연말연초에는 나름의 글을 쓰고 싶었고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예상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알게 모르게 인스타그램에 새해맞이 장문글이 늘어나는 것 같아 괜한 심술이 생겼거든요. 타인의 글들이 보기 싫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주류와 유행에 편승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새해맞이 장문글 대열에는 이탈하기로 했습니다.


새해와 어울리는 말도 못 찾고, 새해맞이 장문글도 인스타그램에 쓰지 않았으면서 브런치에 쓰는 이 글은 그럼 뭐냐?라고 성대를 강하게 울려 질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긴요. 새해 글입니다.


타인들이 취미를 물을 때 요즘의 저는 전시, 노래, 독서, 운동, 사진, 커피를 말하며 은근슬쩍 글쓰기도 끼워 넣습니다. 괜히 양심에 찔려 글쓰기에는 비정기적으로 일기장처럼 쓰고 있다는 덧말을 붙이곤 하는데,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하려면 어떤 형태든 새해 글은 남기는 게 맞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제로콜라가 가득 담긴 컵과 손글씨로 초안을 적어둔 수첩을 들고 새벽에 컴퓨터를 켰습니다.


2025년은 요약하기엔 제게 너무 어렵고 벅찬 한 해였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것들은 기대한 대로 이뤄진 적 없고, 누군가 많은 걸 앗아간 것처럼 공허한 빈자리만 제 흔적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알아낸 건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대는 도려내고 잘라내고 거세해야 된다는 것. 두 번째, 그럼에도 난 어쩔 수 없이 은근슬쩍 기대를 품는 인간이라는 점. 한 가지씩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두 가지를 동시에 알아내고 내게 적용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어려웠습니다. 인간관계를 잘하고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건 흐르는 피를 못 본 체하고 잘 도려내는 것을 뜻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도 생겨납니다.


미래를 계획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지만, 세상은 참 많은 우연과 우연 사이의 마찰을 통해 피어나는 연기 같아서요. 2026년의 계획 역시 없습니다. 그러나 제 노력과 의도, 방향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을 알기에, 2026년에는 노력이라는 것을 조금 더 강하게 해보려고 합니다. 일에 빠져 살고 틈이 생기면 많이 베풀고 싶습니다. 저의 힘이 미처 가닿지 않는 것들에게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하고,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쥐고 맛보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계획은 없습니다. 바람뿐입니다. 2026년에는 워커홀릭이라는 타이틀이 낯부끄럽지 않도록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유독 더 두서가 없고 맥락도 단어도 엉망인, 손톱 사이로 흘려내기만 한 글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어떤 형태로든 제 베풂을 경험하는 분들이 많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께는 그 베풂들이 꼭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과 밥 꼭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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